직항은 아니었습니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프라하.
시차에 몸을 빨리 적응시키려고 12시간 비행 중 딱 30분씩 두 번을 잤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 프라하행 항공을 기다리는 2시간은 눈꺼풀과의 혈투였습니다. (눈이 약간 빨개졌기에 혈투라 확신합니다.)
기내식과 간식을 모두 챙겨 먹어서인지, 낯선 장소에서의 경계심 때문인지 도착한 순간 느껴지는 찬 공기에 체력이 회복됨을 느낍니다.
늦은 밤에 도착한 프라하 공항은 한국인에게 참 친절합니다. 사인에 한글이라니! 한국인이 정말 많이 찾는다는 게 느껴집니다. (제가 도착하고 며칠 뒤에 한국 비자는 무심사 입국을 한다는 기사가 나더군요.) 낯선 주변 환경에서 눈이 찾은 가장 익숙한 형상, 한글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EXIT' 출구로 갑니다. 한글 사인을 만나고부터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룰루랄라. 저는 우버를 타기 위해 그대로 출구로 나갔습니다. 캐리어 찾는 걸 잊어버린 채로요.
입국장 밖으로 나갈 때 친절한 입꼬리로 '굿바이'라 말했던 경찰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캐리어 못 찾고 나왔다는 바보 같은 설명을 하고, 원래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불쌍하다는 듯 촉촉한 눈빛을 잠시 받고, 다시 짐 찾는 곳으로 들여보내 줍니다. 휴우. 다행히 문을 통과 한 뒤 몇 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한글 사인은 나중에 어떤 폰트인지 찾아봐야겠어요. 지금 봐서는 만들어진 지 오래된 서체 같이 보입니다.
퇴사한 지 한 달이 채 안돼서 그런지, 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내일까지 프라하 공항 사인물 전체를 수집하고 서체 분석해와."라는 업무를 받은 사람처럼 사인을 찍어대다가, 곧장 출구로 나갔다 돌아오니 집 나간 정신도 같이 돌아왔습니다.
'프라하 공항에 한글이라니 서프라이즈! 역시 한글은 위대해, 언젠가 쓸모 있는 자료가 되겠지'라며 잡생각과 촬영에 열중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내일은 아무 생각 없이 더 내려놓고 즐길 수 있겠지라며 위로로 잠을 청합니다.
긴장이 풀려 지쳐 잠들었던 밤이 지나고, 신청해둔 가이드 투어에 오후부터 합류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올빼미 버릇이 나올까 봐 오전 시간은 비워두었는데 시차 때문인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해돋이를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전 가이드도 신청하는 건데 말이에요. 동행은 가이드님과 신혼여행을 온 부부 2쌍입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홀로 여행 시작 24시간 만에 잠시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프라하성 내부와 주변은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콘텐츠가 많습니다. 프라하성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조금 걸어가면 보이는 레오폴드 분수. 레오폴드의 약자 L이 로만체로 양각돼있고, 성안에 있는 분수라 그런지 고급스럽게 황금을 칠해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성안에 분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불이 났을 때 빠른 화재진압, 적에게 포위 시 식수공급의 기능이 있다는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저 눈요기인 줄 알았던 분수에도 완벽한 기능이 있다니.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낡은 분수와 빛나는 글자의 대비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의 디자인은 도시 전체에 구석구석 있었습니다. 도시가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 조각품에 황금칠을 해놓은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과거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였던 화려한 시절의 유적이나 관광지에 가게 되면 항상 반짝반짝 금빛 조형물과 글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글꼴을 만지던 사람이었기에 사진첩엔 글자 사진이 한가득이라 프라하에서는 잠들기 전 항상 금빛 가득한 사진첩을 보며 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유럽 도시들을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프라하는 정말 화려하고 멋있는 도시가 맞습니다.
프라하성 안에는 이름에서부터 '황금'이 들어가는 장소가 있습니다. 황금소로.
하지만 실상은 되게 낡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곳입니다. 보초병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되던 곳인데(한국의 고시원 크기 정도) 상당히 좁습니다. 프라하성 내부가 그렇게 넓은데도, 군인들은 초라하고 좁은 막사에 거주했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이후에 연금술사들도 이곳에 거주했는데, 황금소로란 이름은 연금술사들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체코의 대표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 탄생된 곳도 바로 이 곳입니다.
사실 22호는 카프카의 동생이 살던 곳인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던 카프카가 일을 마친후부터 밤늦게 까지 글을 쓰다가 갔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번쩍이는 금빛 글자가 없지만 사람들은 22호 앞에서 줄을 서며 사진을 찍고, 내부를 둘러봅니다. 정말 작고 보잘것없지만 이 곳 역시 프라하의 보물입니다. 카프카에 대해 잘 모르지만, 22호를 방문하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문 위로 주르륵 순서대로 호수가 적혀있는데 오리지널 글자라고 하기엔 스케치 흔적이 남아있어서, 개보수하면서 덧 그린 글자 같네요. 아쉽지만 오리지널은 세월에 지워졌겠죠. (’N:’과 ‘CP.’라고 쓰인 것 등이 있었는데, 의미를 알고 싶어 물어봤지만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숫자 디자인에 통일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독립적으로 각각 봤을 때 장식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숫자 6이 맘에 듭니다.
카프카가 매일 늦은 밤까지 글을 쓴 후 터덜터덜 집으로 내려갔을 상상을 하니 왠지 짠합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당시에 이 좁은 동생집에서 늦은 밤까지 소설을 쓰며 얼마나 창작의 산고를 겪었을지. 그다지 생전에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위대한 문학가가 된 것이겠지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고, 혹은 손바닥만 한 좁은 공간에서 작업에 몰두해야만 했던 카프카의 시간들은 창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연적인 시간들이겠지요. 자기가 가진 원석을 정제해 가치있는 '황금'으로 만드는 시간들. 조만간 긴 시간 기차에서 보내게 될 때, 이 곳에서 집필한 <시골의사>를 읽어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