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있는 글자 '&' 이야기
키보드 자판 7위에 있는 기호 ‘&’.
이 글자의 명칭은 앰퍼샌드(Ampersand)다.
알파벳 디자인을 몰랐을 때 나는 앰퍼샌드를 '앤' 혹은 ‘앤드’라고 불렀다. 나름 유명세를 가진 기호지만, 한국에서는 ‘엠퍼샌드’라는 명칭으로는 잘 기억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H&M을 "흐앤므"라고 읽는 것처럼 KT&G, The Coffee Bean & Tea Leaf, 동원F&B... 등을 읽어보면 한국 정서에서는 사실상 '앤'으로 통일되어 있다. 어원을 따지자면 'and'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Et'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앤'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앰퍼샌드는 수많은 글자들 중, 언어 간 경계를 뛰어넘어 성공한 흙수저라고 말할 수 있다. 발견된 최초의 앰퍼샌드는 기원 후 1세기경, 로마제국에서였다. 폼페이의 어느 도시 벽에 낙서에서 발견되었다. 서울의 어딘가 굴다리 아래, 대충 장난스럽게 갈겨써진 글자들처럼, 최초라고 이름 붙여진 앰퍼샌드도 그저 그런 시답잖고 지저분한 낙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앰퍼샌드가 있었던 고향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망하고, 로마제국도 망해버렸다. 그리고 현재 라틴어는 바티칸시국 내, 혹은 학술용어에서만 사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줄었다.
라틴어는 여러 갈래로 변화해 현재 유럽의 다양한 언어의 뿌리가 되었는데, 단순한 모양 때문일까? 독특하게도 의미와 형태 모두 라틴어인 앰퍼샌드는 변치 않고 살아남아 다른 언어들과 어우러지게 되었다. 인쇄술 발명 이전 필사본에도 앰퍼샌드는 종종 등장하지만, 1455년 유럽에서 인쇄술의 발명은 앰퍼샌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유럽의 활판 인쇄 자료와 고서적에서 활자로 찍힌 앰퍼샌드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운빨이 세다고 해야 하나, 참 놀라운 자수성가다. 앰퍼샌드는 기호적 속성이 강하다. 알파벳은 표음문자인 데 반해, 앰퍼샌드는 뜻을 전달하는 ‘표의문자’이자 어표(logogram, 한 단어나 구를 나타내는 상징)의 범주에 있다. 한자처럼 표의문자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영국과 미국에서는 표음문자인 알파벳의 27번째 구성원으로 포함되는 자격도 얻었었다. 앰퍼샌드가 가진 역사성과 조형적 매력은 인정하지만, 왜 이렇게 사랑받는 기호 인지는 여러 면에서 추측만 해 볼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앰퍼샌드는 글자계의 'BTS'이며 현재도 전 지구적으로 인기 있는 심볼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활자를 개발하고 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항상 앰퍼샌드다.
그 순간은 언제나 모험할 수 있는 기회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레터링 디자이너 마르티나 플로(martina flor)는 주로 레터링 실무와 저술 활동을 하지만, 그녀의 작업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앰퍼샌드를 그리는 것이다. 직접 그린 앰퍼샌드 도안으로 금속 배지, 인스턴트 타투 같은 제품도 만든다. 그녀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앰퍼샌드는 인스타그램에 비정기적으로 업로드되는데, 새로운 앰퍼샌드 작업이 올라오길 항상 나는 기다린다.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의 브랜드 ‘앤디앤뎁’의 카일리백에는 앰퍼샌드 장식이 들어간다. 금속으로 된 앰퍼샌드는 심볼 기능과 더불어 잠금장치 기능을 한다. 글자 덕후이자 소비형 인간인 내게 무척 유혹적인 아이템이다.
타입 디자이너 조나단 호플러(Jonathan Hoefler)는 "새로운 활자를 개발하고 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항상 앰퍼샌드다. 그 순간은 언제나 모험할 수 있는 기회다." 라며 앰퍼샌드를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글자를 만드는 입장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때로는 지루한 폰트 디자인 과정에서 나의 과감함과 실험정신을 몰아줄 만 한 글자를 고르라면 앰퍼샌드가 제격이다.
글자를 다루는 타이포그래퍼 입장에서도 앰퍼샌드는 매력적이었나 보다. 신 타이포그래피의 아버지 얀 치홀트(Jan Tschichold)가 쓴 책 중에는 <앰퍼샌드의 형태 변화(Formenwandlungen der Et)> 라는 24페이지짜리 소책자도 있다. 폼페이의 낙서에서부터 여러 필사본과 활자에서 찾은 앰퍼샌드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로마자의 형태 E,t가 선명하게 보이는 손으로 쓴 형태를 비롯해 다양한 앰퍼샌드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70년 전에 나온 이 책은 여전히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두 개 이상 글자의 결합을 ‘합자(리거처 ligature)’라고 하는데, 앰퍼샌드도 E와 t, 두 글자의 결합을 뿌리로 했기 때문에 합자라고 할 수 있다. 합자, 즉 리거처가 된다고 해서 세상 모든 글자가 앰퍼샌드처럼 인기가 많아지거나 유명해지지는 못한다. 필사시대와 인쇄시대를 거쳐 디지털시대까지 이어지는 관습, 글자 본연의 조형적 매력, 타고난 운 등 많은 요소들의 작용으로 쌓은 인기로 보인다.
앰퍼샌드 처럼, 전통적인 한글 필기체에도 리거처와 같은 개념인 '이어쓰기'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앰퍼샌드만큼 유명세도 없거니와 디지털 폰트에서 한글 이어쓰기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어지는 내용과 글의 전체내용은 <슭2-슭이로운 글자생활> 한글 레터링북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소식과 판매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