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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ry Sep 14. 2020

말의 모양

말한 뒤 몰려온 이불 킥과 다짐


최근 격한 대화를 지인과 나눴었다.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는 말은 아니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말들을 뱉었다.

나의 생각을 어떤 모양으로 말할지 고민 못하고 쏟아낸 것이다.

의도는 선의였지만, 표현방법은 거칠었다.



내가 했던 말들은 오히려 내 주변에 머물며 생활을 헤집어놨다.

불쑥 몰려온 후회는 이불 킥하며 잠도 잘 못 들게 만들었고,

위를 콕콕 찌르거나, 두통이 무겁게 내려앉았는데,

내가 뱉은 뾰족하고 둔탁한 말 모양 때문인 것 같았다.

말은 휘발된다지만, 알콜처럼 빨리 날아가길 바랬지만, 그렇지 않았다.



위경련과 두통을 겪으며,

어떤 형태로 말을 할지는 게을리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또 생각을 어떻게 확실하고도 유연하게 표현해야 할지 그려봤다.



평소 ‘말 못 하고 후회 vs 말하고 후회’ 둘 중에 고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누구나 그렇듯 말 못 해서 후회한 적도 많은데,

말 못 하고 속병 끓는 스트레스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왕 이렇게 할 말 못 하고는 못 배기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렵겠지만 '말본새를 가꾸어나가는 것이 맞겠다' 싶다.



폰트 중에 획의 사방 모서리에 작은 R값(Rounding)을 지닌 글꼴이 있다.

예를 들면, DIN Next.

한글 폰트 중에는 나눔고딕이 대표적이다.


나눔고딕을 쓰면 단단한 고딕 느낌을 풍기지만 왠지 부드럽다.

고딕체처럼 또박또박 말하지만 뾰족하진 않다.

동글동들한 굴림류의 서체처럼 너무 과도하게 밝은 표정도 아니라 맘에 든다.

DIN Next는 나눔 고딕보다 R값이 더 작다.

큰 사이즈로 쓰지 않는 다면 눈에 안 띄는 작은 R값이다.

작은 R값은 뾰족하지 않게 쿠션 역할을 해준다.



폰트를 고르듯 나의 '말 모양'을 고를 수 있다면,

시스템 환경설정에 들어가

DIN Next 나의 기본값으로 선택할 것이다.



다소 거칠었던 내 말 때문에 그가 상처 받지 않기를 기도하며,

DIN Next의 작은 R값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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