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월미도가 있다.
여행은 설렘이 반인데, 해마다 한두 번씩 가는 익숙한 곳에 또 간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심드렁했다.
낯설지도 않고, 색다를 것도 없었다.
따지고 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 의견까지 접수 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게, 설레지도 않고, 그렇다고 취소하기엔 아까운, 오직 ‘적절함’에 수렴한 여정을 떠났다.
작은 호텔이었고, 옥상에 비닐을 씌운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
객실 문을 열고, 짐을 풀자마자 아이들이 외쳤다.
“수영장!”
그래, 우린 이 수영장이 있어서 온 거지.
그런데 그렇게 오자마자 옷을 훌렁훌렁 벗어야겠니?
급한 아들이 작아진 수영복에 몸을 쑥 밀어 넣었다.
배가 제법 통통했는데, 수영복이 밀려내려 와 배를 집어삼켰다.
밤빵 같던 배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있었는데 없어요>의 현실판이 여기 있네
“엄마, 나 날씬해졌어.”
“그러게. 수영복이 너 배를 잡아먹었나 보다.”
“맛있나 봐!”
별 뜻 없는 수다를 주고받으며 수건과 수경을 챙기는 사이, 한 명이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둘째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수영모부터 뒤집어썼다. 그 모습만 보면 해산물 쪽 어딘가의 느낌이 났다.
수영모가 쨍쨍한지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고, 낯선 인상이 되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새 가방을 뒤져 수영복을 찾아 다리를 끼워 넣고 있었다.
“내복은 벗고 입어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입고 있었다.
수영장이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민첩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학교 갈 때마다 미적거리던 아이들이, 군인 아저씨 저리 가라 할 만큼 환복을 빨리했다. 저렇게 고성능인데 왜 그동안 몰랐을까.
얼른 핸드폰을 들어 그 모습을 찍었다.
나중에 피곤할 때 꺼내 보면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주섬주섬 수건과 튜브, 망토를 챙기고 있었고, 그사이 잊고 있던 한 사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편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수영복만 입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상의가 없었다.
“여보, 2월이야. 아무리 실내수영장이라도 추워.”
“괜찮아. 나 운동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일까. 날씨가 2월인데. 그렇게 자랑하는 운동한 팔뚝에는 닭살이 돋아있었다.
무척 추워보였다.
이 사람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어디쯤 떠 있다.
허리에 튜브를 찬 채 꿀렁대는 첫째,
여전히 눈이 안 내려온 둘째,
그리고 운동했으니 모든 게 괜찮다는 남편.
나만 제자리였다.이쯤되면 난 기가 빠지는데 큰일이다.
그 셋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정체모를 춤을 추는데 웃음이 터졌다.
옛날에 비슷한 개그 프로가 있었는데...마빡이였나?
그저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내쪽으로 온 둘째가 수건을 나눠 들며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 나 진짜 기분 좋아. 빨리 가자”
그때 마음속에 있던 버튼하나가 눌린 것 같았다.
기를 쭉 빼는 버튼. 얼마 있지 않은 에너지 저장하려고 잠궈놨는데 이 녀석이 눌러버린다.
이젠 나도 춤을 출 차롄가.
그날 저녁,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내가 제일 신나게 놀았다고.
아니라고 했지만 다음날 감기가 왔다.
왜 나만...
그래 뭐, 나만 걸리니 다행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