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인
우리 둘째는 예쁘다. 어딜 가나 날 닮았다고 하니 예쁜 게 틀림없다.
올망졸망 눈망울에 토실한 볼, 앙 다문 입까지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애교도 많지 웃음도 많지, 말도 많지 하루 종일 심심할 틈이 없다.
다만 하나, 짜증도 많은 게 탈이다 그것도 날 닮은 걸까?
우리는 똑같이 생겨서 매일 싸우고, 남들에겐 가끔이라 둘러댄다.
아이를 대할 때 항상 머릿속에 그려지는 우아한 이미지가 있다.
금발의 온화한 여인이 아이들에게 따듯하지만 단호한 말로
"안돼, 규칙에 어긋나잖아 존, 우리는 그럴 수 없어" 하는 모습이다.
그 여인은 북유럽 스타일로 단아하며 곱다. 화 한번 안 내고 말하지만 절대 타협하지 않는 왜유내강 스타일.
엄마 레벨에선 절대강자라고 할 수 있다.
단호한 말을 들은 아이는 화났던 감정을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마미"
그럴 줄 알았다는 따듯한 미소, 아이를 향해 벌린 팔, 천천히 품으로 들어오는 존을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이는 모습까지.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완벽한 관계다.
엄마에 얼굴을 기댄 아이가 깊은숨을 마시는데, 꼭 감은 눈에서 그들이 얼마나 단단해진 평화를 향해 나아갔는지 알 수 있다.
그 아름답고도 선한 대화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상호작용이다.
규칙을 받아들이는 아이 위로 엄마의 권위가 눈부시다.
반짝이는 그것. 나도, 나도 그걸 원한다.
"밥 먹자, 유치원 가야지"
"나 국에 말은 거 싫어! 안 먹어"
"우리는 이걸 먹어야 해. 먹기로 했잖..."
"싫어 싫다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정적이 온다. 그럴 때 시간은 유독 빨리 간다
아이는 모든 사람에게 할당된 짜증을 다 거둬서 내게만 콸콸 쏟아낸다.
마치 장전한 총을 시원하게 갈기 듯 온갖 투정을 다부리지만, 난 꿋꿋하게 북유럽 여인이 될 것이다.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먹. 는. 다. 고~"
아이는 깊은 들숨과 함께 사자후를 뿜어내며 식탁을 밀어낸다. 순간 단전에서 삐-하고 경보음이 울렸다.
안돼. 난 아직 우아할 수 있어
순간 식탁을 밀어내며 중심을 잃은 아이는 의자를 드르륵 끌며 뒤로 넘어졌고 허우적 대던 손 끝에 밥그릇이 걸렸다.
내가 왜 국에 밥을 말아놨을까.
미역과 밥알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바닥에 그대로 우박 쏟아지듯 떨어졌다.
피익-! 이번엔 가슴팍에서 경보가 울린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물티슈를 뽑아 쏟은 곳으로 다가갔다. 아이도 놀랐는지 눈꼬리가 내려가며 눈치를 살살 본다. 우리 사이에 대화는 없다.
안 혼내. 오늘 너를 유치원 차에 태울 때까지, 절대 북유럽을 놓지 않을 거야
나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물티슈로 밥알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상황을 마무리하는 단정한 말이 필요하니, 한 움큼, 두 움큼씩 밥알을 집어내며 다짐하듯 말했다.
"밥 이렇게 먹으면, 내일부터는 혼날 수밖에 없다니까"
하는데 아이가 유치원 숟가락통을 들고 나온다.
"엄마 이거 지유랑 똑같아서 안 쓸래"
난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이 동그래졌다.
"똑같... 다고? 그냥 써, 어때 "
"싫어 다른 거"
아이는 나를 지나쳐 숟가락을 설거지통에 빠르게 집어넣었고, 새로운 숟가락을 찾겠다며 의자를 끌고 와서 손을 뻗었다.
그러다 수저통을 엎어버렸다.
아까는 밥알이었는데 이번엔 숟가락과 젓가락이 우박이 되어 쏟아졌다.
유치원 차가 오기까지 3분이 남아있었다. 지금 나가도 못 탄다
아 나의 북유럽이여...
손에 쥐고 있던 그녀의 발목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안 보내려고 했는데, 얇고 단아한 그녀가 그렇게 가버리고 있다
난 무릎을 잡고 일어나며 딸아이를 불렀다.
"이다빈, 너 궁둥이 대, 일로와!!!"
유치원 차도 가고, 수저통도 가고...
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