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강 Mar 28. 2023

비문(非文)들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입술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더라면 말은 세속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져보면 입술은 차고 습한 사물이다 언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우랄산맥을 오르는 캄차카반도의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순록이었고 그때 우리에게 아버지 따위는 없었다 언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야만과 혼례를 치르고 옛날을 달리는 짐승처럼 신성했었고 그때 우리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마침내 삶은 불멸로 타락했고 마침내 삶은 아버지라는 궁리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오늘은 불임의 태초, 아무 것도 수태하지 않는 말들의 순례는 시작되었다 이 말이 다형체다 언어는 언어와의 교미만을 지향한다 만삭의 밀어들이 새카맣게 말라죽을 때까지 입속의 내 말이 다형체다 당신은 현재에서 현재로 불멸하는 종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에게로 회귀하는 자, 삶이여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당신의 화법이 내 입속의 혀처럼 부드러워 이 말이 다형체다,      


부르는 대로 피어주마 

작가의 이전글 최초의 습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