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을 위한 여행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녹음이 짙은 숲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듣고 다람쥐를 기다리는 여정은 말 그대로 지친 우리의 삶에 자그마한 휴식이 되곤 한다. 하늘로 쭉 뻗은 나무가 내뿜는 숲의 정기를 즐기며 황톳길 위를 맨발로 걷다 보면 지친 일상도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져 간다. 청설모나 다람쥐를 찾으며 천천히 걷는 일도 즐겁고 중턱에서 도시락을 꺼내먹으며 쉬었다(?) 가는 그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그뿐만 아니라 산속 깊은 곳에서 즐기는 캠핑에는 BBQ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도심에서는 즐길 수 없는 숯불향 가득한 그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면 그간의 피로는 싹 가신다. 잠들기 전까지는 모닥불 역할까지 해주니 '불멍'하기에 이보다 더한 장소는 아마 없을 듯하다. 한구석에 텐트를 쳐두고 야밤에 얼굴만 밖으로 꺼낸 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자면 장엄한 그 광경에 압도되니 그 기억은 꽤나 오래간다. 야밤에 오들오들 떨면서 보내는 그 하룻밤은 즐겁다.
고행 마저 즐겁게 받아들이던 그 낙천적인 마음가짐이란 한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수 있는데 그렇게나 푸근한 힐링의 유효기간이란 딱 해가 뜨기 전까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가운 바닥에서 잠든 탓에 온몸에는 냉기가 서려있고 허리와 목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한쪽 방향으로 45도 이상 틀어지질 않는다. 거울에 비친 내 머리는 이미 떡이 되어 있고 얼굴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마저 올라오니 그야말로 여기서 버티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 곳을 얼른 떠나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텐트를 걷으려는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짐 정리를 마치고 나면 이제야 비로소 몸의 근육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휴양지의 정문을 나서면 지난밤의 힐링된 느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저 출근하는 느낌만 남는다. 어쩔 수 없다. 고행은 이제 그만두고 다음번 여행이라면 별다른 준비 없이 그저 호텔로 가서 신나게 놀다 오는 럭셔리한 여행을 꿈꿔본다
누가 정한 기준인지 혹은 그 기준이 정확하게 내가 산정한 별점과 일치할지 여부는 물론 불투명하지만 5성급부터 모텔(?)까지 호텔로 떠나는 여행이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면서 때론 설레게(?) 한다. 이곳은 심지어 시설도 잘 갖추었고 직원들은 항상 친절하며 공간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기 때문에 이렇듯 누가 궁지에 몰아넣고 강매하는 상황도 아닌데 (내) 지갑은 자연스럽게 열린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챙긴 뒤에 수영장에 가서 가운데 레인으로 거침없이 입수한 뒤 왕년의 수영실력을 맘껏 뽐내다가 이내 지쳐서 쓰러질 때면 선베드에 누워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휴식의 시간이 수영하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지만 이 자체가 즐거움 아닌가. 애초부터 수영이 목적이었다면 오션월드를 갔겠지. 나는 분명 별다른 준비 없이 그저 호텔에 와서 쉬고 놀 수 있는 그런 여행을 계획한 것이라고 스스로 되뇐다. 어느 정도 운동을 했다 싶으면 호텔 내부를 어슬렁 거리는데 이마저도 즐겁고 볼거리는 가득하다. 로비의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축내면서 지나다니는 이들을 구경하는 일 마저 즐겁다. 곧이어 바깥으로 나가 호텔 주변의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올 때도 있는데 그러고 나면 마치 호텔이 내 집처럼 느껴진다.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룸서비스로 시켜서 먹는 일도 호캉스의 재미겠다 싶어서 방으로 들어간다. 티브이는 별다른 채널이 나오지는 않아도 노트북 컴퓨터만 가지고 있으면 넷플릭스를 연결해서 볼 수도 있으니 볼거리도 가득하다. 더욱이 침대는 얼마나 큼지막하고 베개는 어찌도 이리 푹신푹신한지 아마도 누우면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암막커튼을 치면 한줄기 빛도 허용하지 않는 이 공간을 두고 조금의 적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느껴지는 나의 솔직한 감정이라면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집 내버려 두고 여기 와서 라면을 시켜먹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내 모습에서 기묘하고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이런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더냐.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 여행 중 최고의 묘미인 조식 뷔페가 나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베이컨을 두고 이곳에 오기만 하면 몇 번이든 다시 가져와 먹는다. 어쩜 이리도 얇게 썰었는지 그리고 어쩜 이리도 바싹 하게 구웠는지 감탄하면서 그저 입으로 가져가고 또 가져간다 간다. 계란 요리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해 먹는 반숙이나 호텔의 조리장님이 해주는 반숙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도 몇 번이든 먹는다. 밥에도 올려먹고 계란을 접시 가운데 두고 칼질을 해대며 먹기도 한다. 계란의 일일 권장섭취량은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데 그래도 여전히 맛있다. 평소에는 시원한 음료가 아니면 애당초 손에 들지 않겠지만 이곳에서 주어지는 미지근한 주스와 우유마저도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준비하는데 앞선 힐링여행과는 달리 짐을 싸는 이 순간도 나쁘지 않다. 마치 해외여행을 왔다가 귀국을 준비하며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을 외치며 집으로 갈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이 순간도 즐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나 즐거운 기억도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이면 이내 무너진다. 내역서를 받아 들면 일단 그야말로 눈은 휘둥그레 지는데 그 항목을 조목조목 따져서 확인하면 도무지 내가 소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왕뚜껑을 내버려 두고 방에서 특제 해물라면을 시켜먹은 일은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심지어는 카드로 현장에서 결제한 줄 알았던 금액들이 모두 룸 차지로 합산되어 있는 작금의 현실은 보고 또 봐도 믿기질 않으니 역시 기억 앞에 우리는 모두 겸손해야 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면 그제야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가 온다. 멀쩡한 집을 두고 지난밤에 무엇을 하다 왔는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여하튼 지난 일이니 만큼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일을 하지 말자며 애써 다짐을 한다. 다음의 여행이라면 힐링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고 새로운 장소를 향하고 싶어 진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John(가명)과 뉴욕에 사는 Steven(역시 가명)이 여름휴가를 앞두고 약 두 달간 서로의 집을 바꾸어 살기로 계약했다는 일을 아주 오래전 어느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솔직한 생각은 '도대체 자기 집 내버려 두고 왜?' 였으니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속초에 있는 외가댁이나 남해에 있는 삼촌댁으로 놀러 가는 것 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비행기 타고 남의 집을 빌려서 놀러 간다는 그 개념이 그 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했으니 항상 호텔로 펜션으로 그리고 텐트 안으로 놀러 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차피 호텔방도 따지고 본다면 내 소유가 아닌 남의 부동산중 일부인 것이고 텐트 치고 바깥에서 보내는 그 하룻밤도 누군가의 땅 위에 사용료를 내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보내는 고행 아니던가. 집을 빌리는 일도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물론 그 집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을 테고 나만 이용할 수 있는 앞마당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널찍한 침대와 편리한 생활기반마저 갖추었을 테니 어쩌면 힐링도 하고 호텔처럼 편하게 휴가를 보낼 수도 있어 보인다.
서해바다에서 일몰만 보며 자란 사람이라면 동해바다의 일출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소만 바꾸어 생활해도 그야말로 내 마음에 힐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이 바로 에어비앤비다. 물론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민박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펜션도 그렇고 독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숙박에서 하나 더 발전한 분야가 바로 '남의 집을 빌려서 내 집처럼 살아보기'가 될 것이다. 펜션이나 민박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에어비앤비'에서는 느껴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남의 집을 빌리는 일이란 놀러 가서 잠을 자기 위한 장소를 찾는 그 행위를 뛰어넘어 그 동네의 사람이 된 거 마냥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이 살던 집이었기 때문에 산골이나 길이 끊어진 곳 또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집 주변에는 (호텔만큼은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편의사항이 뒤따른다. 더욱이 이곳은 체크인도 그렇고 체크아웃도 그렇고 불필요하게 호스트를 만날 필요도 없으니 요즘 같은 시기에 참으로 편리하다. 그리고 이런 숙소라면 에어비앤비의 지침을 따르며 이용객이 가감 없이 별점으로 평가하기에 관리도 나름 잘되는 편이다. 평점에 따라 그리고 가격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동일한 시스템으로 전국 팔도에 퍼져 있는 수많은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남의 집을 이용하며 그 동네에서 (주민처럼) 살아보는 경험도 이제는 하나의 여행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해안가에 자리를 잡아 우수한 장관을 자랑하는 집도 있는가 하면 피톤치트 향기 물씬 풍기는 수목림 근방에 자리를 잡은 집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저 쇼핑하듯 둘러보고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결점이 없어 보이는 이 여행패턴도 아쉬운 점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취소 요청"이 되겠다. 총 세 번을 이용하는 동안 모두 그러했다. 한 번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른 포털을 통해서 예약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번거롭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였다. 다른 두 번은 여행을 마치고 체크아웃하고 나오는 와중에 연락이 왔고 다음에 올 때는 에어비앤비 말고 전화로 예약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수수료가 비싸다는 입장이라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중개 플랫폼을 두고 별도로 돈을 주고받는 것이 구태한 방식이라 생각도 들고 추후에 분쟁이 생겼을 때를 고려한다면 플랫폼을 이용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대를 애써 배려한다고 하여 상대방도 나를 굳이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솔직히 우리네 삶의 자명한 '현실'이 아니던가. 안타깝지만 수수료를 지불하고 그리고 이용객은 할인(?)을 받지 않는 편이 오히려 잠재적인 분쟁을 줄일 수 있는 이 시대의 트렌드인 셈이다.
'안타깝지만 그 제안은 제가 좀 거절할게요.'
물론 피해를 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호텔이란 동일 브랜드라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가 제공되며 캠핑을 위한 장소도 웬만해선 그 분위기가 변하지 않기에 언제건 다시 이용해도 이전에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얻을 수 있다. 반면에 개인이 운영하는 장소라면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가늠을 할 수가 없고 막상 가보면 후회하는 일도 더러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방문한 그곳이 좋다면 두말 않고 다시 방문하려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플랫폼을 이용한 예약과 결제가 거절되는 상황을 감내하면서 까지 굳이 방문할 정도는 아니기에 안타깝지만 목록에서 지워버리고 나니 내 추억마저 사라진 것 같아 가슴 한편이 허전해진다. 바다 너머로 해 뜨는 장관을 볼 수도 있으며 마당 딸린 집에 그리고 조용한 동네까지 하루 이틀 쉬었다(?) 갈 그 장소를 찾았음에도 '밀당'을 해야 한다니 참으로 번거롭고 피곤하구나.
결국엔 돌고 돌아 마음과 몸을 쉬게 할 만한 힐링여행이 다시 생각난다. 그저 두 다리 뻗고 누울 장소와 벌레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텐트만 있으면 충분하다. 좋아. 다음 여행은 숲에서 보내는 '힐링 여행'이다.
여행을 향한 '의식의 흐름'도 이렇듯 계속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