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안고 내게로 온 너>
부드러운 뜨개실처럼 폭신한 털을 쓰다듬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첫 반려견인 츄는 나보다는 살짝 더 따뜻해서 그 아이를 쓰다듬다 보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에 가슴팍에 꽉 껴안고 싶어지곤 했다. 흰색과 밝은 갈색이 섞인 마치 인절미 같은 털에 새까맣고 촉촉한 코, 기분이 좋을 때면 헥헥거리며 내밀던 맑은 선분 홍색 혀까지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특히나 츄의 눈동자를 좋아했다. 엄마는 늘 츄의 눈이 너무 예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고 새까맣고 맑게 빛나는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그 아이가 그토록 사랑스러웠는지는 모르겠다. 츄와 나의 첫 만남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츄의 품종은 시츄였는데 사실 나는 시츄가 아니라 하얗고 동그란 포메라니안을 입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이 잘생긴 시츄 한 마리를 보게 되면서 츄를 데리고 오게 됐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은 이내 츄에게 흠뻑 빠지게 되었다. 이가 가려워 내 손을 깨물기도 하고, 과일 포장용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기어다니는 걸 볼 때면 이렇게 사랑스럽고 작은 존재가 다 있구나 싶었다.
인터넷에서 반려견은 여자에게는 자식, 남자에게는 제일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글귀를 봤었는데 그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츄를 키우기 전에는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말이 조금은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츄가 내 삶에 들어오고 나니 가족, 말 그대로 내 자식과 같이 느껴졌다. 반려견을 입양한 줄 알았는데 자식이 한 명 생겨버렸다. 종종 엄마와 나는 자신이 츄의 엄마라며 투덕거리곤 했다. 참고로 지금까지도 츄의 엄마 자리는 서로 양보하지 않는 중이다.
확실한 것은 츄를 데려온 뒤로 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츄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아지와 어린아이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강아지와 어린아이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존재이기에 보호자와 부모의 행동이 너무 중요하다는 점, 둘 다 그들에게 이유 없는 무한한 애정을 준다는 점, 보기만 해도 사랑으로 물들어 가슴이 벅차다는 점까지 닮은 점이 아주 많았다.
츄를 키우기 전에 나는 어린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귀엽기는 했지만 시끄럽고 많이 울고 다소 피곤한 그래서 잠깐 볼 때야 귀여운 존재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식이 한 명 생겼고 그 덕분에 내 자식이 예쁘면 남의 자식도 예뻐 보인다는 말처럼 츄를 키우고 난 뒤 어린아이들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츄를 겪고 나서야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알았다. 작고 보드라운 존재들, 사랑으로 가득한 그 존재들이 좋아졌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매우 크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사랑이야말로 정말 크다고 느꼈다.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듯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존재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츄가 오면서 내 세상이 더 넓어졌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늘면서 내 세상을 구성하는 색들이 더 다채로워졌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엉엉 우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뭐가 그리 불편하고 서러워서 울까?’ 궁금하고 짠 해졌고, “아빠~” 혹은 “엄마~”하고 부르며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날 보며 반가워 뛰어오는 츄가 떠올라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내게 강아지와 아이들의 귀여운 겉모습이 아니라 부모에게로 달려오는 순간 그들 마음속에 가득 찬 애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츄로 인해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그렇게 또 하나 늘어났다.
<그해 여름>
대학원 인턴을 가기 전 약학대학 4학년부터 5학년 1학기까지, 일 년 반 동안 코로나로 인해 재택수업을 했다. 그 덕에 츄는 내가 화상 수업을 듣는 동안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잠을 잤고, 수업이 끝나면 뒷산에 함께 산책하러 갔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린 함께였다.
5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되었다. 사방에서는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며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끝으로 밀려 들어와 숨 막히게 하던 여름이 왔다. 나는 대학원 실습을 위해 본가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 5학년 겨울 방학부터 그다음 해 겨울까지 약국, 병원, 대학원, 제약회사 등에 가서 직접 약학 업무를 배우는 실무 실습을 진행했다.
그렇기에 5학년 여름 방학은 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보통 친구들은 이쯤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과 마지막 방학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달리 나는 자교를 떠나 타 대학으로 가신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요청해 대학원 실습을 가게 된 것이었다. 정말 가고 싶던 실습이었지만 항상 츄와 붙어있던 터라 우리가 오래 떨어지는 게 걱정이 되었고 떨어져 있는 기간 동안 츄가 나를 찾을까 마음이 아팠다. 잠시 인턴을 다녀올 거니까 한 달만 기다리라는 사실을 츄에게 이해시킬 방법이 없어 속상할 따름이었다.
한 달 동안 집을 떠나기 전 남동생과 나는 츄와 함께 우리가 제일 좋아하던 삼락 공원으로 마지막 산책하러 갔다. 삼락공원, 그곳은 여름이면 잔디가 무성했고 드넓은 평지로 되어 있어 실컷 뛰어놀 수 있었다. 발목 위로 올라오는 잔디를 전력으로 뛰어다니며 한 번은 츄가 우리를 쫓아오고 한 번은 우리가 츄를 쫓아가는 식으로 놀곤 했다. 웃긴 건 츄가 우리를 쫓아오다가 다른 방향으로 새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와 동생의 진짜 술래잡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와 남동생의 마음도 모른 채 쫓아오는 우리를 따돌리기 위해 신이 나서 뛰어가는 츄를 슬라이딩해서 잡곤 했다. 그리고 츄가 도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토끼처럼 뛰다가 도랑 아래로 쏙 사라지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날도 몇 시간 동안 셋이 함께 전력 질주를 하고 놀았고 근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숨을 골랐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따뜻한 바람을 타고 풀 내음이 품겨왔다.
그 뒤 나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대학원 학생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연구하랴 대학원 생활에 적응하랴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종종 언니에게 전화가 와 츄가 내가 공부하던 책상으로 걸어가 내가 있는지 보곤 한다는 얘기와 책상 밑에서 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곤 했다. 그래도 한 달 뒤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것이고 가족들이 츄 곁에 있으니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원 인턴 생활의 마지막 주 어느 날 밤에 친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언니는 내게 츄 이름을 불러줄 수 있냐고 말했다. 내가 “츄야~” 하고 이름을 부르자 언니는 “어?! 네가 부르니까 쳐다본다”라며 말했다. 남동생이랑 함께 산책을 나왔는데 츄가 걷지 않고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네가 보고 싶어서 기운이 없나? 싶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강아지에게 산책은 숨 쉬는 것과 같은데 이상하다고 내일 아침에 꼭 병원에 가보라고 몇 번을 당부하며 전화를 끊었다.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6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츄가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한 결과가 나왔었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해준 명태전 열 조각을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을 하나씩 되뇌면서 불안한 마음을 애써 잠재우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여느 때와 같이 연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부산에 지금 당장 내려올 수 있냐고, 츄가 방금 죽었다고 말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해 되물었고 내가 들은 것과 바뀌지 않는 대답을 하는 동생에게 이런 장난치는 거 아니라며 화를 냈다. 동생은 장난이 아니며 여름이라 시체가 부패 될 수 있어 오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저녁 전에 내려오지 못하면 츄의 마지막 모습을 못 볼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공항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렸고 공항에 도착해 탈 수 있는 제일 빠른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츄의 마지막 모습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학원 사람들에게 엉엉 울며 집에 급히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공항으로 떠났다.
택시를 타면 막힐 수도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길치였기에 네이버 지도가 없으면 길을 헤매곤 했다. 무사히 부산에 도착해 츄를 봐야 했기에 울음을 그치고 환승해야 할 역과 방향을 외웠다. 이후 공항에 도착해 눈물, 콧물이 된 얼굴을 씻기 위해 공항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공항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눈물로 투명해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갈아끼고 비행기에 타자 그제야 안도감과 정말 츄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너무 울자, 승무원분들이 나를 걱정하며 계속 쳐다봤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더웠던 만큼 그해 여름은 붉은 노을이 예쁘던 해였고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을 보며 계속하여 울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공항에서 내리자,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속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해가 질쯤이라 장례식으로 가는 차 안으로 오후에 비해 식은 공기가 몰려왔다. 맑은 날씨와 신선한 공기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 생소하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명주실처럼 폭신한 털을 쓰다듬었는데 항상 따뜻하던 츄의 몸이 차가웠다. 나는 막연히 츄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곤 했다. 크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서로 사랑한 뒤, 츄가 우리 곁을 조만간 떠날 수도 있다고 예견되는 시기쯤 가족들 품에서 츄를 보내주는 모습을 그렸다. 내가 머릿속에 그린 그 여러 번의 츄의 마지막 순간들 속에 내가 없던 적은 없었다. 방심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마지막이 내 생각대로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 예고 없이 이별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내가 그 순간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고 방심했다.
장례를 치르고 꽤 오랫동안 집에 있는 게 힘들었다. 내 일상에는 매 순간 츄가 있었다. 집을 들어오면 타닥타닥 발소리와 함께 우리를 반겨주던 모습도, 샤워하고 화장실을 나오면 떡하니 문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눈동자도, 잘 때 내 발 옆에 와서 앉아 뜨끈하게 기대던 체온도 없다는 사실이 집을 들어올 때, 화장실을 오고 갈 때, 자고, 일어날 때마다 뼈저리게 느껴져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며칠 간은 같이 집 거실에 누워 가족들과 츄와 있던 일들을 얘기하며 울다 웃었다. 죽기 며칠 전에도 명태전을 그렇게 잘 먹는 강아지가 어디 있냐, 더 달라며 엄마 손을 치더라, 뒷산에 산책하러 가면 등산하던 아저씨들이 츄 몸이 아주 탄탄하다고 칭찬해 줬는데 등의 추억을 하나씩 풀어내며 츄의 빈자리를 츄와의 추억으로 메꾸며 밤을 지새웠다.
츄가 떠나고 첫 석 달밤은 내게 너무 길었다. 일주일 중 네다섯 날을 새벽까지 울다가 잠들곤 했다. 나는 길고 긴 생각과 뒤엉킨 감정들과 함께 긴 밤을 지새웠다. 츄를 향한 내 마음은 고마움, 안식, 그리고 죄책감 그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고마움과 안식. 츄를 만난 첫 순간부터 나는 그 아이의 세상 전부가 되었다. 어린아이들은 자라며 친구가 생기고,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의 세계 속 부모의 존재는 작아지고 새로운 세상을 꾸린다. 하지만 반려견은 계속 어린아이인 채로 있는다. 보호자와 처음 만나서 가족이 되고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보호자는 그들의 세상이 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빈틈없이 우리를 사랑한다. 츄는 우리가 만난 그 순간부터 우리가 헤어진 그 순간까지 ‘나’라는 사람을 내 존재만으로도 빈틈없이 사랑해 주는 존재였다. 게다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을 늘려줬다. 그 사실이 내게 고마움과 안식을 안겨줬다.
죄책감. 츄는 내가 없으면 혼자서 산책할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츄가 없어도 산책할 수도,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내 세상의 전부는 츄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내게 죄책감을 안겨줬다. 그 죄책감이 이제까지의 나의 행동과 선택에 관해 물음을 던지게 했다. 왜 아픈 걸 몰랐을까, 왜 나는 대학원 인턴을 하러 서울에 갔을까, 조금 더 병원에 빨리 갔으면 츄가 살았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밧줄이 되어 내 마음을 옥죄였다. 내가 츄에게 준 사랑보다 츄가 내게 준 사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당최 나는 모른 척 이 감정들을 넘겨버릴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츄를 떠나보낼 때의 나는 감정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법에 서툴렀다. 그래서 내 마음을 꽁꽁 둘러싼 밧줄을 풀어내는 법을 몰랐고 감정의 바닷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러한 밤을 보낸 지 석 달이 되던 째, 절친한 의과대학생이던 친구는 내게 심리상담을 추천했다. 상담을 통해 내 감정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 뒤섞인 감정들에 이름표를 달아주며 츄를 향한 고마움, 안식, 그리고 죄책감까지 모두 마주할 수 있었다.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한 가지 사실이 보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순간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며 그러기에 순간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일상을, 존재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에 떠날지 몰라 슬퍼하기보다는 그들이 잠시 나에게 온 선물임을 알게 해줬다. 헤어짐에 슬퍼하기보다는 우리의 만남과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츄와의 이별을 겪고 내 삶의 밀도가 달라졌다. 모든 순간에 끝이 있음을 상기하게 되면서 어떤 순간이든 소중해지는 마법을 배웠다. 이 순간을 다시는 겪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길을 걷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도, 가족과 맛있는 밥을 먹고 손을 꼭 잡는 순간도, 눈 부신 햇살에 눈을 뜨는 아침도 마법처럼 너무나도 소중해진다. 당장 내일 이 순간들을 누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소중히 여기는 모든 순간을, 모든 존재를,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이고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