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튼애플 Aug 09. 2020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화려하지 않아도 반짝이는 영화

영화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줄거리 및 리뷰

2년 전, 원 테이크 좀비 액션이라는 특이한 컨셉으로 데뷔한 감독이 있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로 일본 코미디의 부활을 알린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이 그 주인공.


그리고 올해, 더 특이한 컨셉의 코미디 영화로 그는 극장가를 찾아왔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주인공과 이색 제안을 해온 의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로 말이다.

영화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줄거리


영화는 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카즈토의 시점을 따라 흘러간다.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독특한 질병을 앓았던 탓에 번번이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만다. 그의 병은 긴장 상태가 되면 기절해 버리는 심리적 질환.


이 문제 때문에 보안 요원 아르바이트도 잘리고 밀린 집세마저 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카즈토. 그런 그의 앞에 동생 히로키가 나타난다.


5년 동안 못 본 사이 히로키는 배우가 되어 있었고 카즈토에게 배우 에이전시인 스페셜액터스를 소개해준다. 그런데 이곳이 다른 에이전시와 달랐던 건 의뢰인 맞춤 상황극을 제공한다는 것.


돈이 급했던 만큼 이 일을 거절할 수 없던 카즈토. 그런데 하루는 큰 의뢰가 들어온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언니를 구해달라고 스페셜액터스를 찾은 고등학생 유미.


큰돈을 내미는 의뢰인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카즈토는 동생 히로키와 함께 사이비 종교에 잠입한다. 이 종교의 이름은 무스비루. 종교의 이름처럼 주먹밥을 만드는 시늉을 시키기도 한다.


카즈토는 처음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유미의 언니였던 리나는 이 종교에 홀딱 넘어가 부모님이 운영하던 여관까지 넘기기로 한다.


한편 신입 회원 환영회 때 카즈토는 언제나처럼 긴장한 나머지 기절하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던 카즈토는 비밀 경전과 함께 이 사이비 집단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에이전시 사람들에게 공유하게 되고, 에이전시는 모든 배우들과 함께 사이비 종교 무스비루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운다.


언제나처럼 잔뜩 긴장한 채로 마지막 연기에 나선 카즈토와 익숙한 듯 합을 맞추는 스페셜액터스 배우들.


과연 이들은 마지막 작전, 아니 마지막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의뢰인의 요청대로 리나를 이 종교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다른 연출, 같은 웃음


이 작품은 전형적인 일본 코미디 영화라 볼 수 있다. 잔잔한 일상을 깨는 돌발 행동, 그 속에서 벌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좌충우돌 문제 해결이 주가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원 테이크 촬영 장면이 있는지였다. 전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무려 37분 간의 원 테이크 촬영씬을 넣었던 신이치로 감독이 비슷한 연출을 가져가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치로 감독은 똑같은 성공 패턴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원 테이크 씬은 고사하고 길게 시간을 들여 찍는 롱테이크 씬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완전히 다른 연출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흐름만 본다면 전작에서 초반 원테이크 장면이 아닌, 후반부의 촬영 장면을 많이 닮아 있었다고 봐야겠다.


이렇게 달라진 연출 속에서 달라지지 않은 건 신이치로 감독 특유의 가벼운 유머였다. 침착해야 할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허둥지둥 당황하기 바쁘다. 그리고 이 돌발 상황 속에서 감독은 자연스럽게 유머 코드를 녹여내고 있었다.


굳이 생각을 많이 하고 기억해야 할 게 많은 영화가 아닌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보기 좋은 작품이라 봐야겠다.

또 하나 변하지 않았던 건 신이치로 감독의 캐스팅 스타일이다. 대부분 무명 배우를 캐스팅해 전작의 큰 성공을 일궈냈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화려함과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주연 배우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며 다른 작품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는 배우들도 주연급을 맡은 적이 없을 정도로 무명에 가깝다. 심지어 몇몇 출연자는 연기 경험이 일절 없는 아마추어를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단점이 아니라 신이치로 감독의 연출을 더 빛나게 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친근한 옆 집 이웃 같은 익숙한 캐릭터의 사용, 그리고 화려한 캐스팅에 기대는 게 아니라, 독특한 연출로 승부를 보는 신이치로 감독의 뚝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기획사를 통해 이른바 '끼워넣기'를 하는 일본의 폐쇄적인 캐스팅 시스템의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신이치로 감독은 세상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빼놓지 않았다. 전작이었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열악한 영화 촬영 현장과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갑질 문제를 꼬집고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이비 종교와 현대인들의 트라우마를 집중 조명한다.


사람이 가장 약해진 틈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는 단순히 개인을 넘어 한 가정을 파멸로 까지 이끈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의 리나에게 접근한 ‘무스비루’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


주인공 카즈토 또한 이와 유사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압박감이 생기면 기절을 하는 이상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가족 관계와 더불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곳곳에 주인공 '카즈토'와 같은 사람들이 생기게 만든 것이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제대로 치유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큰 몫을 떼어가려는 검은 유혹.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현대 문제를 아주 정확히, 하지만 무겁기보다는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거짓투성이 세상 속 유일하게 진실로 빛나는 것


‘스페셜액터스’라는 에이전시는 결국 의뢰인에게 부탁을 받고 특정한 상황을 꾸며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좋게 이야기하면 의뢰인의 취향에 맞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거지만, 근본적으로 이 상황은 ‘거짓’의 속성을 띤다.


작품 속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인 무스비루도 마찬가지. 이들 역시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신을 모시며,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타마루를 통해 많은 교인을 현혹시켰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을 위해 움직이고, 거짓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허무맹랑한 설정 탓에 웃음이 터져 나오긴 하지만 사실은 꽤 큰 문제와 직면하고 있었던 것.


이렇게 주변에 거짓말쟁이들이 모이자 작품 속 등장인물들 행동 하나하나가 수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누구부터 누구까지가 거짓말쟁이인지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져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유일한 가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가족이었다.


언니를 사이비 종교에서 구해내기 위해 부모님이 남긴 유산 전부를 헌납하기로 한 유미의 행동이 그랬고, 형이 진짜로 바라던 배우라는 꿈을 응원하고 있었던 히로키의 행동이 그랬었다.


이들은 거짓말이 판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혈육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노력이 각각 다른 결과로 맺어지긴 했지만, 이들의 행동은 결과를 떠나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코미디 영화라 볼 수 있는 장르의 작품이지만, 나름의 감동 포인트를 이런 요소를 통해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영화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일본 영화 시장은 애니메이션 혹은 라이트 노벨의 실사화가 점령한 지 수년이 흘렀다. 자연히 거장급이라 부를 수 있는 감독 몇몇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영화를 찍어내는 감독도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는 단순히 영화계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이돌, 혹은 모델을 하다 유명세를 얻고 나면 전격 주연 발탁. 당연히 부족한 연기력일 수밖에 없지만 인기만을 의식한 캐스팅은 섬세한 감정 묘사가 필요한 작품 제작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OTT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혹은 한국 영화가 일본의 콘텐츠를 누르고 인기 콘텐츠 줄 세우기를 한다는 것 역시, 일본 시청자마저 자국의 뻔한 영화와 드라마의 등을 돌리고 있다는 반증이겠다.


그런 일본 영화 시장에서 신이치로 감독 같은 별종의 등장은 너무나 반가웠다. 다른 거장들과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 세계지만 충분히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감독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앞서 짚었던 것과 같이 폐쇄적인 캐스팅 시스템에 기대기보다, 작품에 꼭 필요한 이미지를 위해 오디션으로 아무런 차별 없이 배우를 선별한다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일본 영화 시장에 좋은 배우들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창구가 될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큰 발전이 기대되는 신이치로 감독의 후속 작품, 그리고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일본의 코미디 영화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UDEVhsOrs


매거진의 이전글 <조> 로봇이 사랑의 감정을 배운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