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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Jul 28. 2020

<조> 로봇이 사랑의 감정을 배운다면

영화 조 줄거리 및 리뷰

로봇이 나오는 영화라고 하면 우리는 으레 화려한 그래픽과 엄청난 기술력으로 무장한 로봇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로봇 영화가 이처럼 흘러가니 이는 단순한 선입견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큰 팬덤을 가진 마블의 히어로 시리즈의 <아이언 맨>이 이에 해당하며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간다면 <트랜스포머>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로봇 영화가 첨단을 걷는 기술력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인간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 그리고 있어선 안 되는 감정까지 생긴 로봇 조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선 말이다.


영화 조 줄거리


주인공 콜은 관계 연구소라는 곳에 총책임을 맡고 있다. 그의 연구는 동반자가 되어줄 로봇을 만드는 것. 그런 콜에게는 아주 똑똑하고 뛰어난 조수가 있었는데, 그 조수가 바로 ‘조’였다.


이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 혹은 권태기에 놓인 부부에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즉, 상대와 얼마나 잘 맞는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하루는 조가 콜에게 자신도 관계 연구소 프로그램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검사가 진행되고, 추출된 데이터를 가지고 조는 콜과의 매칭 점수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려준 두 사람이 잘 될 가능성은 0%.


좋아하는 상대였던 콜과 나쁜 점수를 받게 되자 조는 혼란에 빠진다. 웬만큼 나쁘더라도 0%의 수치는 본 적 없었기에 더 충격이었던 것.


그날 밤, 그녀는 콜에게 커플 매칭 프로그램 결과 0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콜에게서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


자긴 연구소 제품이야.
 나와 커플 가능성이 0으로 나온 이유도 기계는 자기가 로봇인 걸 안 거야.

다음 날에도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녀에게 콜은 천천히 이야기를 하며 달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 조, 그리고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콜은 마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치 연인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일 수 없다는 것에 조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슬픈 상황에서도 눈물을 흘릴 수 없던 그녀.


얼마 뒤, 두 사람은 로봇 전시회에 참여하게 된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애쉬와 조처럼 완전히 사람과 같은 형태,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로봇은 없다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전시회를 참석했던 콜 역시 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며 기계와 인간이라는 물리적인 장벽을 깨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조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부상을 입자 그녀가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게 또 한 번 증명된다. 피가 아니라 부품이 새어 나왔던 것.


과연 이 두 사람. 아니 인간과 로봇의 사랑은 가능했던 걸까?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깨우쳐버린 조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짜 사랑의 의미


이 작품은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꽤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외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조는 자신이 로봇 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만들어내고 프로그래밍했던 책임자 콜 에이즐리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 때문에 조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선 나오기 힘든 커플 매칭 결과표에 0퍼센트라는 수치가 나왔기 때문에.


물론 이는 프로그래밍된 감정이 아니라 돌연변이처럼 그녀가 감정이라는 걸 익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자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 하나가 발생한다. 인간 콜과 로봇 조와의 관계,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감정이 어떻게 해석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분명 이를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랑의 감정처럼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그녀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제조품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모습으로 생산이 무한정 가능한 ‘조’라는 상품은 일정한 성장기를 거친 뒤 죽음을 맞이하는 생물들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를 사랑이라 부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조의 감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아니다. 그녀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된 로봇이다. 적어도 이 감정만큼은 다른 로봇과 그녀를 구분 짓는 하나의 개성으로써 작용한다.


이는 '베니솔'이라는 약물을 통해서만 서로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 시대의 인간들보다도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사랑이었다.


‘베니솔’은 로봇 개발과 더불어 관계연구소의 주력 상품 중 하나였다.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졌던 순간처럼 느낄 수 있는 약품.


즉, 이 작품 속 사람들은 평소 무딘 감정으로 서로를 대할 뿐이었고 약물을 통해서만 서로 좋아하는 것처럼 껴안아왔던 것이다.


이 단계에서 돌아보면 과연 어떤 게 진짜 사랑이고, 어떤 게 가짜 사랑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단순히 ‘조’가 로봇이라는 이유로 진실된 감정이 외면받는 게 합당한 건지, 반대로 그저 인간이라는 것 때문에 약물로써 얻어지는 유사 사랑 감정이 진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로봇 산업의 현재와 미래


이 작품은 로봇 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로봇은 공장이나 수술, 길 안내 등에 사용되고 있다. 분명히 예전보다 다양해진 활용 모습이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사용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 먼저 콜의 조수였던 조는 말 그대로 웬만한 인간보다 훨씬 더 유능한 사원이었다. 그의 연구를 돕는가 하면 어떤 사람보다도 그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로봇 발명의 이유가 인간의 활동을 돕고 정서적인 안정을 꿰하기 위함이라면 ‘조’라는 로봇은 아주 충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기까지 한다. 로봇 산업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할 게 분명해 보이는 유사 성매매 업소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퇴폐업소처럼 보였던 이 장소는 ‘로봇 홍등가’ 격이라 볼 수 있다. 그녀의 말처럼 인간이 아닌 로봇을 사고파는 행위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성욕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향후 십 수년 뒤에는 인간과 완전히 비슷한 형태의 로봇과 성적 교감을 나눌 수도 있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을 돌아보게 될 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딱딱하고 완전히 이질적인 형태를 벗어나 점점 인간과 닮아가고 있는 로봇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 그리고 애쉬 등을 통해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로봇과 함께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생물과 사물을 구분 짓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일 것이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생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갖게 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의 고도화와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으로 감정의 역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해 벌어지는 사건, 혹은 범죄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감수성이 결여되고 공감이라는 연산 기관이 잘려 나간 것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었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무감각해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지금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미래의 인류가 '베니솔'이라는 약물 속에서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영화 속 사람들처럼 된다면, 그 어떤 것도 인류에겐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가 된다면 인간보다도 더 인간스러웠던 ‘조’처럼 우리는 로봇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는 그런 로봇과의 사랑 역시 하나의 문화,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인간이기에 존엄할 수는 없다. 인간이 존엄한 위치에 서 있는 건 다른 생물들과 달리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고도화는 인간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영역을 죽여가고 있다.


어쩌면 로봇에게 지배를 당하는 걸 두려워하는 '로보 포비아'적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로봇이 아니어도 인간은 껍데기뿐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 미묘한 미래의 로봇과의 공생 관계,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깨우친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 곱씹게 되는 작품이었다.


https://youtu.be/SXYxEtgYK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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