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튼애플 Jul 21. 2020

<반도> 좋은 재료로 정크푸드 만들기

영화 반도 리뷰 및 줄거리 분석

2016년 대한민국을 좀비 공포로 물들인 영화가 있다. 바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그 주인공.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된 부산행 신드롬은 천만 관객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올해, 연상호 감독은 또 다른 좀비물로 여름 극장가를 찾았다. 강동원, 이정현 주연의 영화 <반도>로 말이다.

영화 반도 줄거리


영화는 부산행 사건 이후 폐허가 된 4년 후의 대한민국을 비춘다. 단 하루 만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국가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


그 난리통 속에서 몇몇의 사람들은 홍콩으로 가는 탈출선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겪게 된 노골적인 한국인 혐오.


그들은 이 상황을 뒤집을 카드로 달러 송환 작전에 뛰어든다. 성공만 한다면 평생 먹고 살 돈을 받는다는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주인공 정석 역시 피난 과정에서 가족을 잃었고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큰돈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 작전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좀비로 가득했던 서울은 결코 만만한 땅이 아니었고 정석 역시 큰 어려움에 빠지고 만다.


좀비한테 물려 죽기 직전 ‘준’이 나타나 간신히 도망치게 되는 정석. 준을 따라간 그는 여전히 한반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준과 함께 있던 민정, 준이, 김 노인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631부대원들이 이들을 방해하고 나서고 좀비들까지 뛰어들며 한반도는 다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아포칼립스 상태의 대한민국을 비추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건 완전히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고작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마치 4세기는 흐른 것처럼 영화 속 서울은 알아보기 힘든 수준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국가가 이렇게 무너져 버리자 고통받는 건 당연히도 국민들이다. 좀비를 피해 도망가려던 수많은 국민들은 좀비의 추격으로 목숨을 잃는가 하면, 애써 도망친 타국 땅에서는 노골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상황과 빗대어보자면 코로나가 동아시아권에서만 창궐했을 때, 유럽 혹은 미주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고 무차별적 폭력을 당한 사태와 유사했다.


하지만 좀비들을 피해 간신히 한국 땅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처지는 조금 더 처참했다. 좀비의 눈을 피해 밤에만 활동해야 했고, 그마저도 631부대의 폭주 탓에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631부대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 집단이다. 원래는 민간인 구출에 힘썼던 이들은 아무리 구조 신호를 보내도 응답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내 타락해 버린다. 희망이 사라지자 절망과 분노를 표출할 배출구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해진 것.


인간성은 사라지고 가장 원초적인 욕구만 남은 이 집단은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이다. 자신들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쫓아낸 뒤 ‘들개’라 부르며 무시하는가 하면, 자신들처럼 먹을 걸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이 들개를 잡아 좀비와 대결을 붙이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숨바꼭질’이라는 말로 불리긴 하지만 사실상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콜로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혼자 살아남기 위해 631부대원들을 버리고 홀로 탈출 계획을 세우던 서 대위. 자신의 전투력과 업적을 앞세워 부하 병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던 황 중사. 그리고 사람들과 좀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구경하던 다른 병사들까지.


이들에겐 일말의 인간다움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오래 지속된 전투와 구조되지 않을 거라는 절망 속에서 이들에게 남은 건 폭력성과 잔인함이 전부였다.


카체이싱과 화려한 액션 장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밀도 높은 카체이싱 장면이다.


얼마 전 재개봉했던 영화 <매드 맥스>를 연상시키는 카체이싱 장면은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비단 헐리웃 영화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 영화의 기술력과 연출력 역시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당연히 훨씬 더 큰 규모의 좀비 떼 역시 관람 포인트라 볼 수 있다. <부산행>은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다 보니 좀비의 양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인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는 전 작품보다 훨씬 많은 좀비들과 화려한 총격씬, 전투씬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부산행>에서 규모의 아쉬움을 느꼈던 관객 역시 이번 작품에서 펼쳐지는 좀비 액션에는 만족할 거라 생각한다.


<반도>가 혹평받는 이유


작품의 의미와 재미있는 포인트가 위와 같다면 이 작품이 왜 이토록 혹평을 받는지도 알아봐야겠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가 없다.


으레 속편이 가지는 딜레마와도 같다. 전 작품이 잘 되었을 때 후속작은 웬만한 퀄리티로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예산을 쏟아부어 액션씬을 강조하는가 하면 악수에 가까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이 영화 반도가 정확히 그랬다. 훨씬 더 커진 좀비 스케일과 카체이싱 장면을 배치하면서 <부산행>의 신화를 이어가고 싶은 듯 보였지만 결과물은 초라했다.


작품의 개연성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사라져 버렸고 과도한 신파와 의도를 알 수 없는 슬로 모션의 남발로 영화는 스스로 좋은 평가를 받을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기존 한국영화들이 '신파'라는 키워드를 다룸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지만 이제는 관객들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눈물을 강요하는 씬을 보고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이런 장면들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를 알 수 없던 슬로 모션도 비슷한 맥락이다. 슬로 모션을 보여줌으로써 "자 이 장면 엄청 멋지지?"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정도의 액션 씬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차라리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등장인물의 매력과 등장 이유의 부족


또 하나 개인적인 아쉬움은 등장인물들의 매력과 등장 이유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특히나 주조연급 캐릭터가 너무나 평면적이어서 밋밋했다. 왜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되는 등장인물도 있으며 그렇게 등장한 인물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빌런 격이었던 서 대위와 황 중사의 캐릭터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가 왜 <다크 나이트>의 히어로인 배트맨보다 빌런인 조커에게 더 열광했었는가? 조커는 분명 악당이지만 자기 행동의 철학과 지향하는 나름의 유토피아가 있다. 하지만 반도의 빌런들에게는 이런 부분이 없다. 그러니 관객은 빌런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도 공감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주인공 '정석' 역시 매력적이지 않았다.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액션은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이렇게 영화는 스스로 자기 살을 깎아 먹었다. 분명 전작의 좋은 평가와 더 커진 스케일, 좋은 배우라는 훌륭한 재료를 갖추고도 전작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반도>에게 감사하다


물론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이런 실험적인 작품의 시도는 반갑다. 또한 <반도>를 기점으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 역시 반가운 일이다.


다만 조금만 더 잘 다듬었다면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던 영화가 몇몇 요소 때문에 이렇게 비판받는 상황은 안타까웠다. 아쉬웠던 부분 몇 군데를 제외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상황 설정, 스토리 전개. 그리고 작품 연출이었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이 쓴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연상호 감독, 그리고 그의 좀비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연상호 감독인 만큼 그의 후속작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수작이 되길 바라고 또 바라는 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8P7_052DqU&feature=youtu.be


매거진의 이전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동성애 혐오에 대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