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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Nov 24. 2020

<슬럼독 밀리어네어> 운이 아닌 운명이라 부르는 것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줄거리 및 리뷰

유명 퀴즈쇼에 출연했던 자말. 그런데 그는 어쩐 일인지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알고 보니 경찰은 그가 퀴즈쇼에서 연달아 정답을 맞히자 사기죄로 체포를 했던 것. 저소득층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자말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줄거리


하지만 그가 정답을 아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분명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빈민가 아이 중 하나였다.


그렇다 해서 아예 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아니었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가 아는 문제가 연속으로 나온다. 연예인 문제의 경우 그가 제일 좋아했던 연예인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으니 틀리는 게 더 이상한 문제였던 것.


그 증거로 그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도 화폐에 그려진 위인들의 얼굴도 다 기억 못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편, 그는 어린 시절 종교 대립 문제로 어머니를 잃고 형과 단 둘이 남겨지게 된다. 폭동을 피해 도망치던 이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라티카를 같이 데려가게 되며 본격적인 삼총사 생활이 시작된다.


그 후로도 퀴즈쇼의 문제는 그의 삶을 복습이라도 하려는 듯 완전히 똑같이 흘러간다. 형인 살림과 여동생 격인 라티카에게 은인처럼 다가왔던 마만이라는 남자. 


처음엔 콜라도 사주고 밥도 주며 성자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는 어린아이들에게 구걸을 해오게 시켰으며 측은함을 배가 시키기 위해 눈을 멀게 만들기까지 한다.


어느덧 자말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이들은 도망을 쳐 달아난다. 하지만 결국 라티카의 손을 놓치며 두 사람만 이곳을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타지마할에서 불법 가이드 일을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며 돈을 벌지만 언제나 자말의 마음은 라티카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돌아간 곳에서 라티카를 발견했지만 마만이 그녀를 이용해 성매매업을 펴고 있었다. 치열한 대치 속, 형 살림은 총을 발사해 마만을 제압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갱단 우두머리인 자베드가 그를 거두게 된다.

그런데 살림이 권력을 쥐자 마만과 똑같이 변한다. 자말의 끈질긴 항전에도 그를 내쫓고 라티카를 손에 넣는 살림.


그렇게 형에게 배신을 당한 자말은 살림과 한참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아간다. 하지만 형제의 연은 쉽게 끊을 수 없었고 콜센터에서 형의 이름을 검색한 자말은 형과 재회하게 된다.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자말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라티카.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건 자베드의 집.


행복하지 않지만 자베드의 권력에 꽉 묶여 살던 라티카. 그런 그녀에게 자말은 제안을 한다.


빅토리아 기차역에서 매일 5시에 기다릴게

다음 날, 이들은 기차역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자베드의 패거리에게 금세 들키게 되고 라티카는 칼로 위협받은 채 자베드에게 끌려가 버리게 된다.


제대로 된 교육 과정도 거치지 못했지만 퀴즈쇼에서 엄청난 상금을 향해 순항 중인 자말. 어쩐 일인지 퀴즈쇼의 문제들은 그가 겪어왔던 일들 뿐이었다. 그런데 자말은 억만장자가 되는 순간이 코 앞인데도 돈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는 왜 이 퀴즈쇼에 참여하게 된 걸까? 그리고 그는 마지막 라운드 퀴즈까지 맞출 수 있었을까?


천재 감독의 천재적 결과물


이 작품은 영국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쉘로우 그레이브>로 신선한 충격을 일으키며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트레인스포팅>, <28일 후>, <인질> 등 후속작들도 연달아 흥행시키며 큰 성공을 일구어 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단 하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매니악한 작품성이었다. 독특한 연출과 화려한 화면 구성, 그리고 완벽의 가까운 카메라 워킹까지. 감독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역량은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다루는 영화의 매니악함이 그의 장점을 깎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작품 하나로 그는 항간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데 성공한다. 2009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니 보일 감독은 작품상, 감독상 등을 포함해 8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사회를 풍자하는 무거운 블랙 코미디, 혹은 다소 폭력적이거나 독특한 소재를 구현하는 데에만 탁월한 게 아니라 대중성과 작품성 있는 작품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이라는 걸 증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스타일리시한 그의 연출 감각이 무뎌졌다거나, 수상을 위해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대니 보일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카메라 앵글을 아주 자유롭게, 하지만 역동적으로 담아낸다는 데에 있다. 이 작품에서도 카메라는 줄곧 역동적이고 빠른 템포로 등장인물들을 담는다. 빈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한 가지 각도에 국한되지 않는 앵글. 긴장감을 뿜어내는 감각적인 화면 연출까지.

평소 대니 보일 감독의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냈던 거다.


또한 이 작품은 편집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시점이 총 세 가지가 등장하는데, 퀴즈쇼, 경찰서, 그리고 유년기에서 현재로 거슬러 오는 시점이었다. 언뜻 보면 정신산만한 연출이 될 수도, 혹은 매끄럽지 않게 연결이 될 수 있을 법한 어려운 편집 방법임에도 그는 아주 정밀한 분배를 통해 세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시키고 있다.


분명 그 세 가지 이야기에는 약간씩의 단절과 비약이 발생하게 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설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친절하기보다 관객의 개입 여지를 열어 두는 대니 보일의 연출이 이 공백을 조금 더 유연하게 사고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막연하게 던져두는 게 아니라 큰 스토리 줄기를 깨지 않을 만큼만의 딱 적당한 공백만을 만들어둠으로써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개입을 만들어냈다.


이 완벽한 배분과 딱 적당한 양의 불친절 덕분인지(?) 아카데미 편집상도 대니 보일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절절한 사랑, 그리고 오역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퀴즈쇼에서 억만장자가 되느냐 마느냐의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말은 돈의 큰 욕심이 없다. 그가 이 퀴즈쇼에 등장한 건 어렸을 적부터 줄곧 찾아 헤매던 라티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라티카와 자말의 첫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 자신들처럼 고아가 된 라티카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말은 이때부터 라티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유난히 라티카를 챙겼던 자말은 마만에게 벗어나던 도중 그녀를 놓치고 만다.


수년이 흘러 다시 라티카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형 살림이 그녀를 취했고, 이후에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자베드가 그녀를 아내로 들인 참이었다.


매번 라티카를 가장 사랑했던 건 자말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약자의 포지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번번이 그녀와 함께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볼 수 있게 이 인기 퀴즈쇼에 출연을 결심했던 건데 웬일인지 아는 문제가 연달아 나오며 그는 파죽지세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오르게 되었던 것.


퀴즈쇼 또한 아주 중요한 소재 중 하나다. 자말이 큰돈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기도 하지만 영화의 가장 처음 부분 등장하는 퀴즈가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Q. 자말이 2천만 루피를 획득할 수 있던 이유는?

A. 부정행위를 했다

B. 운이 좋았다

C. 천재이다

D. 운명이었다


그가 어떻게 퀴즈를 연달아 맞췄는지에 대한 보기가 나오는데 답은 당연히도 ‘D’였다.


하지만 개봉 당시 이 자막은 ‘소설이었다’로 번역이 되었다. 사실 직역하자면 소설이었다는 워딩 역시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큰 문제였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속성을 띈다. 쓰여진다는 과정은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해석을 한다면 이미 작성이 되어있다는 원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되어 버리는 것. 즉, ‘쓰여진다’가 아닌 ‘쓰여져 있었다’라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우며 이는 이미 일어나기로 결정된 일, 즉 ‘운명이었다’로 의역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


마지막 엔딩과 더불어 이 퀴즈가 다시 등장하는 데 오역은 이 장면에서 주는 쾌감과 전율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한다. 최근 재개봉 판본과 VOD 서비스는 개선된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부분이었다.


천재 감독이 이야기하는 운명에 대해서


이 작품에서 자말이 억만장자가 된 건 운명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운명보다 운이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나온다. 가령 그가 겪었던 일들이 짜여진 것처럼 문제로 출제되는 게 운명이라는 말로 전부 해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일련의 행동들을 운명이라고 재단한다. 개연성을 포기하고 우연에 기대어 운명이라는 말로 포장한 걸까?


그건 또 아니다.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이 작품은 개연성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부분은 없다 봐도 좋다. 다만 그의 성공과 사랑이 단순한 의미인 운에 얽매여 있다고 해석하는 게 너무 가벼웠기에 이를 운명이라고 바라보지 않았을까?


한 끗 차이이고, 말하기 나름이지만 운과 운명이 내포하는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 전자의 의미가 어떠한 노력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말 행운적 요소라면, 후자는 끊임없이 노력해 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운이 더해진 선물 같은 것이다. 당연히 운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동과 힘이 더 셀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다.


평생을 슬럼독으로 살아왔던 자말이라는 청년에게 억만장자가 될 수 있던 상황을 운이라는 단어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운명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에게 찾아온 사랑인 라티카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손에 쥐어준 것이다.


그걸 우리는 운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자말과 대니 보일은 운명이라는 말로 부르는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Led57xA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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