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튼애플 Dec 02. 2020

<마치다군의 세계> 불행한 현실 속 찾은 하나의 희망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 줄거리 및 리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선한 감정을 가지고.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는 답을 할 거다. 필자 역시 같은 답을 할 거니까.


그런 필자와 달리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의 주인공 마치다가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영화 마치다군의 세계 줄거리


마치다는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의 사람이다. 달리기도 느리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지만 마치다는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다. 혼자 떨어진 물건을 집는다거나 높은 곳에 전단을 붙이려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면 그 느린 달리기로 쫓아가 도움을 줘야만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런 마치다와는 반대로 언제나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학생도 있다. 동급생 친구들과 말도 잘 섞지 않고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이노하라가 그 주인공.


그녀는 스타 아나운서 어머니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불륜의 주인공이 되며 자연스레 그녀까지 비난을 받게 된다. 괜스레 친해져 봤자 이런 마찰이나 생기는 게 전부니 자연스레 이노하라는 친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


그런데 어느 날 미술 시간에 손을 다친 마치다에게 그녀는 손수건으로 응급조치를 해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이상하게 자주 엮이게 된다.


언제나 다정했던 마치다에게 이노하라가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동급생 니시노와 그녀를 이어주려고 하는가 하면,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어 후배 여학생인 사쿠라에게 고백을 받기도 한다. 이노하라는 답답함에 복장이 터졌지만 넌지시 눈치를 줘도 마치다는 커다란 눈만 깜빡일 뿐.


한편, 마치다에게 고백을 했던 사쿠라의 전 남자 친구 히무로가 이노하라에게 호감을 표한다. 다소 껄렁이는 성격에 학생 모델이라는 프라이드로 꽉 차 있던 히무로는 다른 여학생들처럼 자신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이노하라에게 끌렸던 것이다.


그런 히무로에게 마치다는 사쿠라의 진심을 알아줘야 한다며 이야기하는가 하면, 저녁밥을 사주겠다는 미끼로 이노하라를 데려가려는 그를 제지하기도 하는데...


완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인 마치다와 이노하라.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에 대해


이 작품은 일본의 영화감독 이시이 유야가 제작한 판타지 영화다. 만화가 원작인만큼 조금 뜬금없는 전개와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풋풋함이 묻어나는 일본 멜로 영화의 감성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먼저 작품은 완전히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주인공을 통해 흘러가게 된다. 제목에서 등장하는 남주인공 마치다는 인간 도덕책 같은 사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여주인공 이노하라는 매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염세적 인물. 그녀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마치다와 완전히 대척점의 서있는 인물이란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노하라 역시 따뜻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양호 선생님을 기다리던 마치다를 외면하는 건 그를 치료해 주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하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마치다를 모른 채 할 수 없어 그녀는 마치다를 치료해준다.


그런 이노하라에게 아주 약간의 관심이 주어지자 그녀는 딱딱한 가면을 벗고 밝은 민낯을 보여주게 된다. 전에 없이 밝은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니시노를 거절할 때도 아주 정중했고, 어렸을 적부터 알았지만 데면데면했던 사카에와도 금세 말을 붙이며 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는 그녀가 애초부터 어두운 성격이 아니었고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즉 완전히 상반되는 것 같았던 두 주인공의 모습은 실상 같은 속성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염세나 어둠이 밝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명제를 더 공고히 하고 있는 듯했다. 비록 그녀가 진짜 어둠이 아니었던 것도 있지만 그녀를 덮고 있던 근심과 우울함, 무관심이란 어둠을 마치다의 관심이라는 빛이 싹 거둬내줬으니까.


싹 바뀐 스토리, 하지만 똑같던 것


이 작품의 제작을 맡은 이시이 유야 감독의 전작은 이 작품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이름의 작품인데 독립영화 느낌이 물씬 나는 연출과 보는 사람마저 우울해지는 착잡한 스토리라인이 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상업영화이자 10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그린 간질간질한 로맨스 장르였으니 말이다.


전작에서도 사랑 이야기는 물론 등장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표현 방법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했다. 반면 이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 장면들도 10대의 이들에겐 큰 문제겠지만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은 입장에서 보기엔 그저 지나가는 사건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작품의 중반까지만 해도 정말 제가 알던 그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싹 바뀐 스토리 라인과 고민의 무게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바로 일본을 둘러싼 염세주의와 패배주의의 묘사.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이시이 유야 감독의 따뜻한 메시지가 말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힘들게 일궈낸 어떤 성과가 한순간에 재난으로 무너지는 걸 아주 가까이에서, 비교적 현재와 가까운 시점에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인지 대지진 이후의 일본 영화는 유난히 우울한 색채를 띄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소노 시온 감독의 <두더지>가 그랬고, 올해 국내 개봉한 <분화구의 두 사람>이 그랬다. 심지어 <심야식당>은 원래 에피소드에 등장하지 않는 후쿠시마 이야기를 다루며 원전 사고 후 완전히 침체된 일본 사회의 민낯을 그리기까지 했다.

이시이 감독의 전작인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도 그랬다. 함께하던 동료의 믿을 수 없던 죽음, 일용직 노동자의 고된 삶, 그리고 위로란 말 대신 싸구려 술이 대신하는 도쿄의 밤. 말 그대로 죽어가는 과정에 가까운 일본 사회를 아주 낱낱이 보여주는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비극에서도 구원은 있었다. 인기 없는 인디가수의 ‘힘내’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구체적인 비극의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북돋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마치다군의 세계>에서도 인디가수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마치다였다.  작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스토리로 흐르지만 이렇게 같은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었다. 달랐던 건 작품을 소비하는 타깃이 달라진 만큼 메시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마치다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씌워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점 정도였다.


마지막에 다다라 판타지적으로 끝냈던 점 역시 극복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럼에도 한순간의 기적처럼 모든 근심이 사라졌으면 하는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었으리라.


우울함의 연속인 하루하루, 그럼에도 희망을 보다


창작물은 언제나 그 시대를 반영한다. 과거에 제작되었던 작품도 현대의 바뀐 가치관과 시선으로 해석이 되는데 지금 시대에 제작되는 창작물들이 이를 외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도 뻔한 멜로물 수준에 그치는 작품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작품이 2011년도 전에 나왔다면 곧이곧대로 로맨스 영화로 끝을 낼 수 있겠지만, 감독의 연출 의도와 표현한 이야기를 돌아볼 때 단순히 청춘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일 수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노하라와 마치다의 사랑이야기를 하고 잘못도 없이 상처를 받아야 하는 소외된 학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재난 후 실의에 빠진 일본 사람, 더 나아가 인류애의 회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을 돌아볼 때는 원전사고와 이 작품을 엮는 게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는 과거가 되고, 지금의 과거는 더 오래전 과거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전사고와 엮는 게 부적절한 시점이 온다는 건 그만큼 사고의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물론 결코 잊을 수 없는 자연재해이자 인재(人災)인 사건이지만, 상처 받은 사람들의 유일한 약이자 해결책인 시간이 조금이나마 이들을 어루만져주길. 그리고 상처에서 자유로운 시기가 오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DKEDfFiVQ&feature=youtu.be

매거진의 이전글 <슬럼독 밀리어네어> 운이 아닌 운명이라 부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