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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Jan 27. 2024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이

일본영화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줄거리 및 리뷰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줄거리


졸업이 이틀 남은 학교. 고등학교 3학년의 주인공들은 복잡한 감정에 빠져있다. 마나미는 졸업생 대표로 재학생의 축사에 답하는 답사를 맡게 된다. 답사를 할 주인공으로 그녀 이름이 호명되자 장내는 술렁인다. 한 친구는 다가와 그녀에게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그녀에겐 남자친구 슌이 있다. 영양사를 꿈꾸며 요리 부장을 맡은 그녀는 매번 남자친구의 도시락도 함께 준비한다. 그런데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그녀는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한 현실과 마주한다.


고토 역시 남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농구부라는 공통분모로 가까워졌던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 다른 친구가 이변을 알아채고 무슨 일인지 묻는다. 그녀가 도쿄로 대학 진학을 하겠다고 얘기한 순간부터 남자친구의 반응이 쌀쌀맞아졌다고. 이대로 엉성하게 끝을 낼 수 없던 그녀는 그와의 작별 인사를 준비한다. 그가 하고 싶다고 했던 폭죽을 잔뜩 사서 졸업식날 터뜨리기로 한 것이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고 졸업식날 함께 동행하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그의 태도는 차가웠다. 이에 짜증을 내자 남자친구 역시 짜증으로 맞받아친다.


쿄코는 경음악부 부장이다. 졸업 공연을 놓고 순서를 맞추는 것도 그녀의 몫인데 헤드라이너 역할을 두고 동아리끼리 경쟁이 상당하다. 재학생 투표로 마지막 무대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헤븐스 도어'가 주인공이 된다. 이들은 매니악한 헤비메탈 장르를 다룰 뿐 아니라 AR을 틀고 전원 립싱크와 핸드싱크를 하는 엉망진창의 밴드다. 이에 투표의 공정성이 없다고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투표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이대로 강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졸업식 당일 이들의 AR 음반과 의복이 사라진다. 재학생들은 내년에도 학교에 나와야 하는데 창피를 당할 수 없다며 무대에 오르기를 거절한다. 한 번도 제대로 연습한 적 없지만 보컬 모리사키는 혼자서라도 무대에 오르기로 한다.


사쿠타는 아웃사이더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도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눌 친구 한 명 없다.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학창 시절에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선생님은 먼저 다가가보는 걸 제안했고 사쿠타는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3년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게 하루아침에 잘 될 일은 없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삐걱거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다. 낙담한 사쿠타에게 선생님은 시도도 못 해본 고등학생 시절의 자신보다 훨씬 낫다며 그녀를 달래준다. 그리고 졸업식, 친구들끼리 모여 앨범에 편지를 써주고 있는데 사쿠타는 소외되어 있다. 외로운 감정에 빠진 그녀는 교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어제 이야기했던 친구 하나가 다가온다.


어른이 되기 전 겪는 그들의 성장통


주인공 4명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들은 저마다 걱정이 있고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회피하기도 맞서보기도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대개 이들은 역경 앞에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청춘이란 무엇인가? 비바람에 쓰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것 아니겠나. 소녀들은 다시 우뚝 일어선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마나미의 남자친구 슌은 몇 년 전 옥상에서 떨어져 숨을 거둔다. 그녀가 싸가는 도시락은 항상 두 개였지만 하나는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꾸준히 던진다는 것에서 슌의 죽음을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했던 약속 아닌 약속. 즉 UN 가맹국 국기를 모두 모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듯 매번 도시락에 작은 국기 모형을 집어넣는다. 이는 그녀에게 너무나 아픈 상처다. 끝없이 상처를 벌리고 마주하고 다시 쓰러지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답사 내용에 학교 곳곳의 추억 이야기를 넣으라던 선생님의 지시 이후 그녀의 불안 증세는 더 심해진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보지 않으려 했던 슌의 죽음과 얽힌 장소 또한 둘러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슌의 빈자리를 체감하고 흐트러진 온전한 자신을 찾는 것. 그녀가 졸업 전에 해야 했던 유일한 일을 해냈기 때문에 말이다.

고토의 갈등은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사랑싸움이다. 장거리 커플이 되게 될, 혹은 헤어져야 하는 남자친구와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결코 가볍지 않다. 아마도 처음 사랑했을, 그리고 처음 이별을 맞이하게 될 두 사람은 서툰 점투성이다. 문제를 놓고 제대로 이야기해 볼 노력도, 그럴 용기도 두 사람에겐 없다.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피해왔을 뿐 이들의 갈등은 이대로라면 영원히 봉합될 리 없는 평행선의 이야기다. 고토는 그와 화해를 할지 말지를 놓고 자유투 결과로 결정한다. 농구공은 림을 통과했고 그녀는 먼저 손을 내밀기로 한다. 그렇다면 공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이 흐리멍덩한 이별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을까? 절대 아니다. 아마 어떤 핑계를 대서든 그녀는 들어갈 때까지 공을 던졌을 거다. 아니면 공이 들어가지 않는 이 저주야말로 화해를 해야 풀린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서라도 화해했을 거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굳이 구실을 찾지 않는다. 현상 유지란 것이 대개 그렇듯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니까. 핑곗거리를 찾고 실마리를 찾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그와 멀어진 간격을 인식하고 있던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다. 화해를 거절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있을지 언정 그녀는 손을 내밀기로 결심했다. 아주 서툰 이별의 과정이지만 이들은 눈물로서 현실을 받아들인다.

밖에서 겉돌던 사쿠타의 문제는 자신의 성격 그 자체다. 다른 친구들처럼 왁자지껄 떠들고 싶은 그녀였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말 거는 걸 두려워한다. 졸업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찬 교실은 그녀에게 지옥이다. 도망치듯 교실을 떠나 도서관으로 향했던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사쿠타의 안식처는 도서관에, 그리고 책 안에 있었다. 다행히 도서관에는 많은 책이 있었고 도서관 담당 선생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덕에 힘들었던 3년간의 고교 생활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녀와 선생님이 친밀해진 계기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아주 오래전에 빌린 한 권의 책이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그녀는 책 한 권을 빌리고 반납하지 않는다. 보통의 선생님이라면 반납을 독촉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조용히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사쿠타는 이 책을 소중한 부적처럼 매일 가지고 다녔다. 그다지 재밌지도 않았던 책을 가지고 다닌 것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책 반납을 독촉 받았다면 그녀는 더 이상 학교에 설 곳이 없다. 교실은 물론 도서관에서도 쫓겨난 격이니 전학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었던 탓인지 선생님은 그녀를 기다려준다. 책을 빌려 간 걸 알고 있음에도 3년 가까이 시간을 말없이 지켜본다. 졸업식날 그녀가 빌렸던 책을 반납하려 하자 헌 책 대신 그녀의 새 책을 받고 빌렸던 책을 돌려준다. 당연히 새 책이 더 좋은 상태일 수밖에 없지만 3년간 그녀의 손때가 묻은 책이야말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명예로운 훈장이자 살아남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녀의 앞 길에 그 책이 다시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주길, 그리고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길 기대한 선생님의 바람이 담긴 배려였다.

쿄코는 중학생 시절부터 모리사키를 좋아했다. 멋진 목소리로 노래하던 그의 모습이 좋아서 가까워진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음악을 한다. 이상한 분장의 이상한 옷을 입고 가짜 목소리로 무대에 선다. 그의 몰락은 쿄코의 슬픔이었다. 모리사키의 행동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마나미의 남자친구였던 슌이 그의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모리사키는 헤븐스 도어라는 밴드를 만들고 자신을 숨기기 시작한다. 이를 알고 있던 쿄코는 일부러 CD를 빼돌리고 옷도 숨겨버린다. 그래야 모리사키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 노래를 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물은 오랫동안 자신을 잃었던 모리사키를 향한 애정인 동시에 상실을 겪은 친구에 대한 연민이다. 모리사키는 그렇게 친했던 친구도,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도 잃었다. 자신을 정신 나간 별명으로 치장하지 않으면, 이상한 옷을 걸치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중학교 시절의 순수함이 남았던 그를 보며 쿄코는 다시 원래의 궤도로 그를 돌려놓고자 한다. 예상대로 그는 멋진 무대로 쿄코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가 고른 노래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진혼곡이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진심을 꾹꾹 담아 노래하는 모리사키. 그는 이 무대를 통해 해묵은 나쁜 감정을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메라워크로 보여준 심리와 예술


작품은 카메라워크를 통해 네 명의 주인공과 그들의 파트너가 어떤 갈등을 빚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먼저 마나미의 앵글은 주로 마나미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많다. 그녀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회전하며 쫓기도 한다. 이는 그녀의 갈등이 가장 복잡다단하고 소용돌이와도 같은 감정 동요 상태에 있음을 카메라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또한 답사에서 그녀는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계절은 순환하여 봄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원을 그리는 그녀의 앵글과 겨울을 견뎌냈던 과거의 경험이 결합해 봄 같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고토는 패닝(panning)이다.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좌로 우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는 한 앵글에 담기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리감을 보여준다. 남자친구와 큰 갈등을 빚어 가까운 상태가 아님을, 그리고 쉽사리 해결되지 못할 이야기임을 카메라의 거리감으로 나타냈다.


사쿠타는 틸팅(tilting)이다. 고토와 달리 위아래로 움직이는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그녀는 도서관 담당 선생님께 그처럼 되고 싶단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즉 사쿠타가 아직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학생이라는 부분을 선생님과의 높이차를 둠으로써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결국 선생님처럼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쿄코의 경우는 특정한 기법이라기 보다 방관자로 둠으로써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녀는 카메라 앵글에 단독으로 혼자 잡히는 법이 거의 없다. 밴드부 공연 순서를 앞두고 벌어진 친구들 간의 갈등, 모리사키의 회복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이야기가 원만히 흘러가게끔 하는 역할이었다. 쿄코의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늘 누군가와 함께, 혹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숏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그녀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음을, 그리고 모리사키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찬란한 소녀의 미래를 기원하며


영화는 성인이 되기 전 불안정한 시기에 졸업생을 다룬다. 중학교 졸업식과 다른 것은 비슷한 동네의 아이들이 비슷한 학교에 가는 것과 달리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감을 느꼈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새로운 환경으로 노출되어야 하는데 이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함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주인공들은 저마다 해결하지 못한 고민까지 있었으니 이들이 느꼈을 불안감의 진폭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처럼, 그들의 대사처럼 졸업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이해되었다. 갓 성인이 되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앞두고 있는데 심리적으로 안정되지도 않았으니 이곳에 좀 더 머무는 게 어쩌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졸업식을 기점으로 건물이 폐교될 것처럼 이들의 시계도 멈춰있을 수는 없다. 학교의 기능을 다른 건물로 이전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새로운 울타리를 찾아 떠나야만 했으니 말이다. 모두가 기쁜 마무리는 아니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이유로 눈물을 흘려야 했고 아직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겨울은 지나고 봄은 온다. 벚꽃이 만개한 이들의 졸업식은 힘든 시기를 겪어온 저마다의 사정을 품어준다. 벚꽃 역시 모진 겨울의 풍파를 이겨내고 피워냈듯이 그녀들의 청춘도 행복만 있지는 않겠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더 아름답다고, 그러니 견뎌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듯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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