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쓸모

용기가 필요할 때 너의 이름을 부른다.

by 미르


“엄~~~~~~마~~~~~”

볼일이 있어 늦은 저녁에 다녀오니 빛의 속도로 달려와 막내가 매달린다. ‘이거야, 이런 맛에 아이를 키우는 거지.’라 생각하며 쪼르르 달려가 힘껏 아이를 안아 올렸다.

“배고파요. 밥 주세요.”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밥을 안 먹었어?”


찰나의 기쁨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그럼 그렇지, 목적이 있었다.

엄마가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달려온 것이다. 남편을 째려본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얘들 밥 하나 차려주지도 못하나?

볼멘소리가 입안을 맴돈다. 집 안을 둘러보니 밥은커녕 청소도 되어 있지 않았다. 찌를 듯 눈빛 레이저를 쏘자, 남편은 헛기침을 연신 해대더니 횡설수설 주절거린다.

“얘들이 배가 안 고프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얘들이랑 신나게 놀면 이렇게 되는 거야. 얘들아 아빠랑 신나게 놀았지? 그렇지?”

남편은 아이들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할 말은 많으나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밥부터 했다.

막내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 어디 갔었어? 나 보고 싶었어? 나는 보고 싶었어. 있잖아, 오늘 유치원에서...”

“배고프다며? 엄마 밥해줄게. 엄마 잠깐만 시간 줄래?”

“응. 배고파. 그런데 할 말도 많아. 시간 좀 줘.”

막내는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밥을 짓는 동안 졸졸 따라다니며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서둘러 밥을 해서 먹이니 그제야 조용해졌다. 밥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가족이 되었을까?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버겁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당연히 해낼 수 없는 일도 해야 한다.

자기자신조차 건사 못하는 여자였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육아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딱 3일 갔다. 배운 내용을 사용하려 하지만 대부분 3일이면 포기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A의 입력값을 넣는다고 A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혀 생뚱맞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한테 지혜가 더 있었다면, 에너지가 더 있었더라면, 사랑이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통해 내 능력치를 시험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 방법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배움도 없다.


아이를 낳기 전 수학 과외 선생님을 했다. 20대의 세상 물정 모르는 새색시를 학부모들은 귀엽게 여겼다.


“선생님은 아기 낳지 말아요. 절대로. 그때부터 자기 인생 없어지는 거야. 지금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꼭 기억해요. 아기 낳아도 다 소용없어. 그 새끼들이 효도하느니 뭐니 칫! 다 쓰잘데기 없어.

선생님은 기회가 있을 때 꼭 아기 낳지 말고 자기 인생 살아. 알았지? 진짜야.”


그 시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기회가 있을 때 도망가! 아직 너는 늦지 않았잖아. 낳는 순간 끝이라고.


그들은 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정말 절실하게 조언해준 것이다. 만약 20대의 내가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라졌을까?

늘 허덕허덕 치이듯 치열하게 사는 내 모습을 보았다면 말이다.

친자 2명에 입양 1명. 5명 식구, 다둥이가족을 이룰 줄은 예상치 못했다. 입양 가족들 사이에서도 우리 가족은 특이한 편에 속한다. 대부분 입양 동기는 난임, 친자들이 20~30대인 경우, 위탁모를 하다가 정이 들어서 등등 다양하다. 우리 가족은 친자가 두 명 있으며 8살, 10살 어린 편에 속한데도 막내를 입양했다. 그런 입양은 생각보다 드물다. 후회하냐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냐고?


아니, 나는 주저 없이 우리 가족을 선택한다. 물론 내가 부족한 탓에 많은 부분에서 힘들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훈련 시킨다. 인내가 부족한 나를 인내하라고 채찍질하고, 지혜가 부족한 나를 지혜를 가지게끔 고민하게 만든다. 또,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하며, 사랑이 없는 나를 참고 희생하게끔 만든다. 아이들은 나를 훈련 시키고 키운다.


나는 좋은 사람,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뭔데?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을때가 많다. 사실 나는 쫄보라 그런 순간, 냅다 도망치기를 잘했다. 매순간 나는 도망자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부끄럽고 어려운 일들로부터 도망쳤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그런데 엄마가 되면서부터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거리가 멀어서 쉽지 않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한 방책으로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마음으로 차례로 부른다. 그 이름들을 불러내어 내 주위의 공기를 에워싸게 한다. 그러면 이름들이 내게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할 수 있어, 넌 엄마니까! 두려워 하지마!

아이들이 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