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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47화. 악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나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자의 기도에 기대어 편지를 썼다.

이제 그 사내에게 이 편지를 주고 나는 집으로 가려한다. 교도관의 부축을 받고 걸어오는 그 사내가 저만치 보인다. 떨린다. 아침보다 더.

그 사내가 내 앞으로 와 빤히 쳐다본다. 한 일 분 가까이를 내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르는 걸 눈썹 깜빡이로 말리며 애써 울음을 참아 본다. 터지는 슬픔을 가슴에서 못 나오게 일부러 한 번 웃어도 본다. 그 사내를 보며 웃으니 내게 똑같이 한다. 기분 참 이상하게 또.


그러고 보니 죄수복이 아니라 아까 사진 찍을 때 입었던 양복이 그대로다. 옆에 서 있던 교도관이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이 양복 좋은 날 꼭 입으셔. 이 담에 천국 갈 때도 꼭 입고 가셔. 밥 잘 드시고. 잠 잘 주무시고. 이 편지, 혼자 못 읽으시면 교도관님한테 꼭 읽어달라고 하고. 그리고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기로 약속한 거 잊지 마시고. 그 약속은 꼭 지키셔요. 그래야 천국 가실 수 있어. 그게 마지막 소원이시라며. 지옥 안 가는 거. 나쁜 짓 많이 했어도 지옥 안 가는 거. 그 소원 이루려면 꼭 마음속에 계신 분께 날마다 기도하셔. 그럼 천국 가실 거야. 꼭 가실 거야. 사진 나오면 액자에 잘 넣어서 여기로 보내드릴게. 예쁘게 잘 나온 사진으로 보내드릴게. 조금만 기다리셔. 건강하세요. 이제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 이때쯤 돌아서는 게 가장 좋은 타이밍인데, 돌아서는 게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 마음에도 없는 걸음을 한 것처럼 담담히 어서 돌아서고 싶은데 발길이 너무 더디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 돌아서려는 그때, 교도관님이 뭔가를 갖고 다급히 나에게 오신다.

“잠시만요! 이거… 받으세요. 죄수복 주머니에 늘 갖고 다니시면서 하루도 안 빼고 매일매일 하루에 몇 번씩 보시는데, 죄수복 입은 거보단 양복 입은 거 봐야 웃으실 거 같다고, 가실 때까진 양복만 입으신다셔서 제가 이거 챙겨 드린다는 걸 깜빡했어요. 오늘 가실 때 이거 돌려 드리라고 하셔서.”

교도관님이 건넨 하얀 편지 봉투 속에는 고등학교 삼 학년 열여덟 살의 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희망을 주는 글쓰기로 작가 꿈꾸는 소녀 가장 조현아 양>

대기업 사외보 인터뷰 기사 내용이 담긴 나의 꿈꾸던 시절 이야기, 비록 모든 게 진짜는 아니었지만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던 그 환경은 진실이었고, 나의 지나간 꿈도 진실이었다. 그 인터뷰 기사가 난 게 벌써 이십 오 년 전이다. 그 꼬깃하고 낡은 접힌 자리엔 흰 선이 도드라져 그 자리 글씨는 닳아빠져 보이지도 않는 나의 이야기를 여태 갖고 계셨다. 그것도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고이 접어서 하얀 봉투에 넣어 때 타지 않게 보관하고 있었다니... 그대로 가슴이 땅으로 꺼지며 철렁 내려앉는다.


그 사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자세히 쳐다본다. 웃는 얼굴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울지 않으려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지금이 정말 미칠 것 같은 시간이다. 이별 앞에서 그 상대의 깊고 진한 사랑을 그만 알아차려 버린 그 순간처럼 미칠 것 같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랑이 또 어디 있을까. 얼마나 오해하고 미워한 사람인데, 겨우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랑이나 하는 사람이, 나의… 나의… 나의 아버지라니…


이십 오 년 동안이나 변치 않고 그때 그 소녀로 나를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주머니에 넣고 매일 꺼내보며 그 얼굴이 닳까 싶어 다시 조심조심 하얀 봉투 안에 잠재우고 ,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그러며 지나온 시간들이… 내가 미워하고 저주한 날이 얼마나 많은데, 이십 오 년 동안 나와는 반대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또 생각하고 하나도 안 미워하면서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셨단 게 믿기지 않지만 한 번 믿어보고 싶다. 그 절절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 감히 알 수도 없는 하늘 아버지 같은 사랑을, 나도 늦었지만 한 번 느껴보고 싶다.

너무나 간절히 그 아버지의 사랑을 기다렸고 소원했다. 그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을 나는 믿고 싶다. 진심인 아버지의 그 사랑을, 뜨거운 아버지의 그 사랑을 나는 믿고 싶다.’


교도관님이 건넨 하얀 봉투를 받고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천국 가서 하나님이라도 만나고 온 것처럼 아버지 사랑에 푹 빠져 있다 나온 아이처럼 갑자기 내 마음이 부드러우면서 따뜻해진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늦게 와서 정말 미안해요. 이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와서 볼 수 있게 살아계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이 하얀 봉투 안에 저 지금껏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지금껏 잘 다독여주시고 만져주시고, 지금껏 매일매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아. 버. 지!”

아버지와 나의 이별 상봉기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시던 세 분과 다른 교도관들도 눈물을 훔치신다.


그렇게 그 사내와 나는 아버지와 나로 다시 만났다. 몸은 비록 헤어지지만 마음과 영혼은 서로 함께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이제부터 새로 시작이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그 사내는 죽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만이 내 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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