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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46화. 함부로 단죄한 죄를 용서하소서


나와 그 사내가 인간으로서는 원수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신 이 안에선 모든 사람은 단지 미약한 피조물이자 또한 존귀한 존재일 것이다. 그분의 계획으로 나와 그 사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창조자의 심오한 뜻 가운데 사랑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일일이 헤아리며, 이치에 맞고 틀림을 따져 앞과 뒤를 재어볼 수는 없다. 어떤 연유로 내가 태어났든지 그 과정을 떠나서, 전능자의 은혜 아래 내가 지금 그 사내와 사십 몇 년 만에 만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정말 집으로 갈 시간이다.


오늘을 위해 내가 며칠 전부터 미리 정하고 생각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내 며칠 동안의 고심을 무력화시키듯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일들이 오늘 더 많이 일어났다. 그 사내는 내가 살아온 모든 날 모든 시간 모든 순간 동안 오해하고 미워했던 또 다른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그 사내에게도 누구도 상상치 못한 상처가 있었고 그것이 어쩌면 내 상처보다 더 큰 지 모른다. 그 상처를 이기며 세상을 잘 살아보려는 의지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내의 상처는 그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정말 불운하게도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 모두에게 상처를 받은 사내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들도 누군가 때문에 마음속에 상처받는 일이 허다히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로 와서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선택적으로 또는 이유를 모른 채 또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길을 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는 자녀에서 부모로 순례하는 삶을 살아간다. 부모 없이 자녀가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내의 상처는 단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사내의 부모의 것이며 또 그 부모는 그 위의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상처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상처의 역사이다. 사람의 사랑은 상처의 서사이다. 엄마의 상처와 그 사내의 상처가 만든 그 씨앗, 그 불씨, 그 점이 내 삶의 시작이었다. 다만 그 사내의 상처를 너무 늦게 알아 그것을 위해 울어줄 시간이 차마 없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보이지 않게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통치자의 따스한 은혜가 내가 해 주는 위로를 뛰어넘을 것을 나는 믿는다. 내가 일억 번 그 사내를 위로하며 운다 해도 참통치자의 완전한 사랑의 능력엔 감히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참통치자의 강력한 사랑으로 그 사내의 상처가 완전하게 치유되리라 확신한다.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교도관실 옆 빈 부스로 들어왔다. 도저히 이대로 집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다신 못 볼지 모르는 그 사내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뇌리에 남아 내 발길을 붙잡는다. 빈 종이와 팬을 들고 왔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내 말을 듣고 계시며 늘 최고의 응답을 주시는 그분을 다시 의지해 본다.


용기가 없을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가야 할 길을 모를 때 그분께 기대어 응답을 기다린다. 그러면 전에 없던 평안이 찾아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을 이길 새 힘도 내 안에 다시 일어난다. 그분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지 기대하며 잠시 묵상에 든다. 늘 그분께서 정하신 가장 좋은 때에 내게 꼭 필요한 합당한 것을 은혜로 채워주심을 느낄 수 있다. 내 말을 듣고 계실 전능자를 의지하며 그 사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간다.


"저예요. 이름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현아예요.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다시 별들의 밤이 오고 가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아득한 세월입니다. 그 시간 동안 문득 어쩌다 한 번씩 당신의 안부가 궁금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기억도 없고 좋은 말도 남은 게 없고 당신에 대해선 그저 짙은 안갯속 같았습니다.

그토록 아프고 괴로운 세상도 이따금 제게 웃음을 주곤 할 때면 알 수 없이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이 참 고통스럽지만 또 살다 보면 그래도 견딜만한 괜찮은 날이 선물처럼 찾아오곤 했습니다.


단 한 번 언젠가 당신이 저를 찾아오던 날 그 인형이 참 갖고 싶어 하마터면 탈 뻔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찾아올 것에 얼마나 대비를 단단히 하며 지냈는지 온 동네가 저를 지켜줬습니다.

가끔 문방구에서 거리에서 어디에서나 그 인형을 볼 때마다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며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계신지 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끝없는 은혜와 영원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기묘자, 그분께 가끔씩 당신의 안보를 위해 기도하곤 했습니다. 비록 제게 좋은 기억 좋은 위치로 남아있진 않았지만 건강하시길 바랐습니다.

기묘자 모사이신 그분께서 언젠가는 오늘 같은 기적을 허락하시지 않을까 하는 맘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사십 몇 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을 찾아와 기적처럼 만나고 이제 떠나갑니다.

제 평생의 기억에 영원토록 남을 그런 날이 바로 오늘, 당신을 처음 또 마지막으로 만난 날입니다.

저는 비록 단 하루 이렇게 다녀가지만 당신 안에 은혜 베푸시길 좋아하시는 이가 항상 계십니다. 외롭고 아프고 힘겨울 땐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신 당신 안에 늘 계시는 그분을 찾고 불러보세요. 무슨 얘기든 다 좋아요. 당신의 얘기를 듣고자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제가 떠나도 부디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슬플 땐 그분의 품에 안겨 그냥 펑펑 울어보세요.

제게 그리하셨듯이 그분은 당신의 슬픔도 다 받아주시고 아마 당신과 함께 펑펑 울어주실 거예요.

저는 이제 정말 떠나요. 연약한 당신의 몸이 메마른 당신의 영혼이 너무나 걱정되어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고 떠날게요. 당신의 몸과 영혼에 영원한 단비로 내리실 그분을 믿습니다.

저는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그분이 오늘 당신도 만나게 해 주셨기에 저는 신뢰합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능자이신 그분께 당신을 맡기고 오직 기도함으로 떠나려 합니다.

그 은혜의 날개 아래 따스히 거하며 가장 평안한 쉼을 얻는 당신의 아름다운 날을 간절히 기도해요.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며 당신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있어 제가 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저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미안해하지 마시고 제 감사인사 꼭 받아주세요.

한 가지, 당신에게 너무 늦게 찾아와 오랜 세월 홀로 외롭게 지내신 날들… 참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직 너무 이른 기대와 욕심은 갖지 마세요. 마음속에선 조그맣게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까지는 할 수 없어요. 조금만 더 제게 시간을 주세요.

만약 다음에 또 편지를 쓰게 된다면, 말로는 하지 못하겠지만 사랑하는 말을 꼭 써서 편지할게요.

잊지 말고 꼭 기억하세요! 당신 안엔 당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당신의 창조자가 늘 함께 있어요.

당신의 하나뿐인 핏줄, 딸 현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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