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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당신의 죄를 모두 사하노라(너의 죄를 모두 사하노라)
오늘도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완벽한 신의 승리다. 사실 작고 좁은 나의 생각과 크고 놀라운 그분의 섭리는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그 은혜자만의 사랑의 능력을 내 계산된 생각으로 이기려 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 사내는 나처럼 상처가 많은 어린아이로 자라, 살고자 발버둥 치다 큰 죄를 범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 이곳에서 온당한 죗값을 치르고 있지만, 그 사내의 마음에도 나와 똑같은 어떤 억울함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니 아무렇다. 그 사내의 텅 빈 가슴이 느껴지고 그 사내의 꺼질 듯한 영혼이 자꾸만 느껴진다.
어느새 오후도 저녁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교도관에게 부탁해 그 사내에게 깨끗한 양복 한 벌을 입히게 됐다. 보통 키에 한국 남자의 적당한 체격에 맞춰 내가 준비한 양복이다.
그 사내가 나에게 사과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또 그 사내와 내가 화해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준비한 깨끗한 옷 한 벌이다. 죄수복이 아닌, 그래도 이 양복 입은 모습으로 그 사내를 기억하고 싶어 마련했다.
나도 화장실에 가서 조금 얼굴을 고친다. 머리를 살짝 만지고 흐리지만 입술도 한 번 덧바른다. 방금 전보다 화색이 도는 것 같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다. 교도관이 그 사내를 강당으로 모시고 나와준다.
그 사내와 나 모두에게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진다.
“좀 웃으세요. 얼굴이 환하게 나와야 나중에 보기가 좋아요. 무표정한 사진보다 다녀보면 웃는 사진들이 훨씬 더 많더라고요. 그게 보기에도 좋아요.”
나 때문에 먼 걸음 하시고 아직 못 가고 기다려주시는 세 분께 죄송한 마음에 빨리 끝냈으면 싶어 자꾸 사내에게 이 말 저 말하게 된다. 마침 신문사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보신 전무님께서 그 사내의 영정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은 거의 다 찍은 것 같다. 마음이 조금은 처음보단 점점 가라앉은 것 같다.
그 사내와의 시간이 끝나갈수록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겁다. 그 사내의 표정 없는 가면 안, 어눌한 걸음걸이와 몸짓, 그리고 실수로든 아니든 바지에 싸버린 오줌… 그 모든 것들이 계속 눈에 걸리고 마음을 건드려 신경이 쓰인다. 화가 나거나 하진 않는다. 내가 이런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사이 사진이 거의 다 된 것 같다.
“기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버님 옆에 한 번 서 봐! 오늘 가면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 이렇게 만났는데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야지! 안 찍고 가면 분명히 캐나다 돌아가서 후회할 거야! 괜찮으니까 어서 옆에 서봐! 내가 잘 찍어줄게.”
못 이기는 척 그 사내 옆으로 가 선다. 민망한 듯 약간 멀리 떨어져 억지웃음을 만들어내자니 좀 서글프고 우습기도 하다. 언제 그 사내와 만난 적이 있다고, 오늘 처음 만난 원수 같은 당사자와 이렇게 사진을 남기는 내가 그렇단 말이다. 이 어색한 끌림이 바로 내 핏덩이 핏줄 피붙이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 무섭도록 질긴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하늘이 맺어주신 그 천륜이 맞나 보다. 하늘의 주관자가 나와 그 사내를 절대 끊을 수 없는 사이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게, 그분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완전함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은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셨다. 오늘 나와 그 사내가 만나 이렇게 함께 사진을 찍는 이 순간도 모두 그분의 주관으로 이뤄졌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나와 그 사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온 세상 만물이 처음 있기 전부터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비록 만나기까지가 오래 걸렸을 뿐, 그렇게 그 사내와 나 사이엔 온 천하를 다스리는 그분의 능력이 보이지 않게 늘 역사하고 있었다.
그 사내가 내 말을 알아듣든지 못 그러든지 내가 꼭 오늘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어쩌면 이 마지막 미션을 위해 내가 지금 여기 온 지도 모르겠다. 종이에 성경구절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장 41절-43절.
내 앞에 앉은 그 사내에게 종이를 보여준다. 조금은 집중해서 종이에 적힌 글을 그 사내가 읽는다. 그리고는 두 손을 깍지 껴 모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곤 몇 번을 툭툭 툭툭 가슴을 쳐 댄다. 사내가 눈물을 보인다. 말명료도가 떨어져 뭐라고 하는지 얼핏 들어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 사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들린다.
“미안해. 기도해 줘. 미안해. 나 천국 가고 싶어. 기도해 줘. 나 천국 가고 싶어. 미안해. 기도해 줘.”
그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깍지 낀 손은 그대로 계속 가슴을 치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확신하며 죄에서 구원하러 온 당신을 메시아로 믿는 내 아버지의 구원을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지은 죄는 받겠으나 다만 아버질 불쌍히 여겨 영혼만은 구원해 주소서. 아멘.”
사내도 나를 따라 느리고 어눌하지만 간절히 아주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도 안아드리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