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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44화. 뜻대로 안 되는 마음 맘대로 안 되는 행동


전과자라 취업도 어렵고 정말 제대로 돈 벌어먹고살긴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 살아선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다. 돈 없는 가난이 싫다고 무턱대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술 마시는 유흥비로 탕진하고 또 같은 일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하루가 멀다 하고 구타하여, 결국 그 아이를 조산시키다니… 그 모든 극악한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가난이 싫고 돈이 없어 그랬다는 말은 변명이라기엔 참 쉽고 무책임하다. 꽃이라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은 없을 만큼 참으로 고왔던 한 여자의 인생을 망가뜨린 그 사내가 여전히 밉다. 사내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자길 죽여서 아이를 살려야 하는 어미의 고통보다는 크지 않다.


엄마를 때려서 미안하다는 그 사내의 마음이 종이 위에 수두룩하다.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과연 내가 받아줄 수 있을까? 받아줘야 할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주는 건 사내의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는 의미다. 지금 사내를 용서할 수 있을지 그 용서가 너무 섣부르진 않은지 더 생각해 보고 싶다. 일생이 다 어그러져 억울한 생애를 산 엄마에 대한 예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그 사내를 빨리 용서할 마음이 없다.

다만 그 사내가 지금 내 앞에 한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걸 보니 가슴 어느 한 움큼이 불편하다. 사내의 영혼이 너무나 허름해 보인다. 나는 더 한참 이따 사내의 사과를 받아주고 싶다. 그런데 마음이 영 말과 다르다. 맞춤법도 다 틀린 사내의 글씨다. 맞춤법엔 맞지 않는 사내의 글씨지만 내 맘엔 맞아 든 것 같다. 기분이 참 그렇다. 그 미안하다는 말이 좋지도 고맙지도 않다. 그 사내의 종이를 받기 전보다 종이를 받아 읽은 지금 마음이 조금 더 불편하다. 그냥 어제보다 오늘이, 아침보다 조금 전이, 그리고 조금 전 종이를 받기 전보다, 그 사내가 지금 좀, 많이 불쌍해 보인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그 사내에게 사식을 드린다. 아침에 내가 직접 만든 재육볶음과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가지고 왔다. 스스로 먹는 날도 있지만 거의 교도관의 도움으로 식사를 한다는 그 사내가 오늘은 나와 단 둘이 같이 있다. 제육볶음과 미역국, 붉은팥이 들어간 찹쌀밥을 수북이 퍼 사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 사내가 밥을 한술 뜬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덜덜 떠는 손 때문에 턱밑으로 흐르는 게 더 많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사내의 식사를 그저 지켜본다. 엉성한 젓가락질 사이로 제육볶음이 잘 잡히지 않고 미끄러진다. 몇 번이나 계속 그거 하나 먹는 걸 못 먹고 안간힘이다. 그런데 왜 내 속이 터지는 걸까? 왜 내 속이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밥 하나도 혼자 제대로 못 먹는 바보 천치가 되어 내 앞에 수그려 앉은 그 사내의 낯이 그 처량한 몸짓이 정말 밉고 화나고 속상하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답답한 괴로움이 몰려온다.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아아 하세요. 조금 더 크게 아아 하세요.”

밥을 떠 사내의 입에 넣어 준다.

“어어, 고긴 꼭꼭 씹어 드세요. 목에 잘못 넘어갈 수 있어서 미역 조금씩만 드릴게요. 고기만 드시지 마시고, 이 양파랑 당근도 드셔야죠. 너무 빨리 삼키지 마세요. 아무리 제육볶음이 부드러워도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키면 어떡해요. 그러다 큰일 나요 천천히 드세요. 아무도 안 쫓아와요. 이거 다아 드셔도 되니까 물 마시면서 천천히 드세요. 모자라면 더 드릴게요. 많이 갖고 왔어요.”

사내의 입에 밥 한 숟갈, 제육볶음 한 번, 미역국 한 숟갈… 식사도우미를 자청하고 있다. 한 삼십 여 분 만에 밥 두 그릇을 싹 비웠다. 사내는 검기도 하고 회색이면서 흰색도 듬듬히 보이는 머리를 만지고 또 만진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는 듯 거의 티도 안 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갤 숙인다.


아침에 숙소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이런 그림은 전혀 예상도 상상도 못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그 사내에게 밥을 먹이다니, 정말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다면, 이것은 오직 단 하나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기묘자의 놀라운 기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밥은 용서이고 화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겐 밥이 그런 의미가 있다.

또한 성경에서도 밥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아니던가.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미쳤다고 속으로 아무리 그런들 이미 사과의 밥은 다 먹었고, 사내는 날 보며 웃었고, 나는 그 웃음에 마음이 놓였다. 그 사내와 나의 화해는 그렇게 순식간에 밥 하나로 끝나버렸다. 어떤 거창한 사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펑펑 울면서, 내 옷깃이라도 잡고 매달린다면, 한 두 번쯤 그 손길을 거절하다 못 이기는 척, 내가 그 사내의 마음을 받아줘야… 그게 화해 아닌가! 그저 그 사내가 밥도 못 먹는 모습에 식식 화가 나서, 내 분에 못 이겨 밥 몇 숟가락 넣어준 게, 그것이 무슨 화핸지 정말 화가 난다. 나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고 용서한 건 아니라고 굳이 못 박고 싶다.


사과의식이라도 제대로 받고 그 죄에 대해 수 천만 번은 곱씹은 후에, 그 사내를 아주 고통 속에 애달프게 한 후 그다음에 화해하고 싶었다. 그런 날이 오늘이 아니라도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자는 그 사내에게도 똑같이 은혜를 남발하시는지, 너무도 쉽게 그 사내는 나와 화해를 했고 나는 그 사내를 마치 용서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데 참 마음이란 게 내 뜻대로 안 되고 지금은 은혜자의 계획대로 모든 게 흘러가는 것 같다. 용서하지 않겠다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용서하자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지금 신께 완벽히 당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이 그분의 손에 꽉 잡힌 게 확실하다. 그 사내를 봐도 사과의 밥을 다 먹고 난 뒤엔 오늘 아침처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

은혜자의 계획은 정말 대단히 크고 깊다. 사람인 내가 그 계획을 감히 다 알 수 없고 그 계획 앞에 내 마음과 생각은 그저 속수무책 무용지물이다. 이번에도 내가 또 그분의 크신 능력에 그대로 케이오당하고 말았다. 전능자의 무한한 사랑 앞에 나는 그 사내를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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