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0806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오에 겐자브로, <히로시마 노트>

by 독서일기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


8시였지요. ‘피카’ 하고 빛이 번쩍 했습니다. 그건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피카’였습니다. 할머니는 ‘돈’도 ‘간’(쾅 하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천장과 지붕이 와르르 무너지고 바닥이 튀어 올라서 그 사이에 끼어 버렸습니다. 183~184p


“정신이 들어 뛰어나가 보니까 경례 자세로 전우가 서있었습니다. ‘야’ 하고 어깨를 두드리니까 스르르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이렇듯 한 순간에 재가 된 병사들의 초상. 또한 “병중이었던 병사의 집에는 어린 아내가 아기를 안은 채 큰 나무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빼내려 했지만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만이라도, 어서! 어서! 아뇨, 같이 죽을래요. 남편도 어차피 죽었을 거예요. 이 어린 걸 남겨두고서는…… 그보다 아저씨나 어서 피하세요!” 어린 아기만 살리고 본인은 타 죽었다는 자기희생의 삽화보다도 이 어린 엄마의 선택이 가슴을 때리지 않을까? 184~185p


<히로시나 노트>를 읽은 건 히로시마 여행 때문이었다. 히로시마 여행 책을 찾아보다 놀랐던 건 히로시마 여행 책 자체가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책 한 권 안 읽고 일본을 처음 갈 수는 없어 고른 책이 <히로시마 노트>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썼다니 히로시마에 대해서도 알고 좋은 글도 읽고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리라. 여행 전날 도착한 책을 전날 밤과 여행 중과 여행이 끝나고까지 읽었는데 그러는 동안 히로시마는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깊게 각인되고 있었다.


인사를 깍뜻이 하고 깔끔하고 조용하며 스시, 라멘, 만주 등 맛집과 세련된 거리와 최신 유행, 미야자키 하야오의 불멸의 애니매이션들, 아베가 어떤 망나니짓을 해도 지지하는 일본인들, 침략과 전쟁으로 이어져 온 역사, 지진과 원전으로 불안한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 그럼에도 선진국.



우울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히로시마


한여름 히로시마의 첫 느낌은 우울했다. 푹푹 찌는 번잡한 출근길에도 사람들은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며 전차건 에스컬레이터건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듣거나 하고 있었지만 우리처럼 다 들리게 대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장남들은 흰 셔츠에 통 넓은 검정 양장 바지, 검정 구두를, 여학생들은 무릎 길이 치마에 세일러복을, 남학생들은 긴팔 흰 셔츠에 통 넓은 검정 바지를 입었는데 남녀학생 모두 검정 구두에 검정 양말을 신고 있어 더워 보였다. 사람들도 가게들도 집도 오래된 것들을 쓸고 닦아 정갈하게 관리하는 것 같고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소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도시임에도 8시에는 가게 문을 닫고 거리에 주차된 차가 없고 도로를 달리는 자가용들도 많이 없어 한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과 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 익숙한 20세기 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조용함, 차분함이 아니라 속으로 무언가를 억누르는 고요함에 선뜩선뜩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온천을 찾아 떠났는지 히로시마에서 한국인을 찾아보기는 어려웠고 서양인들은 가족 단위로도 꽤 많았다.


히로시마1.jpg 뜨거운 여름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피폭 돔
히로시마4.jpg 피폭 당시를 그린 그림들. 옷이 타들어가고 뜨거운 화상으로 강물에 뛰어들고 있다.


히로시마3.jpg 피폭으로 타버린 흔적


히로시마를 상징하는 원폭돔이 보이는 평화공원 내 기념관에는 절반 가량이 서양인이었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고 서양인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피폭 도시, 히로시마!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아우슈비츠를 찾는 것과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저들은 원폭의 가해자로서 당시 비참한 현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히로시마에서 나는 새삼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민족임에 뿌듯했고 한편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가한 비인간적 면모를 떠올리며 부끄러웠다. 일본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환영인파의 함성에 아이돌이 온 줄 알았다고. 원폭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원폭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일본의 숙명이 원폭에 대한 외면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불과 두 시간,

그들은 어떻게 죽어갔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부끄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역사교과서의 설명을 벗어나 사고해본 적이 없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핵에 대한 공포는 일반화되어 있으나 불과 반세기 전 실제로 피폭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불과 2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기껏 관심을 가진 것도 핵이 얼마나 위력적인가였지 그 핵에 피폭 당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까지 생각을 못했다. 나는 나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전쟁을 일으키고 지배하는 자들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히로시마 노트>는 핵의 위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피폭 직후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고 어떻게 삶을 견디어 냈는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지옥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위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상적 휴머니즘이 아니라 극한의 휴머니즘, ‘진정한’ 히로시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역사-평화-나의 관련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이웃의 삶을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며 이것이 곧 평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에 겐자부로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책이 나에게 준 큰 기쁨이다. 문체가 곧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방대한 철학적 사유는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게 하며 고발문학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뿌리가 ‘히로시마’라는 것도 인상적이다.


히로시마의, 그야말로 히로시마 사람다운 삶과 사상으로부터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들한테서 직접 용기를 얻었으며, 유리 상자 속에 누워 있는 아들 때문에 우울하던 일종의 노이로제와 퇴폐의 근원을 싹둑 도려내는 고통을 맛보았다. 나는 히로시마 진정한 히로시마 사람들을 ‘줄’로 삼아서 내 내면의 딱딱함을 점검하고 싶어졌다. 그 무렵 나는, 전후민주주의 시대에 중등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어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일본과 미국 전후문학의 영향 속에서 이제 막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짧은 내면의 역사를 지닌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가지고 있던 감각과 모럴과 사상 모두를 히로시마라는 하나의 ‘줄’로 문지르고 히로시마라는 렌즈를 통해서 재검토하고자 하였다.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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