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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May 08. 2021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 처음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 소년의 방에서 나와 청년의 문을 향해 걸어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낯섦, 설렘, 기대의 감정들이 뒤엉켜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나는 3월의 이 아슬아슬한 탐색과 긴장의 순간들이 좋다. 물론 표면적 고요 속 용솟음치는 감정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건 시간 문제다. 낯가리고 서먹해하다, 슬금슬금 다가가 말을 붙이기 시작하다, 밤사이 목련꽃이 만개하듯, 한 순간 벚꽃봉오리가 터지듯 왁자함이 터진다.

  

“얘들아, 창문 밖에 봐봐. 캬 벚꽃! 그림이다 그림.”

“오~ 남자는 핑크, 핑크 하면 벚꽃 아닙니까! 쌤 밖에서 수업해요~~”    


경쟁의 최전선에, 입시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려 있는 극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심지어 즐겁 행복하게 웃기도 한다. 벚꽃 만개한 봄날 수업을 하다, 칸막이 쳐진 급식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허겁지겁 밥 먹는 걸 보다 불현듯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다. 사실 늘 미안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우물 밖으로 나갔을 때 세상은 아이들 상상만큼 아름답지 않을 것이기에. 고작 이런 세상에 편입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견뎌온 것인가 억울해할 것 같아서.    


경쟁을 당연시하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에서는 경쟁을 부정적인 원리로 봅니다. … 독일의 경우는 학교에서 경쟁을 시키지 않습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생각이 이미 1970년대 독일 교육개혁의 기본 원리였습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이들을 경쟁시켜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경쟁 이데올로기가 극단화되면 또다시 나치즘 같은 야만을 낳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119p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고 미안해지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경쟁이 싫다고만 생각했지 야만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내가 그 야만적 행위에 부역한 건 아닌지 …….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아이가 우울할 수 있냐고. 세상이 놀이터인 아이들이 어떻게 우울할 수가 있냐고. 어른들이 단합해서 학생들을 노예 상태로 묶어 놓고 있다고. 우리 사회의 ‘마지막 노예’는 바로 학생들이라고.     


도대체 언제쯤이면 학교는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논문, 봉사활동, 수상 기록이 없어지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까? 획일적인 교육과정이 아니라 대학처럼 선택해서 과목을 들으면(고교학점제) 조금은 경쟁이 덜해질까? 나는, 열심히 하라는 명분으로 나쁜 경쟁을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최소한의 방패막이는 되고 있는가? 국공립대학이 통합되고, 대학이 평준화되고,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버젓이 취업할 수 있고, 노동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미래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경쟁으로 내몰리지 않고 육신의 안락이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지금의 행복을 저당잡히지 않고 평화롭게 자유롭게 친구들 모두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답을 놓칠세라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책장을 넘겨보지만 학교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도 멀다.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17p    


아디다스, 메르세데스 벤츠, 비엠더블유, 지멘스, 보쉬, 루프트한자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 기업들은 전부 이사회의 50퍼센트가 노동자입니다. 사실상 노동자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가 차지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정말로 충격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43p    


독일 대학에는 과거 히피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르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특이하게도 강의실 맨 앞자리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옷도 안 사고 스스로 만들어 입겠다는 것입니다. 이 행위 자체가 일종의 시위, 데몬스트레이션입니다. 이 행위 자체가 일종의 시위, 데몬스트레이션입니다. 소비문화의 질서에 ‘내가 저항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지요. 110p    


아비투어 성적과 같은 비중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로 대기 기간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정원 제한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 왔는지를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의대의 경우는 아비투어 성적이 좋지 않아도 대체로 3년 정도 대기하면 입학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기 기간 중에는 관련 분야와 연관된 과목을 미리 수강하거나 실습할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는 대학이 많습니다.

아비투어 성적이 좋아서 들어온 아이들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끝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서 누가 더 좋은 의사가 됐을까요?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들이 있었는데, 대기 끝에 들어온 아이들이 졸업 후에 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꼭 치열한 경쟁을 시켜야 우수한 인재를 기를 수 있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을 깨뜨리는 결과이지요. 124p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에는 631명의 의원이 앉아 있습니다. 우리 여의도보다 훨씬 많지요. 이들 중에서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충격적이지만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165p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한국인들이 어떻게 이런 체제를 용인할 수 있지요?” 그의 물음에 저는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물음이기도 하니까요.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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