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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Jul 23. 2024

메르시 크루아상,
안녕 토마토 그리고 감자들아

청소 할래? 밥 할래? 묻는다면 청소! 

빨래 할래? 밥 할래? 묻는다면 빨래! 

밥은 언제나 뒷자리다. 문제는 자식들이다. 딸들은 먹는 만큼 찐다고 새 모이만큼 먹는다는데 아들놈들은 먹는만큼 큰다고 먹이는 게 일이다. 문제는 잘 먹이지도 못하면서 ‘오늘은 뭘 해먹이지?’ 답을 찾아 헤매기 일쑤고 그러다 덜컥 배민에서 주문 완료 메시지를 받는 날도 많다. 다른 집 아들은 배달 음식 좋아한다던데 입 짧은 큰아들놈은 중학교때 불닭볶음면을 즐기다 탈이 났는지 맵고 달고 짠 걸 입에 대지 않는다. 튀긴 것도 밀가루도 우유도 즐기지 않는다. 

아침에는 스팀기에 얇게 저민 샤브용 소고기, 청경채, 숙주를 올려 10분 찐 다음 진간장을 물에 희석해 깨소금 듬뿍 넣은 소스에 찍어 먹는다거나 토마토를 팔팔 끓는 물에 껍질이 까지도록 푹 데쳐 가로 세로 4등분하여 꿀을 살짝 끼얹어 따뜻하게 호로록 먹는다. 우유에 씨리얼이 차가운 성질이라 따뜻한 토마토를 곁들이니 균형이 맞는 것 같다. 

점심은 학교 급식, 만세 만세 만만세다. 이전 학교 급식이 형편없어 2년은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학교를 옮기고 보니 급식이 맛있어 밥 시간이 기다려진다. 나는 외출이라도 가능하지 학교에 들어오면 4시반까지 꼼짝 못하는 아이들한테 점심밥 한 끼는 얼마나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일까. 학교 급식만큼은 돈을 아끼지 말고 마구마구 잘 나와서 우리나라 아이들이 점심 한 끼는 제대로 먹고 다니면 좋겠다. 

저녁은, 이것이 문제다. 가방을 벗어던지고 부리나케 씻고 썰고 볶고 끓이면 모를까 잠깐 쉬었다 해야지 하고 소파에 드러눕는 순간 우리 가족의 저녁 밥상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없다. 

반찬 카페를 10년째 운영중인 후배는 소싯적부터 손맛이 남달랐다. 라면을 끓여도 김치볶음밥을 해도 심지어 계란을 삶아도 맛있었다. 노른자를 2/3만 익혀 안 익은 1/3 지점에 소금을 솔솔 뿌려 내면 같은 삶은 계란인데 요리처럼 보인다. 결국 전공하던 음악을 그만두고 빵을 굽고 반찬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며 살고 있다. 여전히 맛있게 하고 맛있게 먹는다. 아들들 저녁거리를 걱정하고 있으면 “언니, 달밥으로 보내요. 있는 걸로 아무거나 해줄게요.” 하는데 배달 음식이건 외식이건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 접시를 싹싹 비운다. 사이드는 하이라이스소스를 끼얹은 돈함박스테이크. 메인은 대파계란볶음밥. 대파와 계란밖에 없는데 맛이 난다. 

후배가 읽는 책들을 가게에 전시해 두었길래 한 권을 빌려왔다. <메르시 크루아상> 부제목이 ‘장바구니에 담긴 프랑스’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마토인 소의 심장과 복주머니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가 버거울 정도로 크고 두터운 속살을 가졌다. 이빨을 콕 박아 쭈욱 즙을 들이마시면 여름이 입 안에 들어온다. 작열하는 태양과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 청명한 물방울이 떨어지는 분수대, 끝없이 펼쳐져 괜히 울고 싶어지는 노란 해바라기밭, 마을 어귀마다 줄 선 자작나무, 이 모든 여름이 짭조름하고 달곰한 즙을 타고 물결친다. 얼음을 넣어 찰랑찰랑하는 로제 와인을 마시며 바질을 잔뜩 뿌린 토마토 샐러드를 먹고 나면 온갖 고난에도 지치지 않는 농부들이 일 년 내내 준비한 과일 바구니를 받아 들 차례다.   

   

이런 식이다. 파리의 재래시장인 알리그르 시장의 ‘식재료들로’ 글을 썼다.(다 차려진 음식에 대한 예찬이면 끝까지 보지 않았을 것 같다.) 단골 치즈 가게, 와인 가게, 정육점, 향신료 가게 등이 무대다. 읽고 있으면 상인들이 일일이 닦아 윤이 나게 쌓아올린 과일, 야채의 향연에 감탄하며 알리그르 시장에서 같이 장을 보는 느낌이다. 내 관심사와 거리가 먼 먹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새로운 치즈도 먹어보고 싶고 도대체 맛을 분별할 수 없는 와인도 종류별로 맛보고 싶다. 맛깔나는 향신료를 톡톡 뿌려 간단한 한끼를 요리처럼 해먹으면 참 행복하겠지. 

어머님이 땀흘리며 텃밭에서 따준 토마토, 상추, 가지, 외삼촌이 농사지었다고 현관 앞에 박스째 두고간 감자가 저녁 밥상거리로 간택받지 못해 의기소침해있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제철 과일과 야채, 먹거리들은 파리의 알리그르 시장에만 있지 않고 우리집 냉장고에도 있었고 어머님의 텃밭에도 있었다! 재래시장에 깔린 싱싱한 제철 식재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그날 이후 우리집 식탁에는 데친 토마토, 삶은 감자, 가치 무침이 차려졌다. 오늘은 무얼 가지고 요리를 해볼까 상상하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다. 어제는 넘쳐나는 감자를 메인으로 양파, 파만 넣어 감자고추장찌개를 해보았다. 맛은 기대 이하였지만 다음에 물을 좀더 적게 붓고 끓이면 괜찮을 것 같다. 여전히 감자, 토마토, 상추, 가지들이 여름이라고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것들을 씻고 끓이고 조물조물 무치면서 매미가 신나게 울어대는 이 여름을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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