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를 읽고
쿠바를 잊고 지낸 지 한참 되었다.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니 잊고 지냈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나는 자주 쿠바를 꿈꾸었다. 아바나에 내려다 놓으면 익숙하게 말레꼰을 거닐고 낡은 골목골목을 찾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이 쿠바를 생각했다. 그 꿈이 실현되려면 말이 통해야겠는데 쿠바는 스페인어를 쓴다고 했다. 그래서 또 꿈을 꾸었다. 스페인어를 능숙하게...는 아니더라도 유치원생만큼은 할 수 있는 꿈. 싱크대에 스페인어 단어를 써 붙여놓고 외워보기도 하고 어학책을 사서 공부해 보기도 하고 틈나면 동요CD를 틀어놓고 따라해보는 등등 이래저래 시간과 틈을 내어 시도해 보았지만 외국어는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어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쿠바는 슬슬 잊혀져 갔고 내가 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스페인어는 나의 밀린 숙제가 되어 있었다.
조례 시간 맨 앞에 앉은 ㅇㅇ이 책을 보고 있길래 신기하여(전문계 고등학교에도 반에 꼭 한 명은 책을 본다) 뭔 책인가 보니 아니 코미꼬! 유튜브에서 스페인어 독학을 검색하다 온갖 허접한 채널들을 전전하다 만났었지. 스페인어로 이것저것하는 한량. 멕시코, 페루, 스페인을 떠돌며 그곳 사람들이랑 시시껄렁한 농담하는 걸 주로 업로드하는데 스페인어 가르치는 영상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스페인어 강의를 올린다며. 우와 스페인어를 이렇게 재밌게 가르친다고? 강호의 숨은 일타를 발견한 기쁨에 들떴다. 그의 스킬과 건강한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알고보니 서울대(똑똑하겠지) 체육교육과(어쩐지 몸이 좋더라) 출신 개그맨.
“ㅇㅇ, 이 사람 어떻게 알아? 나 이 사람 진짜 좋아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유튜번데요. 웃기잖아요.”
“쌤 좀 빌려줘. 어떻게 이런 일이!”
그 길로 빌려와서 내 책상에 두고 이상한 인간들과 마주칠 때마다 틈틈이 아껴 읽으며 화를 삭히기에 좋았다. 영상에서만 웃긴 게 아니라 글도 웃겼다. 글발로 웃기는 게 아니라 삶이 웃겼다. ‘운동이 좋아서 체육과에 갔다가 웃기는 게 좋아서 개그맨을 했다가 외국이 좋아서 스페인에 갔다가 다 망해서 유튜브를 했다가 좀 잘돼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무모함과 용기가 부러웠다.
공부는 축구에 대한 배신이라 여겼다. 수업 시간에 쉬었고 쉬는 시간에 축구를 했다. 축구부보다 축구를 더 많이 하고 공부는 더 안 하는 축구 미치광이로 살아갔다. 평생 축구만 하면서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예비 고3이라는 핑계를 대는 배신자들이었다. 유일하게 벽만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그와 공을 주고받았다. 눈 오는 어느 날 복도에서 테니스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체육 선생님이 “병선아”라고 불렀다.
“3학년 올라가면 9반으로 들어와라. 대학 보내줄게.”
친구들을 빼앗아 간 대학을 이야기하시다니, 선생님이 시켜준 자장면만 없었어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공부 싫어요. 축구가 좋아요.”
“체육과 가면 되잖아.”
지금 코미꼬는 멕시코에서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그의 유튜브에 접속해보니 구독자가 105만으로 늘었다. 덕분에 이것저것하는 한량일 때 하던 스페인어 수업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유튜브 채널명 ‘코미꼬’가 스페인어로 코미디언이라는 뜻임을 4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때 나도 꿈이 많았다. 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안정된 직장과 중년의 나이와 중산층의 삶을 사는 동안 꿈은 옅어져 가고 있었다. 코미꼬의 우당탕한 인생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옅어져 가고 있던 나의 꿈들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20대의 무모함과 용기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꿈꾸는 날들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