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안하게 했던 순간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각자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경험하며 자랍니다. 좋아하는 과목이 있으면 그만큼 어려움을 느끼는 과목도 생기기 마련이죠. 저에게는 미술이 바로 그런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미술 시간이면 늘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친구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며 풍경을 그리고 밝고 화려한 색으로 나무와 하늘을 채워갈 때, 나는 빈 종이 앞에서 막막함만 느꼈습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마음은 불안해졌죠.
사람을 그리라는 과제가 나올 때면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계속 머뭇거리기만 했죠. 다른 친구들이 사람의 얼굴을 자신 있게 그릴 때, 단순한 원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미술 시간은 점점 재미없는 시간이 되어 갔습니다.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그림을 그려볼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미술은 항상 어려운 분야였고 자신감도 없었으니까요. 그림 그리기는 마치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고, 미술 시간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시간이 되어갔습니다
성과 뒤에 숨겨진 공허함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은 내 삶에서 멀어졌습니다. 업무에 집중한 덕에 성과를 내고 승진도 했으며, 어느새 팀장이 되어 책임감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죠. 하지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빠져 있다는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그때,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카톡 알림이 울렸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미술 드로잉 수강생을 모집합니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잊고 지냈던 미술을 다시 떠올리게 된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설렘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고민 끝에 드로잉 수업을 신청하며, 새로운 도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당혹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강사님의 설명은 낯설었고, 제 손에서 나온 그림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그려도 어설퍼 보였고, 다른 수강생들이 빠르게 진도를 따라가는 것 같아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도전을 계속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습니다.
"잘할 필요 없어. 그냥 매일 조금씩 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매일 연필을 잡았습니다. 특별한 목표도 없었지만, 그저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작은 노력이 쌓여가면서 어느새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들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어제의 그림과 오늘의 그림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순한 선을 그리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지만, 점차 선이 매끄러워지고, 그림의 비율도 맞아가기 시작했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을 그릴 수 있었고, 그만큼 자신감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어제와 다른 나를 매일 마주하면서, 작은 노력이 가져오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는 매일 꾸준히 그린 그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복한 연습, 그리고 인내심 있게 발전을 기다린 나의 의지와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이었죠. 비록 미술이 강점은 아니고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릅니다. 작은 노력이 쌓여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 자체가 큰 성취로 다가옵니다.
삶에서 무언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하는 것을 꾸준히 시도하는 용기와 노력이야말로 나를 조금씩 성장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