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My Breath is Scattered•Kimisoo K.
뉴욕에 살며 그동안 한국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범죄도시 2가 미국에서 상영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이름 하나가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그래서 1편, 범죄도시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문득 스쳐 지나간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선생 김봉두
— 저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기억합니다.
1987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답니다.”
그 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한동안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화가 났습니다.
그 많은 대학생들의 목숨 위에 세워진 자유.
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에 깊은 감사와 애도를 드립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
— 다르다는 것은 다르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름도 하나의 존재이고 함께하는 가족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범죄도시.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남은 것은 짧지만 강한 대사들이었습니다.
적지만 의미 있는 한 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이 정도로도 많이 조율되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건이파와 흑사파 사건을 복합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현실은 아마 더 잔인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돈과 영역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서늘했습니다.
두 번째로 남은 것은 형사 캐릭터였습니다.
평범하게 떠올리는 형사의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짧은 머리의 전형적인 형사도 아니고 조폭 같은 분위기라고
슈퍼히어로 같은 체구에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
그런데 그 입에서 뜻밖의 인간적인 농담이 나옵니다.
잔혹한 장면 위로 툭, 하고 던지는 유머.
그 순간 피로 물든 화면이 잠시 투명 수채화처럼 엷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머가 잔인함을 더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미국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도구가 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맨주먹, 쇠파이프, 쇠사슬, 도끼, 칼.
몸과 몸이 직접 부딪칩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피가 진하게 보입니다.
손으로 눈을 가려야 하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옵니다.
잔인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함을 정면으로 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장면들 속에서 카메라는 끝까지 따라갑니다.
숨을 몰아쉬듯.
그 열기와 속도를 느끼며 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그리고 같은 시기, 범죄도시 3
— 야쿠자와의 대결.
‘야쿠자’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오래된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본에 낮은 경찰이 지키고 밤은 야쿠자가 지킨다는 말.
조직의 이름보다 그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오사카, 도쿄, 교토.
그들의 나와바리.
나는 그저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어딘가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
따뜻했던 히레사케의 향, 오모테나시라는 단어가 주던 부드러움.
그 모든 기억이 영화 한 편을 계기로 다시 떠올랐습니다.
벽돌폰을 처음 만졌던 시절부터 지금 아이폰을 사용하는 현재까지.
수많은 강산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뜻밖의 사고로 예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된 현실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영화를 통해 과거의 나를 잠시 꺼내 봅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제자리로 돌려보냅니다.
오늘 하루만 그 시간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다시 딸아이의 장애인 엄마로 현재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