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My Breath is Scattered•Kimisoo K.
하마스의 납치 뉴스 기사를 보다 멈칫했습니다.
마음 한구석,
저 멀리 잊고 지냈던 차갑고 무거운 단어가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순식간에 수십 년 전,
뉴욕 맨해튼의 어느 밤으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나는 맨해튼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와 내 친구는 같은 한국 사람,
같은 나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같은 길을 걷는 클래스메이트이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안식처 같은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같은 수업의 마지막 과제를 끝낸 해방감에 처음으로 수업실이 아닌,
우리는 리틀 도쿄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로 향했습니다.
야키토리로 유명한 '타이쇼'.
친구는 차가운 맥주를,
나는 뜨거운 히레사케를 시켰습니다.
구운 꼬치 향기 속에 우리는 서로의 내면을 내색 없이 존중하며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건은 식사를 마치고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순간 터졌습니다.
칠흑 같은 검은색 상자 모양의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급정거했습니다.
앞 좌석과 뒷좌석 유리가 동시에 내려가고,
네 명의 남자가 우리를 짐승처럼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본능적인 공포가 척추를 타고 흘렀습니다.
"경찰 불러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동양인 여성 둘의 절박한 영어의 외침이 밤공기를 찢었습니다.
한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리자,
검은 차는 비명 같은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만약 그때 친구가 곁에 없었다면,
만약 그때 내가 친구 곁에 없었다면.
그 밤,
우리는 각자의 아파트 대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뜻밖의 사실 하나.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타겟'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명은 부를 움직이는 큰손의 딸,
한 명은 당시 조직의 정점에 있던 남자의 소중한 존재.
그렇기에 그날 밤 우리 앞에 멈춘 검은 차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밤에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비밀스러운 같은 규칙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작별을 택했습니다.
맨해튼 로열튼 호텔 44 서쪽 44가 커피 라운지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연락처를 지웠습니다.
너무 뜨거웠던 공포와 우정을 감당하기에 우린 너무 젊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삭제'라는 버튼 하나로 우리의 인연은 매듭지어졌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한국에서 그녀가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건너 들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을 채운 건 궁금함도, 그리움도 아닌 지독한 ‘안도감'이었습니다.
'아, 다행이다.
우리는 그날 밤 그 검은 차로부터, 그리고 서로의 위험한 그늘로부터 무사히 도망쳤구나.'
우리는 서로를 찾으려 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거울 속 내 모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 나는 장애를 가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맨해튼의 거리보다 지금의 걸음은 훨씬 더디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날 밤, 위험의 문턱에서 함께 외쳤던 비명은 이제 나를 숨 쉬게 하는,
하나뿐인 아이를 위한 나지막한 숨결이 되었습니다.
뉴욕은 친절한 천사와 굶주린 늑대가 한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도시입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마음 한구석에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날 밤, 우리 앞에 섰던 그 검은 차는 도대체 누구를 찾아온 것이었을까?"
'큰손의 딸'이었던 한 명?
아니면
‘조직의 정점에 있던 남자의 소중한 존재’ 였던 한 명?
그때 그 친구와 나누었던 '생존을 위한 이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힘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
어떤 인연은 손을 잡아서 남고, 어떤 인연은 놓아주었기에 전설이 됩니다.
내 기억 속의 사람들은,
이제 종이 위에서 글자가 되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 남은 삶을 걸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합니다.
내게 그 복귀의 수단은 다름 아닌 살기 위해서 시작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뉴욕의 언어로, 영어로 먼저 세상에 내놓았던 나의 기록들.
이제 나는 나의 모국어인 한글을 빌려, 기록들을 벼려내어 새기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 10화에 이르는 동안,
글을 읽어주는 당신이 곁에 있기에 나는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