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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학자 Filia Nov 12. 2024

영화 <동경 이야기> : 나이듦에 관하여

나의 인생 영화를 꼽으라면…


젊음이 영원할 줄만 알았던 20대 시절에는 몰랐다.


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거장으로 꼽히는지, 왜 그의 영화들이 세계 영화사에서 걸작의 반열에 오르는지.


그런데 지난 세월 살아오면서 그의 영화들, 특히 <동경 이야기>가 문득문득 계속 떠올랐다. 더욱이 늙어가는 나의 부모를 볼 때면 말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는 삶을, 인생을, 영화로 담았구나.     


그의 영화들은 주로 가족을 다룬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즈 야스지로 감독 자신은 평생 결혼한 적 없이 독신으로 살았다.)



<동경 이야기>(1953년 작)는 일본의 작은 시골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멀리 동경에 살고 있는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부부는 의사인 첫째 아들을 만나러 가지만, 아들은 당초 부모에게 도쿄 구경을 시켜주겠다던 계획을 갑자기 취소한다. 다음으로 노부부는 둘째 딸을 만나러 가는데, 둘째 딸 역시 자신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노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결국 노부부는 죽은 셋째 아들의 아내인, 미망인으로 혼자 살고 있는 며느리 노리코와 함께 동경을 구경하게 된다. 노부부는 자식들이 죄책감에 보내준, 편히 쉴 수 없었던 온천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온천 여행 시퀀스에서 노부부의 쓸쓸함, 아무도 특별히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겪게되는 인생의 씁쓸함과 서운함, 나이 들어감에 따라오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담담하게 묘사된다.


두 부부는 동경을 떠나 다시 시골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오사카에 들러 넷째 아들도 잠시 만난다. 집으로 돌아온 직후, 아내는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임종을 맞이한다. 홀로 남은 아버지를 자식들이 아닌 며느리 노리코만이 끝까지 남아서 위로해 주고, 아버지는 더 이상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 쓸쓸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오즈 야스지로 (1903-1963) 감독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영화적 관습을 파괴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그는 특유의 미장센과 촬영 및 편집 기법, 그리고 소소한 삶의 일상을 절제하며 표현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영화 세계는 “오즈 스타일”로 불리며,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그에 대한 오마주를 자신들의 영화에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의 독보적인 영화 스타일 가운데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우선, 대표적으로 “다다미 샷”을 들 수 있다. 이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독특한 촬영 기법으로, 일본 전통 다다미 방에 앉아있는 인물들의 눈높이에 똑같이 맞춰서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의 위치가 극단적으로 낮은 샷(shot)을 말한다.


그의 영화에서 일상의 눈높이와 같은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 속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게 되거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강렬하게 인물들에게 이입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상반되는, 감정의 거리 두기와 감정의 이입. 그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이 지점에서 가슴이 절절해진달까.

     

다음으로, 영화 촬영에 있어서 “180도 법칙” 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카메라의 위치가 가상의 180도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그래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영화 속 공간의 방향성을 일정하게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즈 야스지로는 이 180도 법칙을 의도적으로 넘나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그는 파격적인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밖에 스토리상 중요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기법, 움직임 없이 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정적인 카메라 워크 등 그만의 스타일로 우리네 삶의 소소한 일상을, 혹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담담하게 표현해 낸다.      


그렇다. 그의 영화는 삶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지나서 젊은 시절을 거치고, 결혼해서 부모를 떠나고, 그런 자녀를 바라보며 노부모는 기쁘지만 쓸쓸함을 느끼고, 또한 늙어가는 노부모를 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우리네 삶 말이다.


세월을 지내오면서 겪게 되는, 일상 속의 잔잔한 기쁨, 쓸쓸함과 비극. 그의 영화들은 이를 과장됨 없는 스타일과 감정을 절제하는 연출로 그려낸다.


실제 우리의 삶이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 그저 담담하게 흘러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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