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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이 아니다

뤼미에르 형제, 최초의 영화에 대한 오해

by 영화학자 Filia
최초의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영화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있다.


(많은) 영화사가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후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은 여러 사람이 모여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을 보는 것으로 결론지은 듯하다.


시각 이미지에 시간을 담아낸 이 놀라운 매체의 발명은 19세기 후반 여러 천재/ 혁신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계의 발명과 동시에 이룬 새로운 관람 행위의 창시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1895년 12월 28일. 이 날은 바로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그랑카페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세계 최초로 영화를 상영했던 날이며,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그런데 흔히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그랑카페에서 이 날 상영되었다는 오해, 즉 <열차의 도착>이 영화사 최초의 영화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최초의 영화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그날 그랑카페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던 10편의 영화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영화의 탄생일이라 일컬어지는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이 영화는 상영된 적이 없다.


영화 <열차의 도착> 이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 것은,


1896년 1월이다.


그런데 전술한 것과 같은 오해는 단지 영화 비전공자가 쓴 인터넷 블로그나 신문, 잡지의 저널리즘적 글 정도에서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다. (네이버 국어사전 "기차의 도착"이나 한국어 버전 위키백과 "열차의 도착"에도 이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이며 1895년 12월에 그랑카페에서 상영되었다고, 잘못, 기술되어 있다.)


정식으로 출판된 여러 출간 도서에서조차도 <열차의 도착>이 1895년 12월에 그랑카페에서 상영된, 영화사 최초의 영화라고 잘못 기술되어 있을 정도로 이 영화를 둘러싼 오해는 널리 널리 퍼져있다.


이 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화면을 비스듬히 달려오는 열차에 놀라 혼비백산하여 살롱 밖으로 도망쳤다는 일화도 함께 소개되면서 말이다. 이 일화가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정확히 확인된 바 없으나, 당시의 관객들이 열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1895년 12월에 상영된 적은 없다.


영화의 탄생일이 언제인지, 즉 영화가 최초로 상영되었던 날을 언제로 간주할지에 대해서는 영화 역사가들 사이에 여러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연구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영상을 만드는 기계에 대한 연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35mm 필름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프랑스의 루이 르 프린스 (Louis Le Prince)의 영화가 최초이다. 1888년 10월, 그는 자신이 발명한 카메라로 만든 <라운드헤이 가든>이라는 2초 분량의 짧은 영화를 공개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영화를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90년 9월에 실종되었다. 프랑스 경찰은 그를 수색했으나 영영 다시는 찾을 수 없었고, 이 실종 사건을 둘러싼 여러가지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실종된 그는 1897년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게된다.


미국에서 에디슨--우리가 발명왕 에디슨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에디슨--과 그의 연구소 소속 연구자인 딕슨은 키네마토스코프/키네마토그라프를 1891년에 발명했다. 에디슨과 딕슨은 키네마토스코프로 움직이는 영상의 상업적 상영을 시작했다. 그 최초의 상영은 뤼미에르 형제보다 빨랐다. 1894년 4월, 뉴욕에서다.


그런데 에디슨과 딕슨의 키네마토스코프를 통한 상영은 오늘날과 같은 극장 형태의 상영이 아니었다. 기계 하나당 관람객 한 명이 눈을 기계 가까이 대고 들여다봐야 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이후 보편화된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의 형태와 많이 달랐다. 그래서 영화사에서는 대체로 이 날을 최초의 영화 상영일로 간주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에디슨과 딕슨의 이러한 일인용 관람 방식은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출현과 함께 오늘날 너무나도 보편화된 영화 관람 방식이 되었다.


또한 뤼미에르 형제도 1895년 12월보다 이전인, 같은 해 3월에 파리 국가 공업 진흥회에서 <공장노동자들의 퇴근>을 상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대중들을 위한 공개 상영회가 아니었다.



1895년 12월 28일 토요일 오후 5시.


어느 겨울 날 늦은 오후, 30명이 조금 넘는 파리지앵들은 그랑 카페의 지하에 있는 인디안 살롱 (Salon Indien du Grand Cafe) 으로 모였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영사된,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날.


파리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 역사상 최초의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열 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그래서 많은 영화사가들은 이 날을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 일컫는다.



이 날 상영된 영화 열 편의 목록과 상영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공장노동자들의 퇴근> 46초

2. <말 위에 올라타는 사람> 46초

3. <금붕어 낚시> 42초

4. <사진 협회, 리옹에 상륙> 48초

5. <대장장이들> 49초

6. <정원사> 49초

7. <아기의 식사> 41초

8. <담요 위로 뛰어내리기> 41초

9. <리옹의 코르들리에 광장> 44초

10. <바다> 38초


영화라는, 놀랍고도 신비한 매체의 탄생.


그리고.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상영 하루 전 날인

1895년 12월 27일,

대중 예술 업계의 종사자들을 위한 비공개 상영회가 있었다.


이 “비공개 상영회”에는 당시 파리의 한 극장주였던, 자신의 극장에서 마술 공연 등을 펼치던, 영화 "예술"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조르쥬 멜리에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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