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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조선변호사>와 법치주의

조선 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을까?

by 영화학자 Filia


조선 시대에도 변호사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고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일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외지부라 불리는 직업군이 있었다. 거의 모든 공식 문서가 한자로 씌어있던 시대에 한자를 모르는 대부분의 백성들은 스스로 고소장을 작성할 수도 없었고, 설령 한자를 안다고 해도 한자 지식은 법률 지식과는 별개였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법률을 잘 아는 외지부에게 돈을 주고 송사를 했던 것이다. 외지부는 법률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법리 검토, 증거수집, 재판정에서의 변론까지 모두 맡아했다.


<조선변호사>, 외지부 강한수의 변론 장면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 외지부의 활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금지되었던 배경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외지부에게 수임료를 내야 했기에, 돈이 있는 자만이 외지부를 고용할 수 있어, 재판에서 외지부를 고용한 당사자가 그렇지 못한 당사자보다 더 유리하게 되는 불공평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에는 있는, 형편이 어려운 형사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선 변호인 제도는 없었으니 말이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사를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4항)


대한민국의 법률 체계에서는 누구든, 특히 피고인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할 수 있는 형사 사건의 경우,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써 반드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아무리 죄질이 나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국가가 보호하는 것. 바로 법이 지향하는 정의로움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발전된 사법 시스템이 있었던 조선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변호사에 해당하는 이 외지부는 조선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금지되었던 직업군이었다. 금전 유무와 무관하게 —그러나 문맹이냐 아니냐 자체가 금전의 문제라는 아이러니—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하므로, 외지부 활동은 국가에서 위법으로 규정하여 엄격히 다스렸다. 발각되면 멀리 유배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사회적인 수요는 있었기 때문에 외지부는 암암리에 재판 당사자의 지인이거나 친인척인 것처럼 해서 법률 사무를 대리해 주었다.


<조선변호사>, 외지부 강한수의 가족. 강한수의 상상.


드라마 <조선변호사>는 외지부인 강한수(배우 우도환)가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조선의 법정에 서서 그들을 변호해 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야기이다.


사실, 강한수의 시작은 부모에 대한 복수였다. 강한수의 아버지는 중인 신분이었고, 율관이었다. (율관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법률을 담당하는 관리직이다.) 그러다 강한수의 부모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에 강한수는 외지부가 되어 부모에게 누명을 씌운 훈구파 세력들을 한 명씩 법정에서 법대로 처단한다.


한편, 복수와 동시에 힘없는 백성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목숨 걸고 변호하는 등 드라마는 강한수가 권세에 맞서는 영웅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보여준다. 코믹함과 진지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과 유려한 변론을 쏟아내는 모습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우도환의 연기는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리 어리석으니 법이 누구 편인지 여태 모르지.”

부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울부짖는 어린 강한수에게 마을 현감이었던 추대감은 말한다. 그러자 울부짖던 소년은 외지부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에게 선언한다.


법이 누구 편이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줘야지.

외지부 강한수는 독과점 횡포로 생업을 잃은 평민에게 장사할 권리를 되찾아준다. 힘들게 일군 땅을 양반에게 빼앗긴 농민에게는 그 땅을 되찾아준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하고 누명까지 쓰고 옥에 갇힌 사대부 아녀자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남편의 불법적인 악행을 재판정에서 밝혀낸다. 양반 주인집 아들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를 노비에게 덮어 씌우지만, 노비의 아들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외지부 강한수는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이끌어낸다.


<조선변호사>의 재판 장면


백성들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사이다 같은 법정 에피소드와 더불어, 드라마의 다른 한 축에서는 <경국대전>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를 실제와 허구를 섞어 보여준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 편찬이 시작되어 성종 때 발표한 것으로, 조선시대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법전으로 평가받는다.


법치주의란, 통치와 처벌을 할 때에는 반드시 법률에 입각해야 한다는 법의 이념이다. 즉, 통치자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명확하게 규정된 법에 의해 통치할 수 있도록 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으로 법이 지향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경국대전>. 이미지출처:museum.go.kr


다시 말해, 이 드라마에서 법전을 편찬했던 것은 조정의 관리나 양반이 함부로 노비나 양민을 벌하지 않도록 하고, 누구든 오로지 국가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형벌을 받도록 하고, 나아가 모든 백성들이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돈도 권력도 없는 자들을 위해 목숨 걸고 변호하는 외지부 강한수, 평민으로 위장한 체 백성들의 힘이 되어주는 연주 공주, 최고 명문가 자제이면서 아버지의 악행을 멈춘 유지선, 통일된 법전을 편찬하고자 했던 조선의 율관과 임금들. 그들이 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것은 모든 이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법치주의였던 것이다.








필자가 원불교신문(wonnews.co.kr)에 연재중인 칼럼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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