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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키드>: 오즈와 위키드의 세계관

뮤지컬영화 새로운 걸작이 탄생하다

by 영화학자 Filia

1.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의 세계관: 두 영화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집이 동쪽 마녀 위에 떨어지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의 내러티브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첫째, 두 영화에서 도로시의 집에 깔린 마녀는

1) 엘파바의 동생 (<위키드>의 네사로즈)이며

2) 그 동생은 동쪽 마녀이다.


둘째, 두 영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의 최후는 다음과 같다.

1) <오즈의 마법사> 엔딩 부분: 도로시가 허수아비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허수아비에게 물을 부었는데, 그때 사악한 서쪽 마녀가 그 물에 맞게 되고 몸이 녹아내리듯 옷과 모자만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2) 영화 <위키드>의 시작 부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엘파바의 이러한 최후가 암시된다.

<위키드> 첫 장면에서 도로시와 친구들 (양철인간, 허수아비, 사자)이 어느 "성 안"에서 마녀와 대결하는 시퀀스가 암시된다. 이어서 먼치킨 마을 사람들이 사악한 서쪽 마녀가 죽었다고 환호하는 것으로 <위키드>의 도입부 시퀀스가 시작된다.


셋째, 이렇게 <오즈의 마법사> 엔딩 부분과 <위키드>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사악한 서쪽마녀, 엘파바의 (성 안에서의) 최후는 서로 연결된다.


<위키드> 영화 1부 전체는 글린다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플래쉬백이다. (사실 뮤지컬을 다 본 입장에서 엘파바의 최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첫 장면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두 영화 초반에 나오는 두 마녀의 죽음 시퀀스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각 마녀의 죽음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은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제 의식과 맞닿아있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와 <위키드>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텍스트이다.

오즈와 위키드의 세계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인종차별, 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의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에 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어떻게 선함과 악함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결정되는지, 어떻게 진실이 아닌 뉴스가 미디어에 의해 전파되는지. 그리하여 우리가 역사라 이름 짓는 것은 실은 왜곡되어 온 이야기라는 점 말이다.


그리고 특히 그 반짝이는 구두.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가 신은 동쪽마녀의 구두


<오즈의 마법사> 시작 부분에, (도로시의 집에 깔려서 발만 등장하는) 동쪽 마녀의 발에 신겨져 있던 반짝이는 구두는 착한 북쪽 마녀의 마법으로 도로시의 발로 옮겨진다. 이에 사악한 서쪽 마녀 (<위키드>의 엘파바)는 동생의 구두는 자신이 가져야한다며 분노하고, 도로시를 위협하고 떠난다.


영화 <위키드>: 엘파바 동생 네사로즈가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구두


영화 <위키드>에서 이 반짝이는 구두는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네사로즈의 반짝이는 구두는 엘파바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 -- 아버지로부터의 차별, 괴상한 외모로 인한 다른 아이들의 놀림, 서러움 등-- 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아가 쉬즈학교에서도 다른 학생들과 함께 동생 네사로즈는 그 반짝이는 예쁜 구두를 신고 한껏 꾸미고 가지만, 엘파바는 꾸미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글린다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는) 그 칙칙한 검정 모자를 쓰고 가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의 도입 부분에 등장하는, 두 마녀의 죽음과 구두는 이 영화에서 무척 중요하다.



2. 오즈와 위키드의 세계관: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뮤지컬 <위키드>


뮤지컬 <위키드>


필자는 미국에서 뮤지컬 <위키드>를 총 3번을 봤다. 유학했던 LA에서 2000년대 중반과 2000년대 후반에 각 한 번씩, 당시 새로 등장한 뮤지컬 <위키드>가 뮤지컬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던 무렵에 봤었다. 이후 2010년대 초반,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게 된 기념으로 어머니와 뉴욕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뉴욕이 처음이었기에 최고의 뮤지컬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골랐던 뮤지컬이 <위키드>였다. 이렇게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세 번째 관람하게 되었던 <위키드>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1막과 2막으로 나뉘고, 중간에 인터미션이라 부르는 대략 2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있다.


뮤지컬 <위키드>는 1막 마지막 씬에서

엘파바가 드디어 마침내, 우리가 아는 마녀의 모습(검정 망토와 모자, 그리고 마법 빗자루를 탄)을 하고 무대의 천장 가까이 높이 올라가 (물론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와이어를 타고) “Defying Gravity”를 부른다. 뮤지컬에서 이 장면은 언제나 소름 끼치게 좋다.


그 노래를 끝으로 무대의 커튼이 내려오면서 1막은 마치고, 휴식 시간인 인터미션을 맞이하고, 이어서 2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위키드> 뮤지컬은 그렇게 진행된다.


영화 <위키드> 1부는 이 뮤지컬 <위키드>의 1막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끝난다. 역시나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도 엘파바가 “Defying Gravity”를 부른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영화 <오즈의 마법사> 스토리는 이렇다.


미국 캔자스에 살고 있는 소녀 도로시. 어느 날 토네이도가 몰아치고 강아지 토토와 함께, 그녀가 살던 집을 타고 날아간다. 영화에서 캔자스는 흑백세상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날아간 오즈의 세상은 컬러 세상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세계 영화사에서 최초의 컬러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며 마법세상이다.


도로시의 집은 날아가서 동쪽 마녀 위에 추락하고, 그렇게 동쪽 마녀는 영화 시작부터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착한 마녀인 북쪽 마녀가 나타나고, 사악한 서쪽 마녀도 나타나 도로시가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고 분노한다. 착한 북쪽 마녀가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의 반짝이는 구두를 도로시가 신도록 해주자, 서쪽 마녀는 도로시를 위협하고 사라진다. 캔자스의 집에 돌아가는 게 소원인 도로시에게 착한 북쪽 마녀는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면 그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한다.


도로시는 가는 길에 허수아비, 양철인간, 사자를 만난다. 마법사 오즈는 평범한 노인이었고, 그는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사악한 서쪽의 마녀를 무찌르면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이어 도로시 일행은 사악한 서쪽 마녀의 성으로 가서 서쪽 마녀를 물리친다. 이후에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로시는 캔자스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의 착한 마녀는 북쪽의 마녀 (소설에서는 남쪽마녀) 이며, <위키드>의 글린다이다.



<위키드> 주인공 엘파바의 이름은
소설 <오즈의 마법사> 작가의 이름,
L. Frank Baum 에서 L. Fra. Ba. 로 변형한 것이다.

오즈와 위키드의 연대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 (L. Frank Baum)에 의해 1900년에 발표되었다.

이후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1939년, 주디 갈란드 주연으로 탄생하였다.

다음으로 1995년, 미국 작가 그레고리 멕과이어가 소설 <위키드>를 출간하였다. 멕과이어는 주인공 엘파바의 이름을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쓴 작가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 <위키드>를 원작으로 뮤지컬 <위키드>가 2003년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으로 탄생했다.

이후, 약 21년이 지나 뮤지컬 <위키드>와 소설 <위키드>를 바탕으로 영화 <위키드>가 2024년 탄생한 것이다.



3. 영화 <위키드>: 소설, 뮤지컬과 다른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


영화 <위키드>는 소설이나 무대예술이 구현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낸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영화라는 매체이기에 가능했던 몇몇 명장면을 꼽자면,

우선 에메랄드 시티의 알록달록한 정경, 그곳에서 펼쳐지는 정교한 군무와 합창일 것이다.

(이때 마법책을 설명해 주는 두 배우는 실제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 초연당시 엘파바와 글린다를 맡았던 뮤지컬 배우이다.)

쉬즈 대학교, 도서관에서 바퀴처럼 회전하는 거대한 원형 책장, 그것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춤과 노래도 영화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했다.


압권은, 아마도 특히 공 들였을 부분은, 엘파바가 저항할 것을 결심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바람이 들어오는 모티프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기숙사 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영화 후반부, 엘파바가 오즈의 군대를 피해 유리창을 깨고 나가 에메랄드 시티를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깨진 유리창 안으로 바람이 몰아치고, 엘파바의 검정 망토가 펄럭이고, 엘파바는 팔을 크게 휘젓는다.

"Defying Gravity" 노래와 함께 펼쳐지는 영화의 편집 호흡과 샷의 배치, 촬영 방식은 압권이다.

엘파바를 위에서 비추는 부감 샷 (날아다니는 원숭이의 시선인듯, birds eye view 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엘파바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 샷,

건물 안에서 슬로우로 점프하는 엘파바,

이어 깨진 창 밖으로 추락하다가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고,

마법 빗자루를 손에 쥐고,

다시 솟아오르는 엘파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뮤지컬 영화의 걸작이었다.


영화 <위키드> 또한, 뮤지컬 영화의 걸작 반열에 오를 것이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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