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by AppleLee

공허해요.

왜 살아야 하나요.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싶어요.

오늘 유서를 썼어요.





마주 앉은 내담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살아내는 것 자체가 참 버겁다.

그럴 때면 토해내듯 뱉어지는 한숨처럼 삶의 고단함도 함께 날아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란다.




대체 어느 누가 삶이 행복이고,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부추겼는지 그들을 찾아가 시원하게 따귀라도 한대 갈겨주고 싶다.



삶은, 산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고통이다.


부처는 말했다. 삶은 고통의 바다라고. 그러니 너 스스로 부처가 되라고.


예수는 말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아이러니하게 둘 모두 삶은 행복이라거나, 그래서 살아볼 만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리석어 행복을 포기하지 못한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 거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삶은 한결 더 수월하고 가벼워질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사람은 엄한 것에 힘쓰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살아있음을 마음껏 느끼고 누린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살아도 산 게 아닌, 죽지 못해 겨우내 숨이 붙어사는 것처럼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께 물었다.




선생님, 이 의미 없는 삶을 끝내고 싶습니다.



그런가? 허허..



웃지만 마시고, 좀 답해주시죠. 왜 살아야 할까요?



왜 살아야 하는진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런데 이건 있어.

모든 생명이 아침에 눈뜨면서 태어나고, 저녁에 눈감을 때 죽는다고 생각한다네.

하루 안에 삶과 죽음이 다 있는 것이지.

뭐 그리 죽고 싶어 하나.

어차피 오늘 저녁이면 자네는 죽을 텐데.

하루를 살게. 여러 날 살려하지 말고.

너무 애쓰며 살지 말게.









죽음으로 편안해지고 싶다는 내담자들은 지금 삶이 지옥과도 같기에 그 삶을 스스로 끝내고 싶어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다.

무슨 말을 한들 그들의 그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삶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열병과도 같은 고통의 몸부림치는 시간이 있어야만 솟아난다.

그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저 그들의 고통에 묵묵히 함께 해 줄 뿐이다.

묵묵히, 바보같이.

내 스승이 내게 해 주었던 것처럼.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나조차도 죽고 싶은 내 마음과 이따금 싸운다.


그럴 때면, 이 싸움이 언제 끝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사람살리는 일을 한다는 내 자신을 향해 환멸이 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포기한다.

끝낼 수 있다는 착각, 끝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나는 삶의 곳 곳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죽음이란 녀석과 싸우겠구나.

삶은 행복이 아니라, 전쟁이다.

끊임없는 죽음과 삶의 전쟁

내 마음은 전쟁터.


이것은 내 얘기가 아니라 심리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말이다.


결국, 삶이란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일지도.




부디, 그대의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 승전가가 울려 퍼지길.. 멀리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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