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플민트 May 15. 2023

닮은 꼴 부부 vs 정반대 부부

01. 극과 극 부부의 결혼생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을 보면 다양한 부부들이 각자의 사연을 들고 나온다. 남편이 바람을 폈고 부인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원망하는 부부, 수입을 숨기고 월급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서 가족 구성원들의 씀씀이를 못 마땅히 여기는 남편과 숨막혀 하는 아내 등등.


30년 동안 자폐장애 두 아들을 홀로 키운 아내의 사연도 가슴 아팠다. 남편은 자폐 판정을 받은 두 아들을 부끄러워 하고 감추고 외면하려 했다. 아이들이 불편함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돌보고 가르친 건 12살 연하의 아내였다.


사내 커플로 출발한 두 사람은 아내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부부의 성향은 정반대였다.  당시 21살이던 아내는 가족의 반대에도 남편 집으로 찾아가 동거를 시작했을 정도로 결단력과 추진력 있었다. 반면 남편은 어린 아내가 일방적으로 짐을 싸서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조금 있으면 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놔뒀다고 할 정도로 우유부단했다.  


아내는 남편이 남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겨 아들들의 양육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아이들 운동회조차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장애 있는 자식을 챙기고 세상의 편견을 감내하는 건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남편은 신세 한탄을 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정을 외면하고 피하려 했다. 위로가 된 건 술이었고 부부관계는 악화됐다.


출처: MBC


오은영 박사님은 두 사람의 성향이 극과 극이라고 했다. 남편은 수동적이고 위기에 처하면 회피하는 방어기제가 점점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반면 아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부동산을 활용해 재테크를 하고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자격증을 땄을 정도로 매사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적극적인 성향에 더 움츠러들어 당장의 난감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거짓말을 했다. 분노한 아내는 증거를 수집해 남편을 더욱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30년의 결혼생활은 한과 오기, 증오만 남겼다.



02. ESTJ와 INFP


우리 부부의 성향도 정반대이다.


MBTI 검사 결과 남편은 ESTJ, 나는 INFP로 알파벳 한 글자도 겹치지 않았다.  남편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조직 생활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논리가 중요했고 일을 할 때는 꼼꼼히 계획을 세워야 했다. 반면 나는 혼자 사색하는 걸 즐겼고 조직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힘들어했다. 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고 논리보다는 내 느낌과 감정을 더 우선시 했다.



성격 차이는 매사에 느껴진다.


"이건 뭐야?"

"이번에 바르셀로나 여행 가서 방문할 곳들과 이동 계획표야. "


A4용지 7장을 가득 채운 남편의 6박7일 스페인 여행 스케줄표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일자별로 가야할 곳과 이동 시간, 이동 수단까지 꼼꼼하게 적혀있다.


남편은 이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더라도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라며 정해진 시간에 일어섰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조급해하고 짜증을 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가야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일탈을 누리기 위해 힘든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온 건데 말이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도 있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스타일도 달랐다.


남편은 '1+1' 물건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필요하든 안 하든 사서 쟁였다. 매번 바뀌는 상품의 가격을 100g당 가격까지 꼼꼼히 비교해서 샀다. 할인폭이 큰 상품을 찾는 건 남편에게 어릴 적 보물찾기처럼 재미난 놀이였다. 장을 보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단 시간 장을 보는 편이었다. 유사 상품이 할인행사를 하든, 1+1 행사를 하든 개의치 않고 쓰던 것, 필요한 것만 구매했다. 내게 맞는 것, 좋아하는 게 정해지면 다른 조건이 어떻게 바뀌든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충성도가 높았다.


TV를 볼 때, 남편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볼 때가 있었다.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여성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쏟았다.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자신의 의지를 꺾인 채 살아야만 했던 30여 년이 얼마나 한스러울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불쌍해서 우는 거야?"

"불쌍한 거 아니야. 그녀가 스스로 얼마나 원망할까를 생각함 안타까워서 그래. "

"그게 불쌍한 거 아냐? "

"불쌍한 게 아니라 공감이야. 그녀의 고통이 느껴져서 그러는 건. "


남편은 공감과 불쌍함을 구별하지 못했다.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며 울 일도 많다고 여기는 듯 했다.  



03. 싸움 없이 싸우는 방법을 터득하다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조차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당장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 감정이 상한 이상 대화보다 내 감정부터 추스르고 싶은 나는 상극이었다. 남편은 내가 문제 해결을 피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남편이 내게 상처를 주고 굴복시키러 한다고 여겼다. 결국 남편은 피하는 나를 강제로 잡으려 했고 나는 벗어나고자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반복되는 싸움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고 깊은 상처가 되려 했다.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야 했다.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자존심 싸움에서 한 발 접고 먼저 대화를 요청한 이는 남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참 고맙다.(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그 때는 집착했다)


"싸울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신이 좀 알려줘"

"난 안 싸웠으면 좋겠어. 그냥 대화로 풀 수 있잖아. "


내 행동 중 불만이 있거나 못 마땅해하는 부분이 보이면 쌓아두었다가 갑자기 소리 지르지 말고 그 때 그 때 "혹시 불편하거나 내키지 않는 게 있냐?"고 물어봐달라고 했다. 남편은 자신이 불만을 얘기하면 귀와 입을 닫지 말고 들어달라고 했다.


싸우는 방식을 바꿔갔다. 남편은 소리를 지르지 않고 톤을 낮춰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다. 나는 감정을 추스리면서 남편의 말을 들으려고 애썼다. 막상 들어보니 남편의 주장도 이유가 있었고 그렇게 어려운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싸움은 진지한 대화가 됐고 나중에는 일상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갔다. 싸울 일이 거의 없어졌고 싸우게 되더라도 투닥거리는 정도에서 금방 끝났다.


대화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반영하면서 일상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계획대로만 움직이던 남편은 즉흥적인 여행을 통해 깜짝 즐거움과 예상치 못한 짜릿함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경험을 쌓는 것이지, 관광지 도장깨기가 아니라는데 동의했다.


마트에서 시간이 걸려도 저렴한 걸 찾는 게 남편에게는 보물찾기처럼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난 맘을 바꿨다. 한숨을 쉬며 멍하니 서있기 보다, 함께 더 저렴한 물건을 찾거나 필요한 다른 것들은 더 없는지 구경하며 기다렸다. 1+1 행사를 통해 접한 새로운 제품이 기존에 쓰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다.


조직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을 피하려고만 하던 나는 남편의 조언으로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실적을 낸 일은 내가 한 거라고 생색을 내기도 했다. 억울하고 불편한 일은 논리적인 근거를 대며 따지기도 하고 물러나지 않기도 했다. 상사가 기분 좋을 만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상사가 내가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원하는 건지 파악해보기도 했다.



04. 닮은 꼴 부부 vs 정반대 부부


결혼할 때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좋은 유사성과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 보완이 되는 보완성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 라는 건 늘 화두다.  


많은 연구에서 성격 유형이 비슷하면 의사 소통도 잘 되고 결혼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써 맞추거나 이해하지 않아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성향이 비슷한 커플이 더 잘 산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심리학자 피인스(Ayala Malach Pines)는 상대와의 성격 유사성은 자신의 성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도움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근거를 얻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결혼정보회사들은 뇌파 측정 등을 통한 과학적 매칭 시스템을 도입해 최대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성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금방 공감대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고 광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처럼 정반대 성향의 사람에게 끌리는 이들이 있다. 나에게 부족한 점, 다른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외향성-내향성 분류를 처음 도입한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은 성향이 다른 사람한테 끌리는 이유가 상대로부터 배우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했다.


이럴 때는 서로 이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마찰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차이를 받아들이고 소통 방법을 찾으면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로부터는 듣지 못하는 생각과 조언 등을 얻을 수 있다. 자칫 한 쪽으로 편향될 수 있는 생각의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틀렸다'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게 된다. 정반합을 찾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성향인 배우자와의 결혼에서 맹점이 있기도 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비슷한지가 의문이다. 처음에는 비슷했던 부분이 막상 지내보니 안 맞거나 다른 경우도 많이 생긴다. 쌍둥이도 정작 자신들은 서로 다르다고 하듯이 세밀한 부분에서는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든,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든 소통 방법을 찾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기 위해 부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결론내려지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둘은 좋지만 셋은 부담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