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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향에 머문 봄

다음 봄을 준비하며

by 달글달글


이상준 씨(가명)를 만난 건 지난 3월이다.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꽃망울이 터지고, 새싹이 움틀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오픈한 지 1년도 채 안 된 가게를 접기로 마음먹은 상준 씨 얼굴에는 봄을 맞는 설렘 대신 얼어붙은 고단함이 스며 있었다. 상준 씨의 가게에만 매일 겨울이 머무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 사무실 직원들과 공사장 인부들이 드물게 오가지만, 그 외 시간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점심 메뉴로 카레가 딱이다"라고 말하던 부동산 사장은 계약이 끝나자마자 다른 신도시로 떠났다. 창업 비용만 지불하면 창업 컨설팅부터 교육, 마케팅까지 맡아주겠다던 프랜차이즈 본사는 막상 어려움을 토로하자 매번 뒷짐만 졌다.

마흔이 되며 인생의 전환점을 꿈꿨던 창업. 그러나 상준 씨는 오히려 발목을 붙잡히고 있었다. 공사 현장이 곳곳에 남은 이 신도시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지만, 그의 가게만은 좀처럼 발길이 뜸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달콤하고 향긋한 카레 향 속에서, 상준 씨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Q. 창업 전에는 회사에 다니셨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상자 만드는 회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했어요. 택배 포장용 상자부터, 전자제품 포장까지 상자를 쓰는 업체는 다 돌아다녔어요. 납기일에 맞춰서 상자를 생산해야 하는데 일정이 틀어지면 욕도 많이 먹었죠. 기존 거래처가 있는 영업처에 단가를 억지로 낮춰서 영업을 하기도 했고요. 전국을 다 돌아다녔어요.


Q. 상자는 우리 생활에서 정말 흔하게 쓰는 물건이잖아요. 쓰임이 많은 만큼 경쟁업체도 많을 것 같고요. 영업하시기가 정말 힘드셨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그럼 그 일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신 건가요?

A. 스물두 살에 군 제대하고 종이 밥을 처음 먹었어요. 영업을 그때 바로 시작한 건 아니고, 생산직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이나 벌려고 한 거였죠. 작은 아버지가 하는 회사였는데, 친척이 하는 회사이니 편의를 좀 봐줄지 알고 겁도 없이 덤빈 거예요(웃음). 하지만 현장은 달라도 한참 다르더라고요. 사장 조카고 뭐고 일이 바쁘니 어리바리하게 일했다가는 바로 잘리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시간도 포기하고 일을 배웠어요. 일한 만큼 돈을 꼬박꼬박 챙겨주니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그때 제 대학 전공이 태권도였는데 졸업하고 전공도 못 살릴 것 같고 해서 바로 자퇴를 하고 상자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아, 정말 오래전 일이 되었네요.






Q. 그럼 생산직 일을 하시다가 영업직으로 건너오게 되신 거네요? 그 사이에 일이 많으셨을 것 같고요.

A. 나이도 어리고, 영업에 재능이 있어 보였나 봐요. 그때쯤 회사도 꽤 잘 나가던 때였고요. 공장 돌아가는 상황도 알고, 생산직으로 계속 붙들고 있기엔 아까웠는지 영업팀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갔죠(웃음). 가서 한 동안 몇 년은 일도 재밌고, 돈도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피곤한지 모르고 일했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건 없잖아요. 경쟁 업체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다니던 회사 입지가 점점 좁아지더라고요. 해외에 짓기로 했던 공장도 사업이 엎어지고.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영업사원들만 닦달하더라고요. 더 이상 뚫을 회사도 없었어요. 회사 자금 사정도 안 좋아지니 영업 수당 같은 것도 크게 기대할 게 없었고요. 일도 힘만 들고 더 이상 배워나갈 게 없으니 출근하는 게 곤욕이더라고요. 그래도 버텼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고요.




Q. 아무래도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일을 정리하시기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싱글일 때의 고민과 차원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오래 다닌 직장을 관두고 창업을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이 어땠을까요?

A.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었죠. 아이들 교육비, 대출 이자, 노후 준비까지 돈 들어갈 일 투성이니까요. 월급은 정해져 있고, 나이만 먹으니 앞 날이 막막했어요. 윗사람 눈치 보며 굽신거리기도 벅찼고요. 젊을 때야 좀 더 노력하면 되겠지, 잠 좀 줄이면 되겠지 싶었는데 몸이 한 번 꺾이기 시작하니까 나아지지가 않았어요. 운전도 오래 해야 하고, 야근도 매일 하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늦기 전에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가게를 차려보자 싶었습니다. 준비를 안 한 것도 아니에요. 여기저기 프랜차이즈 창업 설명회 다니느라 발품도 꽤 팔았으니까요.



tomoyo-s-PScxBQTST84-unsplash (1).jpg 이미지 출처 - unsplash


Q. 창업 준비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실패하면 일어서기 힘들다는 생각도 항상 따라다녔을 것 같고요. '창업은 준비가 반이다'라는 말처럼 여러모로 준비를 철저히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도 마음이 참 무겁고요.

A. 준비하느라 고생한 건 말도 못 해요. 와이프한테 참 미안하죠. 사업계획서까지 준비해서 설득했는데 가게를 접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준비만 일 년 가까이했는데, 가게 운영은 일 년도 못 채웠으니 와이프 볼 면목이 없어요. 인테리어부터 마케팅까지 정말 신경 많이 썼거든요. 다른 것보다 인테리어 하느라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가서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기가 너무 아까워요. 피땀 흘려 번 돈이니까요.



tim-mossholder-4TsDHnlUfqc-unsplash.jpg 이미지 출처 - unsplash


Q. 그럼 몇 달 더 운영해 보자 하는 고민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도 가게 인테리어 하나하나 신경 쓰신 게 눈으로 보여 안타깝습니다. 가게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당연히 임대료죠. 회사를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상인들이 임대료 때문에 고통받는지 몰랐습니다. 소상공인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다 빚이에요. 혼자 가게를 운영하면서 인건비까지 줄였지만 제 몸만 상하고 다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입니다. 초반에 가게 오픈하면서 사람들이 좀 붐볐는데, 그때 모아둔 돈도 다 임대료로 나갔어요. 가게를 운영하면 운영할수록 계속 마이너스입니다. 제 몫으로 가져가는 월급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하고요. 차라리 회사 다니며 따박따박 월급 받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게 운영하기 전에 주변 지인들이 말리기도 했었는데, 경기가 이렇게 안 좋아질지 몰랐어요. 가게는 목이 좋아야 한다고 해서 1층에 있는 상가로 계약했는데 1층이라 임대료만 비싸고, 사람들 발길이 이렇게까지 뜸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해도 남는 것도 거의 없고요.




Q. 앞으로가 더 걱정되실 것 같은데요. 가게는 정리하면 되지만, 이후에 살아갈 일도 너무 중요하잖아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묻기에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A. 사실 가족들만 아니면 다 내려놓고 싶어요. 모아놓은 돈도 없고요. 가게 하면서 퇴직금까지 쏟아부어서 이제 믿을 건 제 몸뚱이 하나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들이 이제 좀 커서 와이프도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희망이랄까요? 와이프에게는 정말 미안해서 얼굴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이니 기운을 내보려고요. 가게 정리되는 대로 아는 형님이 하는 일을 배워볼 생각입니다. 용접 일이라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이긴 한데, 기술만 배워놓으면 돈이 좀 된다고 해서 배워보려고요. 사실 이 나이에 어디 이직하기도 쉽지 않고요. 오라는 데 있으면 무조건 가려고요. 창업의 쓴 맛을 봤으니 이제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언제 어디서든 성실함이 가장 큰 무기인 것 같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그 성실함이 빛을 내지 못한 것 같고요. 무엇이든 잘 해내시리란 확신이 듭니다. 다음에 하실 일은 그동안의 쓴 맛을 잊을 만큼 원하는 대로 다 이루시길 함께 바라겠습니다.

A. 네, 오늘 인터뷰로 가게에 대한 미련도 함께 정리되는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새로 오픈을 준비하는 가게를 보면 며칠 만에 뚝딱, 가게를 여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간판 위에 수많은 고민과 시간, 한 가정의 생계가 얹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게가 문을 열고 닫는다. 오픈한 지 고작 몇 달 안 된 가게가 문을 닫는 일은 이제 흔해 보인다.

그 과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준비가 부족해서, 음식의 맛이 없어서, 불친절해서 가게가 망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늘 만난 상준 씨는 준비가 부족하지도 음식 맛이 없거나 불친절하지도 않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운이 없었다,라는 말 밖에는 찾을 말이 없었다.

인터뷰를 끝마친 상준 씨는 이제야 폐업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가게 곳곳을 둘러보며 씁쓸해하면서도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듯했다.

다음 해에 오는 봄에는 상준 씨가 화사한 꽃의 빛깔을 온전히 누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 본 인터뷰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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