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너무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을 뒤엉켜있어 생각과 마음을 비우는 명상은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비워내기 위해 애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대신 채운다면 좋은 생각들로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올해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20대 중반 치열하게 하루종일 책을 읽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책이 양서인지 잘 몰랐고,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문학들, 상을 받았던 문학작품이나 베스트셀러 등을
읽어왔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여기저기서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독서법과 종류를 알기란 어려웠습니다.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되길 바란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다행히 책을 옆에 두고 사는 편이었는데, 올해 기적처럼 나에게 책들이 왔습니다.
한 해 동안, 이렇게 단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첫 시작은 경제였습니다.
가벼운 소설 위주의 책과 에세이를 읽던 제가 관심도 없던 경제 분야에 기웃거렸던 것은 올해 시작한 사업과 연결됩니다.
근로자로만 존재했던 내가 사업주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아는 것이었고 알기 위해 관련 분야에 영상을 접하고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전히 현실을 바탕으로, 사업에 뛰어든 이상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시작으로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자본주의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경제적 자유'가 키워드로 자리잡고 '주식', '부동산', '자산', '자본'
근로소득보다 자본으로 돈을 벌고 증식하는 방법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때마침 코로나로 시장에 돈이 풀리고 물가상승이 심해지자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했고
중국과의 견제, 우쿠라이나 전쟁 사태 등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이 변화한다는 것을 거시적으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는 내가 알던 것과는 정말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이래서 세계화 였구나. 그리고 세계화의 시작과 멈춤, 전 세계가 기업과 나라를 중심으로 공장 배치, 인력 수급, 수출과 수입 무역 등 어떻게 연결되어 흘러가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현실에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회적 이슈와 당연한 이야기들일지 몰라도 이 사실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결국 '경제'를 시작으로 '사회', '세계화', '정치', '전쟁'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역시 '지리'와 크게 관계되어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는 관심분야를 각본 없는 드라마인 '역사'로 연결하게 하였습니다.
'사회'를 들여다보니 '경제'를 빼놓을 수 없고 '경제' 속에는 기업, 경영, 경영 속에는 핵심 '마케팅', 사람들의 소비와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심리학'이 모두 다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연결지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알고보니 읽고 있던 모든 책들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넛지 라는 책을 통해 '행동경제학' 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심리, 그것을 마케팅에 이용하여 경영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 자유의지 보다는 이러한 환경설정에 의한 것들이었다는 것,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연결해주는 알고리즘, AI 기술의 발달, 곧 '과학'과도 연결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분야도 모두 관심 밖이었지만 '과학' 은 정말 관심 없는 분야였음에도 과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학문인지 몰랐다는 생각에 미안함마저 들었습니다.
'과학'을 옛날에는 '자연철학'으로 불렀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생각보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재미없고 융통성 없는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의 원리와 이치를 탐구한다는 것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아름다운 학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은 이 세상이 탄생하게 된 원리, 인간과 자연, 동 식물 등이 존재하는 원리, 종의 탄생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 이는 자연스럽게 '인류학' 나아가 '우주'와 연결되었고
결국 이것은 '종교'와도 연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고 돌고 돌아 결국 모든 학문은 인간의 삶, 본질, 세상의 이치, 자연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모두 귀결된다는 점에서 연결될 수 밖에 없고
이과와 문과를 나누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었습니다.
나는 완전 '인문학' 쪽이라 '문과 성향'라고 생각했는데 과학도 생각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에는 정답이 없어서 인문학적인 관점으로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이과는 딱 떨어진 정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틀린 말도 아니면서, 과학자들 수학자들이 계속 자연에 질문을 던지고 이론이 변해왔지만 그 안에서
오차 없이 정확한 것을 추구했을 뿐, 이 또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고대시대에는 철학자가 과학자이자 수학자였고 모든 학문을 다 섭렵했다는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모든 학문이 결국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에서
결국 본질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명이 발달되기 이전의 문학들, 서적들이 더 진리를 담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편리함이 없던 시대에 오직 생각으로 모든 것을 연결했던 그들이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지식은 변할 수 있어도 그 너머의 진리와 지혜는 변하지 않기에 고전이 여전히(더욱) 귀하게 여겨지나 봅니다.
예전에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책들을 구할 수 있는데,
마음 먹으면 더 알 수 있는데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저런 것을 알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들을 하고 주변을 돌보고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면 됩니다.
결국 돌고 돌아서 깨닫게 되는 건 그것이더라구요.
그런데 저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냥, 이 잘 안됩니다.
어떻게든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되고 허무함도 쉽게 느낍니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해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하는 것들,
지향해야 하는 방향들을 바라보고
남들이 원래 그냥 하고 있던 '그것'들을 하게 됩니다.
'그것' 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들이었죠.
내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해 나가는 것,
노동의 가치를 아는 것,
주변을 돌아보고 나와 타인에게 사랑과 감사를 느끼는 것.
+)
그리고 내 존재와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신은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였나.
내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무의식을 어떻게 조절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
기왕 생각을 해야 하는 존재라면
보다 좋은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