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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Apr 05. 2017

운전의 즐거움, 그리고 자율주행

자율주행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는 운전이 여전히 즐거울 것이다.

지난해 4월, 토요타(Toyota)는 자율주행차 컨셉으로 '가디언 엔젤(Guardian Angel)'을 발표했다. 자율주행이 운전을 다 한다는 'Chauffer' 컨셉이 아닌, 운전자와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을 같이 하는 'Parallel' 컨셉이다. 즉, 가디언 엔젤 컨셉은 운전자가 위험할 때 자율주행 기술이 개입하여 주행 안전을 보장하면서 평상시에는 운전의 즐거움을 보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타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토요타의 접근은 보수적인 어프로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운전의 즐거움을 진정 존중한다는 점은 분명한 차별점이다. '자율주행' 하면 보통 완전한 자동화를 떠올리기 쉬운데, 토요타는 이를 뒤집은 것이다. 토요타가 제시한 시나리오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신나게 운전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자율주행 시스템이 계속해서 작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런 토요타의 시나리오는 안전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 없이 즐겁게 운전을 하는 경험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Toyota, Guardian Angel Concept


포르쉐 또한 자율주행차 기술을 본격 도입에 대해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사 출처 참고). Porsche CEO 올리버 블룸(Oliver Blume)은 "핸드폰은 도로 위가 아닌, 주머니에나 속하는 것"이라고 하며 자율주행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선별적으로 'Porsche gene'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 포르쉐 911 R을 살펴보면 레이싱의 짜릿함과 즐거움을 강조한 포르쉐의 철학을 볼 수 있다. 당당한 수동 기어박스에, 오직 드라이빙 자체에만 포커싱 된 피쳐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번쩍번쩍한 자율주행 컨셉 카들과 대비된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내부 인테리어는 상당히 소박하고 아날로그한데,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원래 사람들이 알던 순수한 머신(machine)의 결정체임을 당당하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Porsche 911 R Interior Design


오늘 운전을 즐기고 있는 운전자라면 한 번쯤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차를 버리고 과연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를 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동 운전이 전혀 불가능한 자율주행차를 타고 싶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통제 가능성(Controllability)'이다.   


Controllability!

'Machine'을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것의 즐거움. 포르쉐 911 R은 수동 기어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갈망한다. 나 스스로 기어를 바꾸고 달리는 쾌감이 자동 기어일 때 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인류는 몇만 년 전부터 말을 타고 다녔다. 말을 몰고 달리는 쾌감은 어떠했던가. 말타기는 문화권을 막론하고 꼭 갖춰야 할 덕목이었으며,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말을 타던 인류는 자동차를 타게 되었고, 말을 타던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운전을 즐거워한다. 말과 상호작용하고 말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동차로 넘어온 것이다. 시동을 걸 때, 가속할 때 부르릉 하고 울리는 배기음은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쾌감이다. 내가 직접 제어해서 도로 위를 질주할 때 뇌가 분비하는 아드레날린은 오래전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릴 때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 분명하다.


질주의 쾌감이 상상되는 그림

 

자율주행 기술 자체는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을 만큼 뿌리가 깊고, 미래의 먹거리라고들 하지만, 완전 자율주행 (레벨 5) 시나리오는 운전의 본연적 즐거움을 위협한다. 삶의 중요한 즐거움인 '직접 운전하는 경험'을 도려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 자동화가 더 안전하기 때문에 사람은 운전을 하면 안 된다'라는 논리는 그만큼 강력하다. 그런 의미에서 토요타의 가디언 엔젤은 가히 설득력 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랑하는 원래 이유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차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의 본질, 브랜드 가치와 외형 인테리어... 등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며, 실제 구매에 있어서는 브랜드 파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구매 후의 경험은 어떤가. 결국 운전자의 삶에 남는 것은 차 그 자체가 아닌, 차를 탔던 시간들 안에서 즐거웠던 순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차량 제조사들은 2020년 자율주행 스타트 시점이 오기 전, 'Driving Fun'의 가치를 자율주행 컨셉에 어떻게 녹여낼지를 각자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벤츠는 'Luxury in Motion' 컨셉에서 'Sporting Mode'를 넣는 등 기존 차량들에 있는 스포츠 모드를 자율주행 컨셉에서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많은 차량 제조사들이 차량 내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키우며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강화하는 디자인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계에서는 더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율주행에서만 가능한 AR 윈드쉴드(windshield) 게임이나 SNS 기능이 그 예이다. Continental 사도 실제로 AR 게임 기술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그만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자율주행 환경에서 필수적인 고려 대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윈드쉴드 AR 게이미피케이션 컨셉


위의 그림은 Schroeter et al.의 연구에서 가져온 윈드쉴드 AR을 활용한 게이미피케이션 컨셉이다. 주행 환경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지루함(boredom)'을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물론 실제 차량에 들어가려면 수많은 정제 과정과 테스트를 거쳐야 하고, 운전자 방해를 유발하여 적용이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 모드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 차량에서의 운전 경험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어떤 신남과 즐거움이 운전자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http://www.fluentu.com/german/blog/learn-german-in-the-car/

Schroeter, R., Oxtoby, J., & Johnson, D. (2014, September). AR and gamification concepts to reduce driver boredom and risk taking behaviours. In Proceedings of the 6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utomotive User Interfaces and Interactive Vehicular Applications (pp. 1-8). A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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