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Dec 03. 2022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중에서 책과 관련된 사항이라면 그 의심이 집요한 편이다. 원래 의심이라는 것도 자기가 좀 아는 분야에서나 생기는 법이니까. 내게 비트코인이나, 탱크의 성능을 두고 누군가 그럴듯한 가설을 주장한다면? 가만히 듣고는 있겠지만 일분을 넘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거나,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할 것이다. 저 죄송하지만, 사람을 잘 못 골랐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그렇지만 분야가 책이라면? 생각의 톤이 확 올라간다. 뭐라고? 그 책이 베스트셀라라고? 도대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언적인 제목이 인스타에 막 등장했을 때는 그러려니 하며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방에 온 사람들이 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우리 책방은 읽고 좋았던 책을 판매한다는 전략을 고수하지만, 고객의 요구가 있으면 주문 배달도 해 드리는 나름 친절한 책방이다. 주문이 이어지자, 뭐지? 내가 잘 모르는 세계가 있나?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책을 펼쳤는데, 점차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구미가 당겼다. 사실, 첫 관문은 번역투의 문장에 유난히 까다로운 내 입맛 통과가 관건. 이 책은 우물우물 씹어 삼킬만했다는 얘기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단순하다. 저자를 충격에 빠트린 두 남자-아버지와 곱슬머리 남자-의 말을 화두로 삼아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적은 글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들로부터 야기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조든이라는 물고기 학자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조든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킨 입지전적 인물이기 때문. 그의 행적과 업적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가진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온갖 논문과 신문 기사와 후대의 연구물까지 샅샅이 파고든다. 초기 생물학의 분류가 어떻게 탄생되는지 알아가는 과정만으로 한동안 흥미진진하다. 때로 논문 초록 정도의 건조한 기술도 있는데,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의 글빨 덕분에 읽을 만했다. 주석도 샅샅이, 밑줄까지 그으며 바짝 몰입했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옛 명언이 역시 맞는 말인가, 탄복하려는데, 어디선가 조금씩 역한 냄새가 난다. 아니 그럼 여기가 거기인가? 반전 말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여러 번 거론해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그 한 마디. '이 책에는 두 개의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찾으십시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의 팔 할이 이 말 덕분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판매전략으로 나쁘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공신이 반전에 숨어 있다고 하는 것은 진짜 책의 매력을 너무 폄하하는 발언이다. 저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실에 접근하는 '그 구체적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문제를 가졌으나 잘 극복한 인물로 조던을 찾아낸 점, 그 인물을 '철저히' 조사해서 단순한 영웅 서사로 귀결시키지 않은 점, 마침내 구체적 공과 사를 '제대로' 부각해 세상에 알리고, 그 후속조치까지 관철시킨 점에 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저자의 문제가 개인에게 있기보다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것까지.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휘몰이 창법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화두를 던지고, 화두를 해결할 인물을 찾아내고, 그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파헤치고, 그의 과오가 미친 파장을 확인하는 과정이 <추적 60분>에 버금간다. 만약 처음부터 조던이 어떤 인물인 줄 알았다면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갈 수 있었을까? 시작은 내 손톱 밑의 가시에 집중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가를 서성였으리라.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며 얻어낸 결론. 사욕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거나, 근거 없는 논리로 사회를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니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오래 칭송받았던 과학자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늦었지만 해줘야 한다고. 조던의 파멸은 전시대가 저지른 실수를 후대가 정산한 것이다.
이번 봄 책방 독서모임에서 이 책은 정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열띤 토론을 벌였고 상반기 최고의 도서로 선정되었다. 주로 한글 저자의 책을 판매하고, 독서모임을 하는 책방에서 말이다. 좀 씁쓸했다고 할까? 한국에서는 왜 출간을 목적으로 제대로 기획된 책이 드물까? 이미 발표된 칼럼을 엮은 대부분의 책은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과학과 심리학과 철학과 사회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며, 해당 분야를 심도 있게 파고든다. 전문서가 아닌데도 깊이 있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덕분에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는 평이 많았다.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저자의 필력과 설득하는 용기는 부럽고. 책 한 권의 영향으로 과학계가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하다니.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
베스트셀러 띄지를 두른 유명한 책이고, 서촌그책방 독서모임 선정도서라니 방문객이 자주 묻는다. 정말 책방지기도 좋았느냐고. 성심껏 장점을 말하고, 그냥 팔면 될 일을, 무슨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자꾸 의문이 생기니 어쩌란 말인지. 만약 번역서 아닌 한글 저자의 책이라면? 이런 발언의 기회나 얻을 수 있을지? 더구나 여성 저자가? 출간은 더 언감생심이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기획된 책을 읽게 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가 좀 더 나은 세상을 기획하기 바라는 염원까지 담아, 은근슬쩍 무거운 책무 떠넘기기 작전인데, 설마 모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