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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얌얌 Feb 19. 2024

영재가 좋아서 회사 때려치우고 대학원 간 썰2

우리 애도 Hoxy 영재? 사실은 슬픈 아이들

나는 영재를 좋아한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과학영재도, 회사에서 만난 한국과학영재학교 아이들도, 서울대영재교육원에서 만난 아이들도 모두.

좋아하면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썩 괜찮은 회사를 때려치웠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연구를 할 만큼 영재교육 분야의 석학이 되리라는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생이 잘못하면 가는 곳이라는 대학원까지 가서 내 돈과 젊음을 쓸 만큼 영재를 좋아했다. 

참 대책 없이 재밌어 보이는 거, 흥미 돋는 거 찾겠다고 나이 먹은 어른이 그렇게 했다.


나는 원체 빛나는 것을 좋아하고 나를 놀랍고 흥미롭게 만드는 존재들을 좋아한다.

영재에게 더욱 빠진 이유는 원석같이 빛나는 아이들이면서도 보통의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움이 느껴져서 그렇다. 아이들에게서 어른스러움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에게 마음이 아픈 일들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영재는 빠르게 습득하는 높은 지능과 그 번뜩이는 창의력이나 과제에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고드는 그 끈기나 집착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모두 눈부시지만

동시에 짠하다.


영재는 행복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땅의 소중한 영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평범하지 않은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그 무게를 다른 어른들이 나누어 들어주면 좋겠다.

아이들의 재능을 뽑아 먹고 그걸로 뭔가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잠재력을 실현하는 걸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면서 그렇게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럴 권리가 있는 아이들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1. 슬픈 영재



내가 영재를 연구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듣는 말이 두 개 있다.

"영재는 싸가지 없지 않아?"

그리고 "영재가 진짜 있어?"


묻는 말에 답부터 빨리 한다면,


"영재는 싸가지 없지?"

"인간은 싸가지 없지?"


"영재가 진짜 있어?"

= YES

"영재는 싸가지 없지?"


영재에 대해 흔히 가지는 오해가 '영재는 싸가지가 없다', '못됐다', '잘난 척한다' 등이다.

영재는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선 사람이다.

영재도 착한 애들, 되바라진 애들, 소심한 애들 그냥 애들이다.

사람도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다 섞여 있듯이 영재도 똑같다.


영재는 이렇다~ 저렇다~ 하더라도 영재도 사람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격도 다 다르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영재들이 가진 특성들을 설명하다 보면

우리 주변의 영재들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영재는 영재 이기 이전에 어린아이들이다.

정말 많은 어른들과 또래 아이들이 영재의 똑똑하고 높은 지능 때문에 영재를 그 나이의 어린아이로 보기보다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바라본다. 하지만 영재는 물리적으로 나이가 어린아이들이다.


지능이 높지만 아직 어린 아이다.


철이 없을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머리가 좋기 때문에 지능적인 사고를 칠 수도 있지만 여린 어린 아이다.

그렇게 영재도 재능이 뛰어날 뿐, 어린아이로 바라봐줘야 한다.


따돌림당하는 영재

영재들이 가진 특성 중에 자기가 아는 걸 자랑하고 싶어 하거나,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이 지루하거나 코멘트를 달고 싶거나

친구들한테 뭔가 다른 걸 알려주고 싶거나,

영재들은 수업시간에 말이 많아질 수 있다.

아는 게 많고, 같은 정보를 받아들여도 머릿속에선 더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하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선 곤혹스럽고 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끌어야 하는 수업에서 영재들의 참견은 부담스러운 수업방해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쟤는 왜 저렇게 맨날 잘난척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선생님에게도 찍히고 친구들에게도 찍히고.

학교 생활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학창시절은 부모로부터 떨어져나와 아이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시기다.

엄마아빠보다 또래 친구들이 더 무섭기도 하다.

엄마아빠로 구성되어 있던 아이들의 세상에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이라는 거대한 존재들이 새롭게 자리를 넓혀가는 때이다.


이건 영재아이가 평범한 학교에서 겪는 문제는 아니지만 영재들 속의 영재가 겪는 어려움도 똑같다 ㅠ


그래서 영재들은 어느 순간부터 영재라는 티를 안 내기 시작한다.

영재라고 뛰어난 걸 자랑하기보다는 친구들 속에 어울려서 평범한 아이로 지내는 것이 더 즐겁고 평안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이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숨김효과(hiding effect)'라고 미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역시 어디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예민한 아이들


영재들은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감정의 파도를 크게 느낀다.


영재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드디어 나랑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를 만났어요!!!(수학덕후)'와 같은 세상 해맑고 투명한 너드같이 반응하기도 하지만

귀신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아놓고 어찌 됐든 순위를 가르는 시험을 보게 되면 크게 좌절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목표가 좌절되고 자신의 노력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절망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한 번도 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이 넘어져도 끝없이 일어나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영재들은 예민하다.

그 한 번의 좌절과 넘어짐에 큰 상처를 받아서 영재학교를 자퇴하기도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등수에 큰 충격을 받아서 공부를 포기하는 일도 왕왕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서는 '나약한 녀석들, 쯧쯧, 그냥 도태되거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될 대로 되라고 놓아버리면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무튼, 똑똑해서 심지도 모두가 굳고 단단할 것 같지만 영재들 중에 예민보스 개복치가 많다.

그래서 일반 학교에서 친구들과 갈등이 일어나거나

선생님에게 밉보여서 학교 생활이 힘들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성적도 바닥을 향해가는 '미성취 영재'로 남을 수도 있다.




2. Hoxy 우리 아이도 영재?


작년 여름 4살 짜리 어린 여자 아이를 돌보는 단기 영어과외를 한 적이 있다.

언주역 근처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였다.

아이 어머니가 "우리 애는 언어 발달이 빠르고, 영재끼가 있어서요~

그리고 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 다 알아듣는데 요즘 한국어에 재미를 붙였어요.

그러니까 영어로만 수업해 주시고 절대 한국어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궁금했다.

'오호- 영재라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영재가 아니었다.

아이는 간단한 인사말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영어로 말을 걸고 교재를 보여주는 나에게 영어로 얘기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짜증 내다 못해 색연필을 집어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를 나무라는 대신 나에게 

"몇 연차냐, 애들 몇 명 가르쳐봤냐. 네가 능력이 없고 애를 다룰 줄 몰라서 그런 거 아니냐. 선생이 나쁘다."라고 했다.


이론과 실제 현장 경험을 미루어 보아 그 아이는 영재가 아닐 확률이 상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 어머님 당신네 아이는 영재가~ 아닙니다!"라고 단박에 잘라서 말하지 않았다.


영재를 단 번에 알아보고 분류해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영재를 그렇게 빠르고 간편하게 판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요즘은 오랜 기간에 걸쳐 영재를 관찰하고, 다양한 전문가가 영재를 판별하기 위한 도구를 개발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영재후보생들을 먼저 뽑아서 가르쳐보고 그 뒤에 진짜 영재를 가려내기 위한 '선교육 후선발'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자세한 영재 선발 방법 등은 이전 글 참조)

https://brunch.co.kr/@appleyumyum/5


영재교육계의 대부 렌쥴리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영재는 A. 생득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 아이들과 

B. 후천적으로 그 잠재력이 개발되는 아이들

2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2가지 종류의 영재 모두 어느 정도 타고나는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아이들이 '영재성을 숨기는' 행동이나,

영재성을 판별하기 어려운 소심한 성격이나

부모나 주변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서 소외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 영재성을 계발할 기회가 없었다거나 등등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의 영재성이 단박에 발견되지 못할 수 있다.



결론은,

우리 아이가 영재일지 아닐지 지금은 당장 알 수 없으나!


"어머낫 우리 아이는 영재라니까요?"

라고 하기엔 영재는 생각보다 높은(상위 15% 이상, 어떤 부분에선 상위 2% 이상)

지능과 학습 과제에 대한 집착과 창의성과 같은 '영재성'! 을 보여야 하고


"아이고 우리 애가 영재일리가요~"

하기엔 여러 가지 영재성의 '숨김 기능' 때문에 '미성취 영재'로 그 영재성이 묻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애정을 가지고 매의 눈으로 놓치지 말자.

우리의 영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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