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May 04. 2019

혈액형 소리를 들을 때의 속내

쓸모 있는 말에 대한 강박

무의미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아주 내밀한 사적인 공간에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브런치 같은. 남의 인스타나 트위터를 보고 그러는 건 전혀 아니다. 나는 남의 사생활 구경하는 거 되게 좋아한다. 그냥 나한테만 그런다. 야 이걸 굳이.. 굳이 할 필요가 있는 말이야? 거르는 경우가 많다.  


 가끔 인스타그램에 뭔가를 올리려다가도 “굳이..?”라는 마음이 들어 내린 적이 많다. 인스타 스토리에 쌀국수 허구언날 쳐올리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쌀국수를 이런 빈도로 먹었구나 기억하기 위해 학술적인 용도로 올린다. 내가 과거 흑역사로 많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 걸까? 남을 의식하는 경우 이런 성향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내 인스타 계정에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몰래 다른 계정을 판다.


관계에 있어서도 그런 편인데, 쓸모없는 말이 부유하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타입이다. 어디선가 그게 인싸와 아싸의 차이라고 본 것 같다. (인싸와 아싸의 구분도 이제 너무 지겹고 의미도 없지만 걍 빠른 이해를 위한 예시로 든다) 나 같은 아싸의 경우, 현실에서 혈액형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사람을 만나면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네'하고 어이가 없어 조용히 할 말을 잃는데, 인싸는 알면서도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소재로 혈액형 이야기를 이용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도대체 쓸모란 어디에서 오는가. 관계에서 말을 트고 시작하는 데는 나의 침묵보다 혈액형이 쓸모 있지 않겠는가. 예전에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나오곤 했던, ‘2의 2승, e의 e승’ 사투리 인토네이션의 주제가 나올 때마다 나는 항상 “아 이 얘기는 뭔 몇 년째냐~~~”하고 혼자 꿀 먹은 벙어리척을 했는데, 사실 나야말로 그 대화에서 도태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냔 말이야…. 


무리에서 도태되는 사과집..


게다가 연애라는 것은 쓸모없는 말들과 행동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쓸모없는 것을 참지 못하고 철벽을 치니 어쩌면 삶에서 가장 쓸모 있다는 사랑과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