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Jul 30. 2023

미련의 거품


1. 회사에 지금은 그만둔 환경 미화원 한 분이 있었다. 여성이 많은 우리 팀 팀원들과 특히 친했다.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수다꽃이 피었다. 텀블러를 씻는 프리랜서 AD들과도, 배가 산만해진 선배와도. 출산을 앞두고 선배가 미처 여사님에게 말 못 하고 육아휴직을 하자, 여사님이 아쉽다며 우리한테 대신 애기옷 선물을 전해줄 정도였다. 


2. 어떤 봄날엔 꽃이 너무 이쁘다며, 화장실 한편에 삼다수 병을 화병 삼아 철쭉 꽃을 꽂아두기도 했다. 나는 그걸 보고 회사 앞 꽃집에서 아주 예쁜 색의 분홍색 장미를 사서 철쭉 옆에 꽂아두었다. 여사님은 장미를 정말 좋아했다. 그 장미는 화장실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여사님은 작년쯤 일을 그만두었다.


3. 한두 달 전에 여사님이 우리 팀에 온 적이 있다. 그날은 회사 1층 홀에서 스포츠웨어 대형 할인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여사님은 옷 좀 사는 김에 들렀다며, 박카스 한 박스를 주셨다. 당시는 아직 육아휴직을 한 선배도 돌아오지 않았을 때고, 텀블러를 씻은 프리랜서들도 계약 만료로 퇴사한 때였다. 팀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져있었다.


4. 그때 나는 온에어될 콘텐츠를 한창 제작하던 때였는데, 여사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정신이 없어 차라도 마시자는 말을 못 했다. "지금쯤 00 씨 휴직 끝났을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닌가 보네요~" 여사님은 날을 잘못 잡았다며 약간은 멋쩍게 웃었다. 여사님은 하얗게 다려진 롱 셔츠를 입고 붉은 루주를 발랐다. 매번 보던 미화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5. 제작을 핑계로 정신없이 모니터만 보다가, 여사님이 가고 정신이 확 들었다.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했어야 했는데... 제작을 대충 끝내고 1층 의류 행사장에 뛰어내려 갔다. 앞도 안 보고 뛰어갔는지, 동기가 카톡을 보냈다. “누나 어디가? 나 바로 옆에 있었는데” 여사님은 없었다.


6. 전화로 인사를 전하고 싶어 퇴사한 AD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알 수 없었다. 새로 온 여사님에게도 수소문해 봤지만...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몰랐다. 자리로 돌아와 파티션 뒤에서 찔끔 눈물을 흘렸다. 부끄러웠다.


7. 오늘은 책을 읽다 이런 문장과 마주쳤다. “모든 결단은 그것으로 이제 아무 미련 없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련을 동반하는 것이고, 그러한 미련이야말로 바로 타자성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는 결단을 거듭 되풀이하며 미련의 거품 속에서 다른 기회에 어떻게 응할 것인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미련의 거품'이라는 말이 남았다.


8. 그제는 엄마한테 전화를 하다가 화를 낸 일이 있었다. 본가인 안동에 가서 당신의 부모와 당일 치기 여행을 간다는데, 나에게 안동 근처 여행 갈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가지도 않는 여행을? 안동에 평생 산 세 사람보다 내가 어떻게 더 잘짜?


9.  “네가 좀 알아봐라” 십몇 년 쌓아온 이 말에 노이로제가 걸린 참이었다. 인터넷 요금제 좀 알아봐, 동생 내일 배움 카드 좀 알아봐, 청약 하는 방법 좀 알아봐… 왜 항상 나만 알아봐?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그 말이 평생 부양될 짐이 될까 봐 두려웠다. “뭐 내가 그런 거까지 알아봐요?”하고 성질 내며 전화를 끊었다.


10.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렇게까지 성질 낼 일이 아니었다는 창피함이 들었다. 18분이 지나고, 다시 전화해 사과했다. 엄마는 안동 여행이 아니라 안동 근교 여행을 말한 거라고, 본인도 목포나 광주 여행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두 시간 이내 거리로 갈만한 곳 함 찾아보지 뭐” 화내지 않는 것은 실패했지만, 사과할 때를 놓치는 것마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18분간 나는 미련의 거품 속을 잠시 헤맸다.


11. 어제는 영화를 보러 버스를 타고 홍대에 가는 길이었다.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아흔한 살 노인이 기사에게 소리쳤다. “여기가 공덕이야? 나 내려? 나 내릴 때 알려줘야 해!” 노인이 아흔 한 살인건 계속 자기 얘기를 떠들어서 알았다. “서울에서 91년 살았는데 아무것도 몰라, 서울 바보야 나는”


12. 공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속으로 영화 상영 시간을 계산했다. “까치산이요 선생님? 저랑 같이 가요.” 공덕역 즈음에서 노인과 함께 내리려는데 보조 보행기를 어떻게 들고 내릴지 몰라 잠시 헤맸다. 그러자 뒷자리에 있던 여자가 와서 보조보행기를 대신 내려주었다. 버스는 오랫동안 그 순간을 기다려주었다. 안 그럼 다들 미련의 거품에 휩싸일게 분명했다.



                    


+) 언젠가 여사님 호칭의 불편함에 대한 글을 쓴적도 있는데, 실제 삶에서 이보다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