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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클베리 Sep 25. 2023

기타

여섯 번째 사진

아버지는 과묵하신 분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다. 

언젠가 속 터진다며 내게 푸념을 늘어놓으시던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니 아버지는 입에 거미줄 치고 사는 양반이여 아주. 사람이 몇 번이나 부르면 대답이라도 해야지. 어쩜 저렇게 불러도 대답이 없니. 속 터져 증말. 뭔 재미로 사는 건지 원.'


대충 이런 푸념인데 매번 똑같진 않아도 핵심은 늘 한 가지다. 불러도 대답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속 터진다는 얘기다. 


난 둘 중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저 두 분의 아들이라서 더 깊이 헤아려 드리지 못하는 게 죄송스러울 뿐이다. 여하튼 6.25 전후로 태어난 아버지 세대의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엔 '과묵함'이란 것도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쨌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는 정 반대인 분이다. 그리고 서예를 하시는 아버지완 달리 기타를 좋아하신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엔 늘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났었다. 

얘기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고, 작은 체구에 목소리는 커서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난 소리의 7할은 어머니 담당이었다고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어머니는 깨어있을 땐 늘 움직이는 사람이고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땐 입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정말 부지런하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려 자신이 힘들어도 수고를 마지않는 사람이다. 그런 분이다 보니 집이 조용할 땐 뭔가 이상하다. 지금까진 그럴 때마다 꾸벅꾸벅 졸고 계신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난 어린 시절 유쾌하고 행복한 집에서 자랐어.'란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도 아버지에겐 불만이 많으셨다. 요즘은 결혼도 잘 안 하려는 시대이니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우리나라 이혼사유 1위는 '성격차이'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두 분은 그 성격차이가 뭔지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분들이다. 정말 모든 게 서로 반대라 이 반대인 것들로 인해 야기된 상황들을 전부 기록했다면 전집이 나왔을 거다. 그 정도로 두 분이 행동하는 걸 보고 있자면 '크...' 하는 코멘트가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몇 시간이고 기타를 치시며 흥얼거리는 어머니에게 시끄럽다 불평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몇 달 만에 부모님 댁에 가는 나조차도 계속 같은 곡을 미완인 채로 듣다 보면 '이제 기타 연습 좀 그만하셨으면 좋겠구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버지가 아무말 없으신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아버지는 정말 오랜만에 손주들을 데리고 놀러 가도 10분도 안되어 안방문을 닫고 들어가실 정도로 소음을 굉장히 피곤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타,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과거 나이에 안 어울리는 병치레를 하느라 수개월 부모님 댁에 내려가 지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공연연습인데 잘 안된다며 하루도 빠짐없이 기타를 치셨다. 기억 속에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종종 그것도 자주 기타를 치셨다. 그래서 그걸 아는 사람이 보면 공연연습은 핑계일 뿐 어머니는 정말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묵화나 공예 같은 것에서 처음 하는 사람치곤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주가 많은 어머니지만 어머니의 기타소리는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 때도 공부한 내 영어가 영 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난 오히려 어머니의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난 잠깐이나마 어머니가 기타를 치시는 이유를 생각했던 거 같다. 수십 년간 어머니의 저 미숙한 기타 소리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에겐 소음이 아니었던 걸까 역시 생각했다. 


오래전, 내가 결혼 같은 건 안 하고 살고 싶다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새 기타를 보며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와, 기타 새로 산 거예요?"


"응~ 아빠가 사줬어. 괜찮지? 비싼 건 아닌데 엄만 마음에 들어."


"좋겠네. 어디서 샀대?"


"아빠랑 같이 서울 가서 샀지. 낙원악기상가."


"기타 사러 서울까지? 둘이서 버스 타고?"


"응~. 엄마가 기타 치는 거 한 번 들어볼래?"


전혀 의미 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난 당시 기타 브랜드가 뭐냐고도 물었었고 어머닌 좋은 브랜드는 아니라고 하셨었다. 그럼 서울까지 몇 시간이나 걸려 올라갔는데 더 좋은 거 좀 사 오지 그랬냐던 내게 어머니는 그러셨다. 이게 좋다고 이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그때 어머니의 눈이 기타의 헤드 이름 모를 브랜드 이름 아래 적인 1975라는 연도 표기를 향해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1975년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때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타 소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기타 치시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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