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예술 - 고전 문학 혹은 고전학
[1] 고전 문학 혹은 고전학
"프랑스의 작가 샤를르 페기(Charles Peguy)는 "호메로스는 언제나 새롭다. 조간신문처럼 낡아빠진 것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까닭은 “바로 그 새로움 때문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는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텍스트를 읽는 셈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나 에이브러햄 링컨 또는 윌리엄 포크너, 혹은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또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고전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대학의 고전학과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중심으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 등의 비극,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 《구름》 등과 같은 희극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같은 로마 문학을 학습한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일리아스》는 거대한 고대도시 트로이의 패망에 있어 주된 역할을 하는 아킬레우스라는 멋진 젊은 전사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인이며 당대의 그리스를 표상한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아직 '유년기'에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 어느 이집트의 사제는 아테네의 법률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솔론이여, 솔론이여, 당신네 그리스인들은 언제나 어린아이요, 노인인 그리스인은 없소. 당신네는 영혼이 모두 어리고, 옛 전통으로부터 내려온 오래된 믿음이나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오.” 그리스의 정신은 청년 정신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 저작에는 놀라운 신선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이 신선함은 이후 서양의 속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아킬레우스가 그리스군의 사령관이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볼만 하다. 사령관은 아가멤논이다. 아킬레우스는 여러 장군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서구 문학의 기원이 최고 지배자가 아닌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됨으로써, 서구 문명은 모범적인 황제들이나 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고대 또는 초창기의 문학을 보유한 다른 문명과 구별된다.” 그리고 “적, 특히 전체 서사시에서 가장 귀족적인 인물이라 할 용감한 트로이인 헥토르를 동정적으로 다룬다는 점” 또한 독특한 지점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시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라는 첫 행에서 드러나듯, 《일리아스》는 본질적으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다. 이때 그의 분노는 영웅적 행동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파멸의 원인이다. 즉 그는 비극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운명과 대결한다. 그럼으로써 《일리아스》는 정점에 달한다. 따라서 《일리아스》는 “적나라한 인간 본성의 한계에 대항하는 영웅 이야기이다.“ 그런 까닭에 이 서사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무엇이 가능한가? 인간이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신분이 정한 바대로 견디며 살 수 있는가?” “이것들은 2천5백 년 전 그리스인들에게 그랬던 것만큼이나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중요한 질문이다.”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의 후속편 서사시다. “영웅 오뒷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고된 여정에 관한 이야기”로 “두 작품을 종합해서 보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의 조건, 인간의 '고향'은 근본적으로 《일리아스》에 그려진 바로 그것일까? 우리는 모두 사실상 자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의 세계에 처한 것인가? 우리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 졌는가? 아니면 인간성의 진정한 집은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가 원했던 난롯가, 즉 평화로운 집 같은 세계인가? 아니면 우리는 타고난 방랑자이자 여행자인가?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영광스런 군사적 승리, 평온한 가족의 행복, 또는 다른 어떤 것인가?”
《오뒷세이아》의 이야기는 《일리아스》와는 다르게 희극적으로 끝난다. “이 둘은 인간 경험의 양극단이자, 시적으로 창안된 극단일 수 있다.” 어떻든 간에 그리스 드라마는 비극과 희극이라는 두 가지 장르를 발전시켰다. 비극은 "인간의 위대함이 자신의 한계와 충돌"하며, 희극은 “인간의 위대함에 돌연 의심을” 품는다.
그리스인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양인들이 범한 가장 큰 실수”인 연속성을 과장한 일을 환기해 볼 수 있다. "19세기 영국인들은 그리스 문학을 읽으면서 아테네에서 예의바른 신사 문화를 발견했다." “독일인들은 그리스 문학을 읽으면서 독일 공동체의 낭만적 영웅의 영혼을 발견”했고, “오늘날 어떤 이들은 그리스인들을 현대 미국과 다르지 않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규정들마다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긴 하지만 어느 것도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아이네이스》
르네상스 이후로 교양인들은 “로마의 법적·정치적·군사적· 건축적 · 공학적 성과는 위대한 것”으로 받아였지만 그들의 철학과 예술은 “그리스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의 모방물인 동시에 그것과 매우 다른 새로운 시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시의 여신 '무사'(mousa)가 노래한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전쟁과 영웅을 내가 노래한다"는 행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에게 있어서 경건한 아이네이스의 운명(destiny)은 호메로스의 영웅들의 운명(fate)과 같은 종류가 아니다.”
《아이네이스》의 커다란 장점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잘못된 관념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치적 선전 목적에 따라 집필된 것이고, 영웅이 사회에 대한 봉사를 통해 독특한 인격을 얻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주의할 것
고전학 개론을 가르치는 교수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고전학 교수들 중 어떤 이들은 “언어 연구의 엄밀성과 수십년간 텍스트에 몰두했다는 점”에서 괴팍해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포스트모던 문학비평의 나쁜 습관들을 배웠을 수도 있다.”
문학 공부에서 초심자가 가장 자주 저지르는 오류는 교수의 텍스트 해석에 압도되어 “학생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각자 견해가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교수의 해석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텍스트의 여러 다른 번역본을 참조하고 그에 실린 해제들을 읽는 것을 권한다. 어떤 해제에 편견이 있더라도 다른 해제를 읽으면서 바로잡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