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시나리오작가의 임무
이제 『시나리오 가이드』 본문을 읽어 나가 보자. 1부의 제목은 ‘시나리오작가’다. 1부는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부 시나리오작가
- 시나리오작가의 임무
- 무대와 스크린
- 각색
- 영화의 작가
- 시나리오작가의 위상
원서에서는 1부 제목이 About Screenwriting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시나리오 쓰기에 대하여’ 쯤 되겠다. 그러나 역서에서는 이것을 “시나리오작가”로 옮겼다. 1장부터 4장까지의 제목은 원서와 역서가 대체로 같지만, 5장은 제목이 ‘The Screenwriter's Relationships’와 ‘시나리오작가의 위상’으로 조금 다르다. 그리고 A Cautionary Note라는 부록에 가까운 마지막 장이 역서에는 빠져 있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역자는 왜 1부를 이렇게 옮겼을까? 추측건대 역자가 1부를 시나리오 작가의 덕목에 관한 서술로 이해한 것 같다. 전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개연성은 가지므로 일단은 역자의 관점을 따르기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1부를 촘촘히 읽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차례 강조했다시피 우리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으로서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장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5장은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게만 중요한 내용이다. 원제인 ‘The Screenwriter's Relationships’를 5장의 내용에 맞게 우리말로 옮기면 ‘시나리오 작가의 공조’ 쯤 된다.
또한 4장 영화의 작가(The Auteur of a Film)는 작가 담론과 관련된 내용이므로 지금 검토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작가 담론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아주 짧게 피력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굳이 여기서는 읽을 필요가 없다. 작가 담론은 영화사에서 공부해야 할 사항이다.
그래서 우리는 4장, 5장을 읽지 않는다. 1, 2, 3장만 읽을 것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면 5장을 읽고 저자의 당부를 유념하기 바란다.
다시 우리의 초점으로 돌아와 1부를 조망해 보자. 우리가 1부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영화라는 예술 형식 또는 매체의 속성에 관한 지점이다.
2장 무대와 스크린(Stage Versus Screen), 3장 각색(Adaptation)은 다른 예술 형식의 서사와 영화의 서사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서술이다. 다시 말해서 2장과 3장은 다른 예술 형식과 비교하면서 영화예술만의 속성을 소극적으로(via negativa) 이야기하는 챕터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유념하고 숙지해야 할 측면이지만,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 또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2장과 3장부터 읽어 보자. 2장 무대와 스크린은 연극과 영화를 비교한다. 배우의 연기를 중심으로 연극과 영화의 상대적 특징을 지적한다. 그에 따라 연극의 직접성과 영화의 직접성의 차이가 부각된다.
“지나친 단순화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희곡은 스토리텔링의 하중을 거의 전적으로 배우들의 대사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시나리오(와 그것의 결과인 영화)는 배우들의 행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_ 24쪽
이것이 첫 번째 차이점이다. 연극은 대사의 비중이 큰 반면 영화는 행동의 비중이 크다. 도식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렇다. 연극은 상황 맥락이나 스토리 정보가 말로써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면 영화에서는 행동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된다. 영화 시나리오 작술에서는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죄악시한다. 앞으로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의 한 갈래로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사와 행동으로 연극과 영화의 특징을 나누는 게 적절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행동에 방점을 둔다는 것을 꼭 알아두자.
“연극의 경우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실제의, 살아 있는, 숨을 쉬는 인간이다. 반면 영화의 경우 관객이 보는 것은 그저 배우들의 녹화된 이미지일 뿐이다. 배우와 관객 사이의 교감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는 명백히 연극이 영화보다 앞선다. 훌륭한 연극배우라면 관객으로부터 마치 전류라도 통하는 듯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이는 영화배우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_ 24쪽
이것이 두 번째 차이점이다. 연극의 직접성은 생생함에 있다. 연극의 관객은 같은 시공간에 있는 실제의 배우를 직접 대면한다. 그가 분출하는 감정 에너지를 무매개적으로 접한다. 반면 영화의 관객은 저편의 시공간에 있는 가공된 이미지의 배우를 본다. 즉 연극의 직접성에는 영화가 지닐 수 없는 생생함이 있다.
“그러나 이 직접성과 친밀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연극의 희곡작가는 관객에게 어떤 특정한 행동이나 반응을 주목하게 한다든가, 어떤 정보의 극히 작은 부분을 인지시키는 데 대단히 제한된 자유밖에 누릴 수가 없다.” _ 24쪽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직접성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직접성은 프레이밍과 편집에 의해 일어난다. 부각할 것은 강조하고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서 꼭 봐야 하는 것들을 위주로 장면을 재단하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장소를 바꾼다거나 시간을 건너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두 가지가 다 가능하기는 하나 결코 영화만큼 자유자재로 행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연극에서 무대장치를 바꾸는 데 소요되는 시간 동안 도시를 건너뛰고 대양을 건너뛰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_ 24쪽
“카메라는 연극 객석의 관객이 배우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보다 더욱 가깝게 영화배우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아무리 작은 제스처와 표정이라도 잡아내어 강렬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연극에서라면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반응도 스크린 위에서는 ‘너무 크게(too big)’ 비쳐질 수 있다.” _ 25쪽
영화를 향해 ‘연극적’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로는 영화답지 않다는 비난조로 쓰인다. 따라서 이러한 비난조의 말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연극과 영화의 비교를 통해 영화다움을 헤아리는 일이 그렇게 낯설거나 새삼스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과시적, 교조적, 자아도취적 재현 양식 또는 표현 방식이 영화답지 않은 것이라는 모종의 선험적 감각이 관습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1부를 읽으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와 같이 영화예술의 고유한 속성을 인식하는 환기적 사유다. 이어지는 2부, 3부의 내용도 그렇게 마련한 인식 지평 위에 쌓아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에 서술된 내용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말로만 다가올 것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술에 관한 서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른 예술 형식들과 영화예술을 비교함으로써 영화예술 특유의 속성을 드러내려 한 까닭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제 3장 각색을 읽어 보자. 3장에서는 영화의 원작이 되곤 하는 다른 서사 예술들과 영화예술의 서사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3장은 각색 작업을 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입장에서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대형 제작사로부터 각색 업무를 받아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때 이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예술의 속성, 영화 서사의 특성을 잘 모르고 있다면 각색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각색은 일종의 번역이다. 번역은 어떤 서술을 하나의 언어 체계에서 또 다른 언어 체계로 옮겨내는 작업이다. 문제는 각각의 언어 체계가 일대일로 상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서술을 완벽하게 옮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번역가들이 번역 작업의 관건이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라고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번역된 글은 최종적으로는 한국어로 쓰인 글이기에, 원문에 서술된 내용을 맥락과 뉘앙스까지 충실히 반영해 번역하려면 한국어 구사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각색도 마찬가지다. 영화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영화 시나리오의 덕목을 갖춘 각색 작업을 수행해내기 어렵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 ‘사실은 저렇지 않았는데(But it wasn’t like that)’하는 느낌을 가져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작과의 혹은 실제 사건과의 불일치가 곧 시나리오작가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드라마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변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의 삶은 3장구조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소설들이란 대체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거나, 전혀 비주얼하지 않거나, 너무 내면의 성찰에만 경도되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연극은 기본적으로 무대의 제약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연극을 영화로 만들려면 반드시 내레이터로서의 카메라의 기능을 백분 발휘하여 세트의 제한을 뛰어넘고 연극에서는 그저 암시되었을 뿐인 행동들을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어 보여주어야 한다. 단편소설 역시 3장구조의 제1장이 생략된 경우가 많고, 사건들이 너무 부족하거나, 비주얼이 약한 대신 내면만을 파고들기 일쑤이다. 시나 노래는 그저 윤곽만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시나리오작가에게는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_ 28쪽
다시 한 번 강조한다. 3장에서 다른 예술의 서사와 영화의 서사 간의 대조를 읽으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영화예술의 속성과 영화 서사의 덕목, 즉 고전적 플롯의 규범이다. 따라서 시나리오로의 각색은 영화 시나리오의 덕목을 갖추는 데에 방점이 있다. 원작에의 충실성은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다. ‘영화다움’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 스토리가 원작의 형태 안에서는 제 아무리 파워풀하다고 해도 본래 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상 스크린 위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까닭이다.” _ 28쪽
3장의 서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다른 서사 예술과 영화 서사가 어떻게 다른지, 영화의 드라마 서사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그리고 각색 과정에서 난점이 되는 화자(narrator)의 문제를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앞서 읽은 부분이 첫 번째 부분이고, 지금 읽은 문단부터 두 번째 부분이다.
우리가 읽는 역서에는 두 번째 부분이 네 문단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문단에서 충실성의 역설을 환기시키고, 둘째 문단에서 영화의 드라마 서사의 특징을 밝히고, 셋째 문단과 넷째 문단에서는 각색 과정에서 부딪히는 실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때 저자는 영화의 드라마 서사의 특징으로 “고도의 압축과 첨예화”를 든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란, 특히 영화의 경우, 고도의 압축과 첨예화를 필요로 한다. 흔히들 “소설은 가십이지만 드라마는 스캔들이다(Fiction is gossip, drama is scandal)”라고 말한다. 가십과 스캔들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스캔들은 더 첨예한 형태를 갖춘 채 들불처럼 사납고 빠른 속도로 번져가는 데 반해, 가십은 두서없고 산만한 형태로 오래 지속되는 것뿐이다.” _ 28쪽
넷째 문단을 읽어 보면 영화예술의 속성과 영화 시나리오의 덕목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까닭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초보적인 시나리오 작가에게 각색의 대상이 되는 원작이란 그러므로 든든한 지팡이라기보다 차라리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기 쉽다. 반면 유능한 시나리오작가라면 그것은 흥미로운 도전대상이다. 그는 스크린 위에서 펼쳐질 드라마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원작 내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고, 어떤 장면들을 유지해야 하며, 또 다른 장면들은 언제,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 그는 또한 사건의 저류에 흐르는 드라마의 본질을 찾아내고, 서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을 솜씨 좋게 묶어내어 주제와 드라마에 기여하게 함으로써, 원작의 스토리에 있는 본연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려 애쓸 것이다.” _ 29쪽
"유능한 시나리오작가”의 원문은 “accomplished screenwriter”이니 “유능한”에 ‘숙련된’이나 ‘노련한’의 층위를 덧붙여 이해해도 되겠다. 그렇다면 숙련된 작가는 어떻게 “원작 내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고, 어떤 장면들을 유지해야 하며, 또 다른 장면들은 언제,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까? 그는 영화예술의 속성과 영화 시나리오의 덕목에 관한 이해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따라서 저자가 영화의 드라마 서사의 특징을 “고도의 압축과 첨예화”라고 할 때 우리도 이게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역자가 “compression”을 “고도의 압축”으로, “intensification”을 “첨예화”로 옮겼는데, 다층적인 맥락으로 읽히는 compression은 끝내 알맞는 번역어를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compression에는 압력이라는 층위도 있으니 일단 우리는 “고도의 압축”이라는 말에서 압력의 층위를 의식해 보자.
영화의 드라마 서사의 구도는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protagonist)에게 임무(mission) 또는 행위(activity)를 촉발시키는 어떤 압력이 발생하고 이것이 중심 사건으로 전개된다. 중심 사건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점점 더 첨예해지며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드라마 서사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취하고자 하는 바는 ‘관객의 관여’다. ‘관객의 관여’는 영화의 드라마 서사의 제1 목적이다. 우리가 앞으로 학습하게 될 극작술의 규범은 ‘관객의 관여’를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며, 이는 오랜 시간동안 인류의 역사로부터 검증되어 왔다.
이제 앞으로 돌아가 1장 ‘시나리오작가의 임무’에서 관련 내용을 읽어 보자. 저자는 1부 1장을 시작하며, 즉 본문을 시작하며 시나리오 쓰기가 “글쓰기의 모든 형태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나리오작가의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시나리오작가가 자신의 대사와 아이디어와 욕망들을 그 최후의 결과물이 영화에 쏟아붓는 과정 자체는 대단히 우회적일뿐더러 복잡한 매개체를 필요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과 독자 사이의 간격보다 시나리오작가와 관객 사이의 간격이 훨씬 더 큰 것이다.” _ 19쪽
시나리오와 그것의 최종 형태인 영화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놓여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구상한 것들이 완성된 영화에서 구현되려면 시나리오 집필만큼이나 지리할 뿐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변화무쌍하게 작용하는 실무적 제작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 시나리오 쓰기가 “글쓰기의 모든 형태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가 시나리오 작가의 의무로 이야기하는 세 층위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한결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시나리오작가는 감독, 배우들, 의상담당자, 촬영감독, 사운드디자이너, 미술감독, 편집자 등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동시에 그는 특히 관객의 심리상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며 영화적인 스토리텔링 기법들에 통달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며 어떤 열망을 가지고 있고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_ 19-20쪽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예술의 속성과 영화 시나리오의 덕목뿐만 아니라 영화의 제작 공정을 비롯한 이 세 층위까지 통달해야 한다. 이 중 ‘관객의 관여’의 측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두 번째 층위다. 저자는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의 심리상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객이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민감하게 헤아리면서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술이 “영화적인 스토리텔링 기법들에 통달해 있어야 한다”다. 원서에는 “the screenwriter must be especially aware of audience psychology and the conventions of screen storytelling”이라고 쓰여있다. 관객의 심리를 의식하는 것과 영화적 스토리텔링 기법이 맞물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적 스토리텔링 기법은 ‘관객의 관여’가 목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관객의 관여를 달성하여 지속시키고 적절한 시점에서 극적 긴장을 고조시킬 줄 알아야 한다. 장면을 보는 동안 관객의 인지 지대에서 무엇이 구축되는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관객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특히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에 대하여 항상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 시나리오 혹은 그것의 결과물로서의 영화가 관객에게 시나리오작가가 원했던 어떤 임팩트를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_ 21쪽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시나리오 쓰기는 영화를 보는동안 관객의 인지 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직하는 작업이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영화는 내적 정합성이 결여된 텍스트다. 관객의 인지 작용을 기준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누차 밝혔다시피 『시나리오 가이드』는 여타 시나리오 작법서에 비해 관객의 관여와 그와 관련된 기술 및 장치들이 강조되는 책이다. 그래서 다른 시나리오 작법서들을 재쳐두고 『시나리오 가이드』를 함께 읽는 것이다. 영화예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면 ‘관객의 관여’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면 지금쯤 눈앞이 캄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시나리오 작가의 과제에 뜻밖의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꽤나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역사적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 내려온 극작의 기술들이다.
“그러나 시나리오작가에겐 역사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보고가 있다. 시나리오의 직접적인 모태는 희곡이다. 시나리오는 본질적으로 희곡으로부터 그 기본작법과 구성법 등을 배워왔다. 그리고는 그것에 덧붙여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과 테크놀로지 등을 발전시켰다. 성공적인 연극과 성공적인 영화를 비교해본다면 그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플라투우스(Plautus)의 희극과 닐 사이먼(Neil Simon)의 코미디, 고대그리스 비극과 <대부 The Godfather>,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연극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비교해보면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사용된 기법들이 놀라울 만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관객의 흥미를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어떤 기법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학습되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_ 20쪽
2부부터는 그러한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도 이제 1부를 마치고 2부를 읽어 가자. 2부부터는 한 장씩 읽을 것이다. 2부부터는 영화의 드라마 플롯에 관한 기초 개념들이 거론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