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자 서문
지난 시간에는 편역자 서문을 읽었고, 이번 시간에는 원저자 서문을 읽는다. 원저자 서문은 『인문학 스터디』의 커리큘럼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서구 문명의 역사 및 고전 텍스트에 접근하는 두 가지 입장과 그에 대한 반성적 시각, 선생님과 학우라는 학습 환경에 관한 지침 그리고 고전 공부의 의의 등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읽으면서 서구 문명과 고전을 향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감지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자가 스스로를 현대 문명의 질서를 구성하고 있는 지식 전통의 일원으로 의식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현전하는 세계에 정신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감각, 즉 문명의 산물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이들과 은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나아가 『인문학 스터디』 같은 텍스트로 자신들의 지적 전통을 후대에 전수하는 행위를 통해 소속감을 갖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이러한 서구인들의 입장을 객관화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고상한 고양에 가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찌 됐든 우리 또한 현대 문명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저자 서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문명사와 고전 텍스트에 접근할 때 의식해야 할 반성적 시각 뿐만 아니라 이상적 사제 관계 및 학우 지간에 관한 서술을 매개로 건전한 지식 공동체를 사유하고 그것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아닐까.
원저자 서문
교양교육의 정신
“미국 대학들은 한동안 근본적인 사회문제에 관한 실험적 연구와 학문 연구의 본질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논쟁했다.” “이러한 정치적 논의 끝에 우리가 내린 한결 같은 판단은 결국 대학은 교육을 위한 장소라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 미국의 교육기관은 대부분 기본적인 학부 커리큘럼을 소홀하게 다루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 과정이 해체되기도 했다.”
“과거에 미국 대학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핵심 커리큘럼을 차례로 이수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연구에 통일성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요구했다. 핵심 커리큘럼의 학점은 졸업이수학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핵심 커리큘럼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지거나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었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4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든 요건을 이수해 손에 졸업장을 든다 해도 많은 학생들이 당혹감과 불안감을 품은 채 대학을 떠난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학생들이 직면한 이와 같은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공하려 한다. 이 안내서는 고등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간략히 논의한 뒤에, 핵심 지식 중에서도 더 핵심적인 것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선택과목 계획은 어떻게 짜면 좋을지 도와줄 것이다.”
교양교육 - 서구문명 혹은 서구 고전에 관한 커리큘럼
존 헨리 뉴만(John Henry Newman, 1801~1890)의 고찰을 따른 “그리스와 라틴 고전 연구 과정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그러나” “교양교육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일부 교육자들의 노력으로 “20세기 전반에 '전공'과 '선택' 과목들이 등장하면서 핵심 커리큘럼에 관한 두 종류 모델이 시도되었다. 하나는 서구문명에 관한 '일반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 고전에 관한 연구였다.”
“서구문명에 관한 일반교육 과정은 서구에 관한 통합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 마련한 역사과목들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인류 전체를 한 전형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서구문명, 즉 예술, 문학, 철학, 정치와 종교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목적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형태를 띤 외부의 이념적 위협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철학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서구문명’에 “관한 이야기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지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의 미국에 대한 신격화를 초래했다.” “검증되지도 않은 우리 자신의 문화적 '탁월함'을 강조하는 사이비 비판사상을 주입”하고 있을 뿐이므로 “진정한 교양교육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서구문명 커리큘럼'의 교육체제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결국 그 커리큘럼의 목적이 진정한 세계적 문명인의 양성이 아닌 미국 시민의 양성이라는 점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또다른 20세기의 노력은 고전 커리큘럼이었다.” “이 커리큘럼에서는 정해진 문학 작품과 철학서들이 역사의식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읽혀졌다.” “인간 정신의 기념비적 작품을” “저자의 처지에 입각하여”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이 현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 사건들이 실패했다고 부정적으로 판단(좌파의 특징)하거나, 이러한 사건들이 현재 관행과 신념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우파의 특징)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고전 커리큘럼은 '서구문명 커리큘럼'의 개략적 접근방식보다 우수하다. 고전 핵심 커리큘럼은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했던 위대한 논쟁의 정수를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주므로 뉴만이 옹호했던 교육과 매우 밀접하다.”
“그러나 고전 커리큘럼의 접근 방식에도 단점은 있다. 이 커리큘럼에서는” “진정으로 훌륭한 몇몇 고전이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상을 가지고 있음을 학생에게 확신”시키려고 노력한다. 일각에서는 “서구의 역사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의 역사가 아니라, 결코 결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영원한 문제’의 역사라고 단언”하며, 그런 까닭에 “다른 문명보다 서구문명이 우월하다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서구문명은 이런저런 해답들 중에서도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서구의 고전을 읽는 목적은 철학자가” 되는 데에 있는 셈이다.
“모든 중요한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주장에는, 역사가 중요하지 않고 사상은 진보하지 않는다는 독단적 생각이 깔려 있다.” 또한 고전의 저자들을 공정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고전의 저자들은 문제의 해답을 추구한 것이지 해결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아는 문제를 풀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서구문명 커리큘럼'의 개략적 접근 방식”과 “서구를 철학 이야기로 이해하는 '고전 커리큘럼’” “두 접근 방법에는 각각 장점이 있지만 어느 쪽도 완전하지는 않다.”
“오늘날 미국에서 교양인의 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서구의 사상, 역사, 대표적인 제도를 탐구하는 대학의 핵심 커리큘럼이며, 이러한 커리큘럼은 전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고전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와 텍스트에 접근할 때에는 문명의 유형과, 인간이 당대에 성취한 최고 업적을” 드러내야 하며, 이는 “우리의 진정한 관심사인 사물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므로 결국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필수 지침 사항
학생의 덕목은 ‘교양’ 과목 이수를 형식적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성을 인식하고 전체 유형을 파악하는 철학적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태도와 미덕을 습득”할 수 있을까? “두 가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바로 스승과 친구다.”
“스승. 모든 전통문화에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은 매우 존경받고 있으며 선생과 학생 사이에 놓여 있는 의무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다.” “스승은 지혜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은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와 충성을 바쳐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호해”진 관념이다. “우리는 스승을 정신적인 것을 전해주는 자라기보다는 연구 방법의 훈련자로 이해한다.”
“그러나 모호해졌다 해도 기본적인 유형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아주 커다란 영향을 준 스승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흔히 “이러한 지적인 후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좀 더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오히려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에서는 그러한 스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의 전공과목에서 탁월하면서도 학생을 배려하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는 학문에 몰두하고, 진정 현명하며, 더 많은 인생경험으로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구문명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에 헌신하고 강의실 안팎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기꺼이 환영하는 스승을 찾았다면 그 스승의 모든 강의를 수강해야 한다.”
“교우관계 또한 아주 중요”하다. “가장 좋은 교우관계는 지적인 교우관계다.” “자식이 집을 떠나 대학으로 향할 때, 부모는” 자식에게 “친구를 잘 사귀라고 말한다. 도덕적인 해이를 피하는 소극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지성적인 친구들과 교류한다는 적극적인 이유에서라도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혼자서 배움의 길을 나서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명문 대학에서조차도 놀라운 반지성주의가 자주 발견되곤 한다.”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스포츠, 과외활동 등 학생들이 부딪힐 유혹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지적인 교우관계는 진정한 교육과 만족을 연계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커리큘럼
“이 책에 나와 있는 핵심 커리큘럼을 종합하기 위해, 대학 연구소(Intercollegiate Studies Instrute)는 전국의 모든 공사립 대학의 강좌를 조사했으며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여기에서 서술하고 있는 커리큘럼(4년제 대학에서 각 학기당 한 과정)은 일반적으로 미국 대부분 대학의 학과에 개설되어 있다. 다음 각 장에서 학생들은 과정의 내용이 어떻게 서구문명에 대한 정교한 이해에 적합한지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이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과정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교양교육 핵심 커리큘럼'을 공부하는 것은, 서구 정신의 윤곽과 공부 과정에 매우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며, 인류가 남긴 가장 훌륭한 유산들과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또한 참다운 지식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에 입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어떤 것이 적절한 질문인지 알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항상 참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때에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심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의 독자들은 이 서문을 읽고 ‘서구우월주의’에 입각한, 편협한 과정을 옹호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는 가능한 판단이고 옳은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독서는 차후에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