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서 읽기 : 『시나리오 가이드』 해설 #01

목차와 서문 검토

by 테오도로스

우선 목차와 서문을 살펴보자. 목차와 서문을 검토하는 작업이 책 읽기의 시작이다. 목차와 서문을 검토하는 목적은 독서의 지도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독서의 지도를 마련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책 읽기를 위한 조망점을 설정하는 일이다. 목차를 검토하면 책의 구성을 헤아릴 수 있고, 서문을 검토하면 저자의 논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책의 서술에 대한 잠정적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입각점을 구축하고, 그에 따라 책을 읽어가는 것이다.


목차와 서문을 검토해도 책의 구성과 저자의 논점을 알아차릴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는 독자가 책의 내용과 관련된 지식이 모자란 탓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한 탓일 수도 있다. 또한 모든 책을 항상 이렇게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책들은 처음부터 차곡차곡 읽어 나가야 한다. 어떤 때에는 발췌해서 군데군데 읽기도 한다.


우리는 『시나리오 가이드』를 목차와 서문을 검토하고 독서를 위한 조망점을 확보한 후에 읽는다. 『시나리오 가이드』를 시나리오 작법을 훈련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고전적 플롯의 기초 개념과 작동 원리를 학습하기 위해 읽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독서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으므로 목차와 서문을 검토해 우리의 목적에 맞는 조망점을 세워야 한다.


『시나리오 가이드』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저자 서문

역자 서문

1부 시나리오 작가

2부 스토리텔링의 기초

3부 시나리오 작법

4부 시나리오 분석

한글판 부록1 본문에 등장하는 시나리오 작가들

한글판 부록2 본문에 등장하는 영화들



목차를 읽고 각 챕터의 내용과 책의 구성을 가늠해 보자. 1부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에 대해서, 2부는 스토리텔링에 있어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서, 3부는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술에 대해서, 4부는 실제 작품들로부터 해당 내용을 검토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서문을 읽고 이 불확실한 가설을 조정해 보자.


우선 저자 서문을 읽어 보자. 저자 서문에는 ‘이 책은 어떻게 완성되었는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원서에는 이런 제목이 없다. 역자가 임의로 붙여 놓은 것이니 타당성을 따져 묻는 것도 좋겠다.


저자 서문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나리오 가이드(The Tools of Screenwriting: A Writer's Guide to the Craft and Elements of a Screenplay)』는 에드워드 마블리(Edward Mabley)의 『극적 구조(Dramatic Construction)』를 영화의 “시나리오 작법에 알맞도록” 각색한 책으로, 모든 드라마 플롯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뿌리로 하는 극작술의 전통 아래에 있으며 영화 시나리오 작술서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특히 프랭크 대니얼(Frank Daniel)이 정립한 개념을 적용했다. 역자가 달아 놓는 제목처럼 책의 연원을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저자 서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저자 서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곳은 “시나리오 작법 이론에 관한 한 프랭크 대니얼이 최초로 정립했음이 분명한 개념들”에 관한 부분이다. 해당 문단을 읽어 보자. 7쪽 가장 아래 문단이다. 원서에는 두 문단으로 쓰인 것이 역서에는 한 문단으로 옮겨졌다.


시나리오 가이드, 저자 서문


““누구의 스토리인가?”, “누구의 신(scene)인가?”, 객관적인 드라마와 주관적인 드라마, 누설과 인식의 원리 등은 모두 그가 정립한 개념들이다. 그 밖에도 준비신과 여파신, 미리 알려주기와 예상하게 만들기 등도 그의 공적에 속한다.”


『시나리오 가이드』에는 다른 시나리오 작법서, 시나리오 이론서에서 거론하지 않는, 이 책에서만 두드러지는 개념들이 있다. 주로 “프랭크 대니얼이 정립했음이 분명한 개념들”이 그렇다. 이어지는 서술을 읽어 보자. 원서에는 두 문단으로 쓰인 것이 역서에는 한 문단으로 옮겨져 중요한 내용들임에도 그만큼 부각되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법 이론에 관한 프랭크 대니얼의 기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본질에 대한 놀라울 만큼 단순한 정의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렵다.””


『시나리오 가이드』의 핵심 내용은 이 두 서술로 요약할 수 있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드라마 플롯의 골자를 관통하는 서술이고, “프랭크 대니얼이 최초로 정립했음이 분명한 개념들”은 장면을 구축할 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장치들이다. 각각이 각인될 수 있도록 일부러 나눠 읽었다.


저자 서문에서 책의 구성이나 저자의 논점을 엿볼 수 있는 서술은 이것뿐이다. 데이비드 하워드는 프랭크 대니얼을 비롯해 에드워드 마블리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뿌리로 하는 극작술 전통에 모든 공을 돌리며 자신의 입각점을 피력하지 않고 있다. 그런 탓에 앞서 우리가 마련한 독서의 지도를 보완하거나 조정할 만한 단서를 충분히 얻지는 못했다. 본문을 읽어 나갈 때 집중적으로 숙지해야 할 지점들 정도만 확인한 셈이다.


다만 우리가 서문에서 잡아낸 핵심을 목차에 비춰 보면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2부에서, “프랭크 대니얼이 최초로 정립했음이 분명한 개념들”은 3부에서 다뤄지지 않을까 예상하게 된다.


이제 역자 서문에서 추가적인 단서가 있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역자 서문을 읽어 보자. 역자 서문에는 ‘연역과 귀납의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느닷없어 보일 정도로 무거운 단어로만 채워져 있다. 이 무거운 제목이 과연 타당한지 그리고 내용과 위상이 맞는지 확인해 보자.


역자 서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해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두 번째 부분이다. 하지만 이 두 번째 부분도 해제보다는 활용법 안내 또는 권유의 비중이 커 보인다.


우리가 해제로 읽을 두 번째 부분은 다섯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문단은 책의 저술 기조를, 둘째 문단은 그에 따른 책의 구성을, 그리고 셋째 문단부터는 책의 활용법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우리가 검토해야 할 문단은 첫 문단과 둘째 문단이다. 10쪽 아래부터 11쪽 첫 단락까지다.


시나리오 가이드, 역자 서문


첫 문단에서 역자는 “이 책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으로 “실용주의”를 꼽는다. 이어서 저자의 작가(auteur) 담론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이 서술이 “실용주의”라는 “이 책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을 부연하지는 못한다. 실질적으로는 마지막 문장만이 “실용주의”를 부연하고 있지만, “시나리오란 결국 작가와 관객이 벌이는 게임이며, 따라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관객의 체험”이라는 입각점이 어떻게 “시종일관 관철되고 있다”는 “실용주의”로 집약되는지를 해명해 주지는 못한다. ‘작가 담론’과 ‘실용주의’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도 이 책의 입각점을 어떻게 실용주의로 집약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더 문제다.


둘째 문단에서는 “실용주의”가 책의 구성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역자는 “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제3부 작법 이론”과 “책의 백미라고 해야 할 제4부의 분석”을 강조하며 “제3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정의와 제4부에서 반복학습하도록 되어 있는 풍부한 예시들은 이 책이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서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3부와 4부를 오가는 학습 방법을 “연역과 귀납의 변증법”이라고 명명한다.


둘째 문단에서도 이 책의 입각점을 어떻게 “실용주의”로 집약할 수 있는지 해명해 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해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이 두 문단이 전부다. 셋째 문단부터는 “연역과 귀납의 변증법”이라고 이름 붙인 학습 방법을 안내한다.


이쯤 되니 역자가 사용한 “실용주의”, “변증법” 등의 용어가 책의 내용과 위상에 걸맞지 않은, 지나치게 무거운 단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역자가 권유하는 학습 방법은 따라봄 직하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모범적인 공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주어진 여건에서 목차부터 서문, 역자 해제 검토 작업을 그럭저럭 수행한 셈이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의 독서 지도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독서 지도가 마땅한 형체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검토 과정이 마냥 헛된 일이 된 건 아니다. 목차와 서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책에 대한 인식 지대가 그런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차후의 독서를 위해 첨언하자면, 어떤 이유에서든 목차와 서문 검토 작업에서 흡족할 만큼의 입각점을 얻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 아쉬운 대로 본문을 읽어 나가자.


단서를 더 찾아보고 싶은 사람은 출판사의 책 소개와 에드워드 마블리의 『극적 구조』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역서 출판사뿐만 아니라 원서 출판사까지 확인하는 걸 권한다. 에드워드 마블리의 『극적 구조』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서 원서를 읽을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 가이드』 원서에는 프랭크 대니얼의 서문이 있다. 프랭크 대니얼은 거기서 시나리오 작술에 관한 다각도의 당부를 서술한다. 그중 우리가 특히 간과하는 지점에 관한 서술만 한 단락 읽어 보자.



"It is a strange thing," Turgenev once said with a sigh. "A composer studies harmony and theory of musical forms; a painter doesn't paint a picture without knowing something about colors and design; architecture requires basic schooling. Only when somebody makes a decision to start writing, he believes that he doesn't need to learn anything and that anybody who has learned to put words on paper can be a writer."

“이상한 일이다,” 하고 투르게네프가 한숨을 쉬며 언젠가 말했다. “작곡가는 화성과 음악 형식 이론을 공부한다; 화가는 색채와 디자인에 관해 무언가를 알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건축은 기초 교육을 필요로 한다. 오직 누군가가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할 때에만, 그는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종이에 단어를 적는 법을 배운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 이번 시간에 한 것과 같은 규범적 읽기를 처음 접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규범적 읽기는 인문학의 전통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쓰기에도 규범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시나리오 쓰기도 마찬가지다. 기초적인 체계와 개념, 그것들을 관통하는 규범이 있다. 그러나 프랭크 대니얼이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입문자들이 이를 간과한다. 영화 논평자들도 절대다수가 ‘관객의 관여’와 ‘극적 긴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축되는지 잘 모른다. 고전적 플롯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다. 고전적 플롯에 대해 잘 모르면, 사실상 영화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전적 플롯에 대한 이해는 영화예술에 관한 기초 소양이기 때문이다.


러시안 리얼리즘 3대 문호 중 한 사람인 이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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