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서 읽기: 『인문학 스터디』 발췌독 #00

편역자 서문

by 테오도로스

인문학 스터디』의 원제는 ‘학생들을 위한 핵심 커리큘럼 안내’(A Student’s Guide to the Core Curriculum)다. 즉 이 책은 인문학 공부의 핵심 교과를 제시하는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인문학 교과가 어떤 목적에 따라 편성된 것인지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 공부라고 하면 대체로 서구의 교과를 떠올리고, 『인문학 스터디』도 서구의 인문학 교과를 제시하는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서구의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우리는 21세기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과 우리가 서구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입장 차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서구의 인문학을 공부한다. 편역자 서문에서 역자들도 이 문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혹시나 독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소홀히 하지는 않을까 싶어 이곳에 옮기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책에서 그리고 대체적으로 서구의 인문학 텍스트에서 잠정적으로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주체’와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는 실존적으로 다른 개체이며, 나쁘게 말하면 그 독자에 우리는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지점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면 인문학 공부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여지가 있다. 저들이 저들의 세계를 의식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놓인 현실을 읽고 터무니없는 시각과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역자들의 학문적 민감함 덕분에 우리는 편역자 서문을 읽으며 이러한 입장 차를 환기할 수 있다. 편역자 서문 도입부에서 거론되는 “근대 세계에서 인문학 공부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편역자 서문

미국 대학의 교양교육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


1. “근대 세계에서 인문학 공부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적 세계는 대체로 서구의 르네상스 시대(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이 세계의 특징으로 “빈번하게 거론되는 제도적인 성과는 국민국가, 상비군, 공교육으로 집약된다.” ‘중세’는 ‘세속국가’ 기반의 세계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라는 보편적 세력이 지배하던 시기”의 유럽인들은 국가보다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강했다. 그리고 “나라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항상 대비하는 조직된 군대”인, “상비군도 없었다.” 국가와 상비군은 “30년전쟁을 통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종교의 지배에서 벗어난 다음에야 등장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더욱 확고해진 것은 프랑스혁명(1789년)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우리는 근대 민족주의의 등장도 목격할 수 있는데,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는 피히테의 격문 〈독일민족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이다.” 이 격문은 “특정 국가와 민족이 지향해야 할 공통의 이념을 제시”한다. “피히테의 격문이 국민국가의 교육내용에 관련된 논점을 제시한다면, 프랑스혁명 때 파리에 설립된 고등사범학교(1794)는 국민국가의 교육제도와 관련된 중요한 측면을 보여준다.” “근대의 학교는 국가가 설립하여, 국가의 필요에 따라,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근대 이후”의 “학문 활동은 공교육 기관에서 국가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런 까닭에 공교육기관에서 교수하는 학문들은 어떤 점에서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들이지 일체의 현실적 관심과 정치적 관여에서 벗어난,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학예나 인문학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순수한 인문학을 표방하고 그러한 학문을 실제로 고수하고 있다해도, 국가에 의해 설립된 또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제도적 장치나 기구에 의해 수행되는 한, 그 학문활동은 대체로 국가의 제약 아래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인지”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인문학을 공부하는(또는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인지가 늘 문제가 된다.” 저자는 “미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의 핵심 커리큘럼을 둘러싼 고민을 토로하면서” 대학에서 “학문의 목표를 놓고 벌어진 논쟁” 가운데 나타난 “두 종류의 견해”를 제시한다. “하나는 서구 문명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비롯한) 서구의 고전을 텍스트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첫째 모형은 서양문명의 전 측면, 즉 예술, 문학, 철학, 정치, 종교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공부를 하는 이들이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진지하게 통찰하게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칫 과거의 문명을 현재의 상황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를 분명히 깨달으면서도 문명사에 대한 통찰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결국 공부에 대한 최종의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모형은 “역사적 상황 등에 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서구의 고전들을 읽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이 모형에 따라 공부하는 이들은 어떤 저자의 작품을 가능하면 저자가 서술한 그대로 이해하려 하고 오늘날의 정치적・현실적 규준에 따라 판단하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접근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전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는 것은 훌륭한 것이기는 하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역사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들이 되풀이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든가, 결국 인류는 아무런 진전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든가, 더 나아가 과거의 인류가 오늘날의 인류보다 더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편견에 빠질 우려”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서구문명 일반과정과 고전 교육과정 둘 다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으로 나아가야 한다.”


3. 미국의 ‘자유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과 한국의 대학 문화


이것을 한국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따져 보기 이전에 “미국 만이 보유한 독특한 학제인 '자유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자.” “이 학제를 검토해보면 본격적인 교양교육이 구체적인 현장에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한국의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할지,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뚜렷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유교양대학은 4년제 정규대학이지만 4년 동안 특수한 전공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학(University)과 구별되며, 대개는 대학원도 없는 학부 중심 대학이다. 특수하고 세부적인 전공을 강조하지 않는 만큼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교양과 지식을 쌓는 데 주력하며, 부수적으로는 학생들의 인격함양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서 이들 대학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실용학문이라 일컫는 영역들을 교수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음악과 미술, 수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글쓰기 등과 같은 영역들을 포괄적으로 배우게 한다. 전체 학생 수가 1천 명에서 2천 명 정도로 적고, 교수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으니 학문탐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격적인 교류까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다해도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환경이 그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러한 과정은 종이 위에 쓰인 계획에 그치고 만다”. “미국의 자유교양대학의 학생 수가 2천 명 내외라는 점, 교수의 숫자가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특별한 기자재가 요구되지 않는 학과를 증설하고, 가능하면 학생수를 늘려서 등록금 수입을 늘리고, 취직하는 데 아주 유리한 학과를 각별하게 챙기며, 학교 안에 대기업의 이름이나 기업 창업주의 이름를 딴 건물을 짓고, 상업 시설을 무분별하게 증설하여 명성을 높이려는, 한국의 ‘명문대학' 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학벌을 중시하고 안정된 고소득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만 대학을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교양교육의 정신이 제도 안에 자리잡고 현실화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몇 몇 사람이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해도 모든 것을 취직과 출세로 환원시켜버리는 무섭고도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에서 자유교양과목을 공부하려는 이들은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나가야만 한다.” “우리가 이 책을 편역한 까닭이다.”


*역자들의 서지 사항 및 독서 안내는 발췌 요약하지 않고 전체를 옮긴다.


“이 책의 원제는 '학생들을 위한 핵심 커리큘럼 안내' (A Student's Guide to the Core Curriculum)이다. 저자는 미국의 일반 대학에서도 고전과 서구문명을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직시하고 학생들이 교과과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고 이 책 을 썼다. 이를 위해 '대학연구소’(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는 미국의 모든 공사립 대학의 강좌들을 조사하고,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유명한 학자들의 자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미국의 대학들에 개설되어 있는 8개의 과정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살펴보고 한국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않음을 발견하였다. 그에 따라 원서의 내용과 순서를 지금의 목차처럼 재배열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내용 또한 다시 편집하였으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실정에만 해당하는 내용을 정리하고 한국의 상황에 걸맞도록 수정 보완하였다. 다만, 근대문학 과정 중 ‘영미 소설'과 ‘비교문학’, 그리고 ‘예술학’ 과정에 관한 설명은 원서 내용 그대로 매우 짧게 실려 있다. 다른 분야와 달리 편역자들이 보충 설명도 붙이지 않은 이유는, 이 분야가 한국에서도 인문학 분야의 핵심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서 행하는 교양 과정으로서의 의의를 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 과정별 저자가 추천하는 도서목록들이 영어원서로만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본문에 그대로 두되, 한국어로 된 고전 번역본과 참고도서들을 따로 정리해서 독자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게 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는 제도적인 도움을 받는 일이 어렵다. 그러나 혼자서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가장 주요한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기본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가, 즉 그 범위에 해당하는 어려움이다. 이 책은 우선 그 점을 고려하여 문학・예술/ 철학・정치/ 역사학/ 기독교 사상이라는 큰 범주들을 두었다. 이 책을 가지고 공부의 안내를 삼으려는 이들은 이 범주들 중에서 자신이 관심 가는 부분부터 참조하면 될 것이다. 먼저 본문을 꼼꼼하게 읽어 그 영역이 왜 중요한지, 그 영역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논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여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세부적인 영역을 정하면 되리라 본다. 그런 다음 그에 해당하는 고전들은 무엇인지를 '원전' 목록에서 확인하여 곧바로 고전읽기에 도전하거나 ‘참고도서' 읽기에 착수하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참고 도서는 개괄이 잘된 입문서에서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 순서로 나열되어 있으므로, 초심자라면 위쪽에 거론된 책들을, 어느 정도 기본지식과 소양이 갖추어진 이라면 아래쪽에 들어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바를 글로 써서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책 읽고 노트정리하기나 글쓰기에 관한 안내까지 이 책에서 포괄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동양의 교양 공부에 관한 안내도 포함하고 있지 않음을 밝혀두어야겠다.”


마크 C. 헨리, 인문학 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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