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제 입문서들을 읽어 나가자. 영화예술 입문서로 시나리오 작법서인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는다. 시나리오 작법서는 시나리오 작술의 기초 개념, 구성 질서 및 규범 등을 서술하는 책으로 본래 목적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집필 훈련을 위한 교재다.
그런데 왜 시나리오 작법서가 영화 공부의 입문서일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오해를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영화예술의 공통 교양을 거론할 때 첫 번째로 꼽았던 것이 고전영화(classical cinema)의 체계였다. 몇 차례 밝혔듯이 지금 말하는 고전영화는 고전 작품, 즉 위대한 작품이나 전범적 작품이 아니라 영화예술적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절대다수의 영화가 고전영화에 해당한다.
고전영화는 고전적 플롯과 고전적 데쿠파주, 조금 더 익숙한 용어로 말하자면 고전적 서사와 고전적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고전영화의 체계를 학습한다는 것은 고전적 플롯과 고전적 데쿠파주의 기초 개념, 구성 질서, 작동 원리 등을 숙지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핵심에 놓이는 것이 고전적 플롯이다. 고전영화는 고전적 플롯을 골자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고전영화는 본질적으로 서사 영화인 것이다. 이론적・논리적 차원에서는 고전적 데쿠파주가 고전적 플롯의 부속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전적 데쿠파주의 덕목은 고전적 플롯의 내용과 맥락을 충실히,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인지적 혼란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우리가 건너가야 할 오해 중 하나가 이것이다.
영화가 ‘이미지의 예술’이라는 말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비평적 호소에 가깝다. 지식인이나 비평가들이 영화예술의 고유성을 구축하기 위해 내세우는 모토(motto)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비평적 기조가 오래도록 전파되어 온 것일까?
영화사 초기부터 영화의 기본 양식이 서사 영화였기 때문이다. 서사 영화는 1908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해 1910년대 중반에는 완연하게 자리 잡는데 이 시기동안 고전적 플롯과 고전적 데쿠파주의 체계, 즉 고전영화의 체계가 갖춰진다. 이후 영화의 기본 양식은 서사 영화가 된다. 이러한 추세는 자연스럽게 장편 경향을 불러오며 영화의 기본 양식을 서사-장편 영화로 바꿔놓는다.
서사-장편 영화는 1910년대에 형성되기 시작해 1930-4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에 의해 영화예술사의 중추적 패러다임인 고전영화로 자리 잡는다. 할리우드는 유럽이 전쟁으로 어지러울 때,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예술이 한창 성장하던 시기에 이미 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유성 영화 도래 이후에는 산업적으로, 어쩌면 예술적으로도, 최전성기에 이른다. 이 시기의 할리우드 영화를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할리우드 고전영화(Classical Hollywood Cinema, Hollywood Classic)라고 부른다. 할리우드 고전영화는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영화의 표준적 양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편 진지한 의미에서의 영화 비평 및 이론이 펼쳐지기 시작한 때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이다. 191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영화 비평 및 이론의 대표적인 입장은 영화가 이미지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화 비평 및 이론의 원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에 있다. 작가 정책(La politique des auteurs)을 전면화한 비평문으로 여겨지는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Une certaine tendance du cinéma français)」에서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는 ‘시나리오 작가들의 영화’를 비판한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현실적 양태와 비평가들의 예술적 입장의 충돌 구도 중 서사 대 이미지 간의 대결 측면이 초기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다. 예술성을 표방하는 영화들을 비할리우드 영화로 분류하고, 그러한 영화들이야말로 진정한 영화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식의 비평적 인식 어딘가에는 이러한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영화예술 패러다임을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그것 아닌 것 또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으로 분류한대도, 지나치게 과격하고 단선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타당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 까닭에 고전적 플롯에 대한 이해가 영화적 교양 및 조예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영화예술적 패러다임들을 고전영화와 고전영화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고, 고전영화는 고전적 플롯이 중추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고전적 플롯의 기초 지식(core knowledge)을 학습해야만 영화예술에 대한 총체적 앎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시나리오 작법서는 고전적 플롯의 기초 개념, 구성 질서 및 규범, 작동 원리 등을 제시한다. 따라서 시나리오 작법서를 영화예술 학습의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시나리오 가이드』를 통해 고전적 플롯의 기초 지식을 학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