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가이드』 해설, 『인문학 스터디』 발췌독
지난 시간에는 영화적 교양의 범위와 항목을 개관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학습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 언급했다. 개략적으로나마 학습 지도를 짚어 봤으니 슬슬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서도 좋을 것 같다.
영화예술에 관한 입문서로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고, 인문학에 관한 입문서로 『인문학 스터디』를 읽자. 『시나리오 가이드』는 책을 구비해두자. 초판부터 현행본까지 개정된 바가 없으니, 구판을 가지고 있으면 새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인문학 스터디』는 절판되었다. 발췌 요약을 내놓을 것이니 애써 중고 책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시나리오 가이드』는 원서를 함께 읽으면서 거론되는 기초 개념들을 책에 서술된 것 이상으로 살펴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장 구조 또는 3막 구조라고 옮겨지는 3-act structure라는 개념이 있다. 각 act마다 조항처럼 따르는 전개 양상이 있는데, 『시나리오 가이드』는 그에 관한 서술이 여타의 시나리오 작법서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이를테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드-포인트(mid-point), 드라마 곡선이나 주인공의 질적 변화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책에 서술되지 않은 것들을 모조리 검토하진 않더라도 보충해야만 하는 것들은 덧붙여 설명할 것이다. 또한 역서에는 해당 챕터의 제목이 “3장이론”이라고 되어있다. 원문은 The Division into Three Acts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자가 챕터에 서술한 내용에 비춰 보아도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이처럼 역서를 읽는 독자들이 오해를 가질 수 있는 지점들도 바로잡아 이야기할 것이다.
『인문학 스터디』는 챕터 단위로 발췌독한다. 해설을 덧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인문학에 관한 표준적 설명은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 해도 되는 말을 굳이 하는 까닭은, 겸손을 내비쳐 품격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라 지성적 격식에 둔감한 일부 영화 논평자들을 향해 비판적 의도를 전하는 데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편역자 서문을 읽어 보면 전공자이자 전문가인 역자들이 번역과 편집, 독서 안내를 얼마나 엄격하고 세심하게 수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나 같은 문외한이 자의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역서의 서술을 충실히 따라가는 게 상식적이고 타당할 것이다.
한편 『인문학 스터디』 같은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인문학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반문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나가듯이 언급한 바 있으니 이번 시간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환기해 보는 게 좋겠다.
알랭 기로디(Alain Guiraudie) 감독의 신작 <미세리코르디아(Miséricorde)>가 국내 평단에서도 올해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평론가들이 <미세리코르디아>에서 주로 조명하고 해설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이 영화는 자비의 동기가 성적 에로스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전문 논평가들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해설해야 하는 지점은 ’알랭 기로디 감독이 <미세리코르디아>에서 자비와 성적 에로스를 연결시켰다’가 아니라 ‘알랭 기로디 감독은 왜 <미세리코르디아>에서 자비와 성적 에로스를 연결시켰는가’여야 한다. 그 둘을 연결시켜 비평하고자 한 무언가를, 즉 <미세리코르디아>의 컨텍스트를 설명해야 한다. 만연한 반이성주의와 유명무실한 유럽적 도덕 관념에 주목해야 한다. 대가의 작업에서 비근한 사례를 들자면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의 전간기 독일 사회 분석을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세리코르디아>를 이와 같이 읽을 수 있을까? 적어도 <미세리코르디아>를 보면서 경찰이 법을 표상하는 인물임을, 신부가 도덕을 표상하는 인물임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의 지성 세계에서, 교양 층의 영화에서 법과 종교가 어떤 식으로 언급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인문학 스터디』의 목차를 훑어 보자.
Ⅰ 문학・예술
1. 고전문학 혹은 고전학
2. 근대 문학
3. 예술학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Ⅱ 철학・정치
1. 고대 철학 입문
2. 근대 철학
3. 법과 경제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Ⅲ 역사학
1. 고대 로마사
2. 1865년 이전의 미국 역사
3. 19세기 유럽 지성사
4. 과학의 역사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Ⅳ 기독교 사상
1. 성서
2. 1500년 이전의 기독교 사상
읽어야 할 도서 목록
『인문학 스터디』는 150쪽 가량의 문고판 책이다. 항목별 서술 분량이 많지 않다. 따라서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 정도는 낯설지 않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감독들, 유수 영화제의 심사위원들,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유력 저널에 투고하는 필진들 … 대다수가 『인문학 스터디』에서 제시되고 있는 인문 지식을 교양으로서 알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시나리오 가이드』의 저자 데이비드 하워드(David Howard)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시간에 언급한 영화예술에 관한 공통 교양도 다들 알고 있고.
이제 인문학 공부의 당위도 충분히 수긍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교양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미세리코르디아>에 대한 개연적 읽기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인문학 공부의 효능이 <미세리코르디아> 같은 영화의 역사적 읽기에 그치지 않는다. 배움과 사유로부터 생겨나는 기쁨도 커지고, 지성적 풍요도,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범위도 확장될 것이다. 현전하는 사물이나 현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시나리오 가이드』 같은 시나리오 작법서가 왜 영화예술 학습의 입문서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책을 서둘러 구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본격적인 읽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련해 두는 편이 좋겠다. 『인문학 스터디』 읽기에 관해서는 역자들의 안내면 충분하기에 편역자 서문부터 발췌독한다. 당장 『인문학 스터디』 읽기 이상으로 인문학 공부를 전개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전에 언급했던 『인문 고전 강의』와 『역사 고전 강의』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