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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ricot 프로젝트 Sep 09. 2021

나를 만드는 기록 - 독서편

기록의 UX | 밀리의 서재부터 왓챠피디아까지

우리는 매일 기록한다.

여행지에서 숨 막히는 풍경을 마주했을 때,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보고 나온 영화의 여운이 아직 머릿속에 어른거릴 때. 순간을 붙잡아놓기 위해 우리는 주머니에서 뭐든 꺼내 빠르게 기록한다.

다짐이나 계획을 꾸준히 계속하기 위해 기록하기도 한다. 꼼꼼하게 작성한 운동일지나 식단일기, 금연일지를 보면 플랜을 이어갈 힘이 생긴다. 또는 가끔은 아주 단순하게 스타벅스 플래너를 향한 열망이기도 하다. 무엇이 원동력이든 기록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어올 것이다. 기록이 쌓여서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록의 양상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예전처럼 시크릿 쥬쥬가 그려진 일기장에 고사리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두툼한 사진앨범에 디지털 인화사진을 끼워 넣지는 않는다. 이제는 모바일로, 태블릿으로, 워치로 기록을 한다. 더 나아가 직접 기록하지 않아도 모든 행동과 선택이 어딘가에 저장되는 시대이다. 검색 내역과 관심상품, 즐겨보는 페이지는 쿠키로 저장되고, 관심 키워드와 자주 들은 노래는 앱의 알고리즘에, 찍은 사진은 위치 태그와 결합되어 "2년 전 오늘"로 보여진다.

사실상 인생의 모든 면면이 기록되는 사이버 조선왕조실록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기록을 하는 법’보다도 ‘기록을 잘 관리하는 법’이 더 중요해졌다. 개인에게 의미 있는 기록, 다시 꺼내볼 만한 기록을 어떻게, 어디에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리하여 기록의 UX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열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독서편.





나를 만드는 기록 - 독서편


재작년부터 독서를 좀 더 열심히 하자는 나만의 다짐을 했다. 역시 계획은 기록과 함께해야 오래 할 수 있는 법. 책을 사서 읽으면서, 읽은 책 기록과 필사를 도울 수 있는 여러 기록 플랫폼을 찾아보고 사용해보었다.
결국 서너 가지 플랫폼을 거쳐 지금의 독서기록법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래에서는 총 4가지의 기록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용자 니즈를 잘 이해해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서비스들도 있었고,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사용자인 내가 필요에 맞게 활용하는 서비스들도 있다.


1. 밀리의 서재

노트 한 번 펼치지 않아도, 자동으로 기록이 되네?


밀리의 서재는 작년 초, 지하철 출근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구독을 시작해 잘 사용했던 서비스이다. 도서 콘텐츠는 물론 도서 기록과 메모, 포스트, 회원 간 소통을 제공한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 서비스를 해지했는데, 오랜만에 재방문해보니 유료 구독 중이지 않으면 그동안 기록한 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번 기회에 이전 독서기록을 볼 겸 다시 서비스를 구독해 목록을 열어보았다.


 빠른 동기화

이북리더기를 사용할 때 기기에서 하이라이트 하는 내용이 앱의 '독서노트'에 바로바로 동기화가 된다는 점이 편리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자동으로 책장에 도서가 담기고, 독서하면서 화면에서 쓰고 지우는 메모 내용이 자동으로 저장된다. 수동으로 등록하는 수고로움 없이 기록할 수 있는 편리한 경험이다.

한눈에 보는 독서통계

자동으로 기록되는 것은 텍스트뿐만이 아니다. 밀리의 서재는 이용자의 독서습관도 똑똑한 통계로 보여준다. 언제 어떻게 독서하는 편인지, 자주 읽은 분야는 무엇인지, 밀리 독자들 이용 평균에 비해 내 독서량은 얼마나 되는지 알기 쉬운 언어로 안내한다. 건강한 자극을 주어 독서를 더 하고 싶게 만드는 친절한 톤 앤 매너의 서비스이다.


뿐만 아니라 자동으로 작성되는 '하이라이트' 외에도 책에 대해 직접 작성하는 '포스트', '한 줄 리뷰', 그리고 목소리로 녹음하는 '3분 리뷰'가 제공된다. 도서 콘텐츠와 기록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서비스인 만큼 독서에 대한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과유불급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많은 기능들이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첫 페이지를 읽고 변심해 내려놓은 책도 자동으로 나의 책장에 담겨버린다거나, 그럼에도 페이지를 펼쳤기 때문에 '1밀리'가 상단에 쌓이는 걸 볼 때면 뭔가 니즈와 조금 엇나간 기능을 제공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통계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밀리의 서재 밖에서 하는 독서시간도 있고, 종이책으로 읽은 뒤 기록용으로 밀리 책장에 도서를 넣어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앱 내에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100일 목표까지 99밀리 남았어요!"또는 "이번 달에는 2권을 읽으셨네요 - 밀리 평균보다 낮아요" 같은 분석을 받을 때면 꼼꼼하다기보다는 '이거 정확하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결국 모든 독서활동을 밀리의 서재 한 서비스에 집중하고,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독서습관을 키워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서비스라고 정리하고 싶다.




2. 리드그래피

오로지 기록 하나에 집중한, 장인 같은 서비스

리드그래피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도서 기록 앱이다. 별도의 콘텐츠나 광고 영역 없이 '도서 기록' 하나에 집중하는 서비스인 만큼, 독서기록을 시작하려는 사용자에게 어떤 니즈가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하는 대로 쓰고 깔끔하게 관리

리드그라피에서는 발췌문 넣는 법이 다양하게 제공된다. 메모하고 싶은 내용을 텍스트로 입력할 수도 있고,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텍스트로 변환하거나, 이미지로 붙일 수도 있다. (나처럼) 손으로 필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트를 사진 찍어 리드그래피에 저장해 체계적으로 메모를 관리할 수도 있다.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밀리의 서재와 리디북스 등 전자책 서비스에서 작성한 메모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한다.


언제든 다시 꺼내보기 쉽도록

메모는 하는 것도 편리해야 하지만 다시 꺼내보기도 쉬워야 한다. 어떤 책의 무슨 구절이더라... 하고 그동안의 메모 수백 개를 다시 열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리드그래피에서는 검색 기능을 제공해 누적된 메모에서 빠르게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도서 태그 설정이 수동이라는 점은 초반 이용할 때 약간의 수고를 요한다. 대신 그만큼 활용의 자유가 있다. #소설, #에세이, #SF처럼 도서 분류대로 관리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 #겨울에 읽은 책처럼 원하는 대로 태그를 붙여 재미있게 기록 습관을 관리할 수 있다.




3. 왓챠피디아

영화 앱 아니었어? 잘 만든 서비스의 만능 활용기



가끔은 긴 서평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책들은 간단히 별점을 주고 끝내고 싶기도 하다. 혹은 읽을 책 목록을 만들어 한 권 완독 할 때마다 지워나가는 버킷리스트를 만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왓챠피디아의 책 서비스가 편리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왓챠는 OTT 서비스와 별점/리뷰 작성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나 왓챠피디아 앱에서는 도서 콘텐츠 평가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앱의 사용성이 높고 UXUI가 잘 되어있어서 책을 리뷰하고 기록할 때 잘 활용하고 있다.


컬렉션 만들기

도서 기록 수단으로써 왓챠의 최고 강점은 '내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여름에 읽은 책', '2021년 좋았던 책 모음'처럼 묶음 단위로 정리해 한 해의 독서기록을 관리할 수 있다. 또는 '영화화된 소설들', '여성 작가들의 도서'처럼 나름의 주제를 잡아 책을 정리하기도 좋다.
다른 사람들의 컬렉션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큰 플러스 요소이다. 감각 있는 큐레이션에서 읽고 싶은 다른 책을 찾고, 내 서재에 추가하면서 기록의 폭은 점점 넓어진다.



편리한 사용성

책을 추가하는 흐름이 정말 편하다. 읽고 싶었던 목록에서 바로 빼올 수도 있고. 컬렉션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컬렉션을 탐색하고, 좋아요와 댓글도 달 수 있다.

물론 영화 코멘트에 최적화된 서비스이다 보니, 출판사나 ISBN을 검색해 넣거나 상세한 인용을 달기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양적인 관리 (별점을 남기고, 목록으로 쭉 모아 보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이다.



   

4. 수기 기록

벗어날 수 없는 아날로그의 맛

  전부터 매년 1월에는 무인양품에서 천오백 원짜리 노트를  묶음씩 주문한다.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필사 노트이다. 밀리의 서재도, 블로그도, 왓챠도 기록용으로 사용하지만 아직은 손에 잡히는 노트를 포기하기가 아쉽다. 손으로 쓰는 것은 기록의 본질이다. 앱은 지우면 사라지고, 유료 서비스는 구독을 해지하면  이상   없고, 플랫폼은 서비스가 종료되면 지구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쨌든 가장 오래 남아있는  나의 기록 노트들일 것이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괜히 자세나 걸음걸이가 바뀌는 것처럼,
독서기록 습관도 어떤 서비스와 페어링 하는지에 따라 변한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또는, 새로운 동경)이 브랜드와 서비스의 성공 요소로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아날로그를 완전히 대체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날로그와 좋은 연결을 만들고, 관리를 돕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인지이다. 직접 노트 맨 뒤편에 적은 독서 목록을 편하게 컬렉션으로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왓챠나, 필사본을 편리하게 스캔해 기록장에 붙여주는 리디그래프처럼 말이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괜히 자세나 걸음걸이가 바뀌는 것처럼, 독서기록도 어떤 서비스와 페어링 하는지에 따라 변한다. 별점 서비스를 주는 플랫폼에서는 별점을 매기게 되고, 발췌 서비스가 잘 되어있는 곳에서는 한 문장이라도 더 건져 올려 기록장에 곱게 펴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같은 책을 읽은 후에도, 기록의 방식에 따라 감상의 형태와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쓰기 편한 앱은 자꾸 켜서 기록하고 싶고, 쌓은 기록을 꺼내 열어보며 뿌듯하게 읽어 내려가게 된다. 필요할 때 펜을 건네주는 충실한 집사처럼, 나의 필요를 잘 이해하고 꼭 맞는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함께라면 독서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나 계획이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기록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듯이, 기록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그만큼 중요한 이유이다.



에디터 C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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