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학원에서 수업을 기다리며 몸을 풀고 있는데 강사가 인사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혹시 하시는 일 있으세요? 아님 집에서 노세요?"
"아.. 네.."
옆에 있던 지인은 원래 학교 선생님인데 가을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선생님이시구나.. 혹시 무슨 과목 가르치세요?"
"수학인데요."
"수학? 어머..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셨나 보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잘못해서 수학 잘하는 사람 보면 부럽더라."
물론 살림하고 애 키우는 전업주부는 어딜 가도 제대로 된 직업 취급받기 힘들지만 대놓고 집에서 노냐고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집에서 논다.. 라.... 뭐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그 정도야 뭐 누구나 하는 일이니까 논다고 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나도 예전엔 좋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매달 입금되는 월급을 기다리던 적이 있었다. 내 이름으로 된 명함이 있고, 엄연한 직함이 있는 직장인이었던 때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에 염증을 느끼기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게 지치고 힘들어서 결혼을 코앞에 두었을 땐 한시라도 빨리 관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때가 있었다.
전업주부로 지낸 지 벌써 10년째.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듯한 살림 솜씨를 생각해보면 주부가 과연 내 적성에 맞는지는 단 1%도 확신할 순 없으나, 그래도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잘 지내면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확신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전보다 늘어난 여가시간에 운동도 하고 가끔 또래 엄마들과 만나 차 한잔 마시고 수다 떨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집에서 논다'는 말 한마디가 내가 마치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삶을 사는 것 같고, 지금까지의 내 존재를 무쓸모로 느껴지게 했다. 소위 말하는 표현으로 버튼이 눌렸는지도 모르겠다. 별 뜻 없는 말에 발끈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 되뇌어 보았지만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이미 마음속 깊이 박혀버렸다.
그 한마디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더 끓어오르게 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누군가 몇 년 후에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글 쓰고 있어요"라고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많이 읽어야 뭐라도 쓸 수 있겠지 싶다.
얼른 컴퓨터를 켜고 알라딘 사이트에 접속해서 평소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던 책들을 시원하게, 한꺼번에 주문했다. 속이 후련하다. 역시 열 받는 일이 있을 때는 지름신의 부름에 따르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