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취업 성공기

ft. 인턴 2주차

by apricot

라고 멋진 제목을 달고 싶지만 이게 진짜 제대로 된 취업이 맞는건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서 좀 망설여지지만 뭐 '상관없는거 아닌가'...(오늘 읽은 장기하 산문집 제목인데 참 마음에 드는 말이다.)

내가 쓰는 글의 제목 쯤 내 마음대로 정하는게 뭐 어때서 어차피 유한한 삶인데 내가 하고 싶고,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그렇게 살고 싶다.


결론은 취직은 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던, 집에서 겨우 15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 취직해서 직주근접성이 뛰어난 것이 마음에 든다. 처음에 의도했던 직종은 아니었지만 결혼 전 내가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큰 부담없이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썼던 때가 2021년이고 브런치는 내게 글을 못본지 100일이 지났어요, 200일이 지났어요, 360일이 지났어요 하더니 그후로는 잠잠해서 나도 잊고 지냈고, 브런치도 나를 잊었었나보다. 아니 마음 한구석에는 브런치에서 이러다가 짤리는게 아닌가 조금의 염려는 있었더랬다.


어디보자..마지막으로 글을 쓴 때가 2021년 6월이니 거의 3년 좀 안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마지막으로 글을 썼을 때도 자격증 시험을 코앞에 두고 공부하기 힘들다는 소리를 했었는데 정말 한참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지금 역시 또 다른 자격증 시험을 앞둔 시점이고, 여전히 공부 대신 다른 것들에 꽂혀있다는 점이다.


오늘만 하더라도 시험 공부를 하겠다라는 다짐으로 집을 나섰지만 도서관에서 장기하 산문집과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을 빌려와 읽느라 하루를 다보냈다. 결국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랫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몇 년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나름 보람있는 하루였다.


장기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참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연예인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것은 열 손가락안에 꼽는데 그중에서도 꽤나 가까이에서 본 몇 안되는 연예인이다.


'싸구려커피'와 '달이 떠오른다'라는 노래로 데뷔 초기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기하와 얼굴들' 에 남편이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콘서트 같은 것엔 별로 관심이 없던 남편은 '장기하와 얼굴들' 콘서트를 부산에서 하니까 같이 가자고 했었다. 울산에 살 때여서 부산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어느 주말 부산에 있는 소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 함께 갔다. 무표정이 시그니쳐였던 미미 시스터즈도 보고, 장기하도 보았는데 본인의 표현대로 '생각보다' 깔끔한 외모에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노래에 푹 빠진 듯한 모습도, 젠틀한 무대 매너도 '생각보다' 좋았다.


몇년 후 남편이 '장기하와 얼굴들'에 조금 시들해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사그라 들었지만 몇 달 전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에서 그가 산문집을 냈다는 얘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주 다니던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했더니 아뿔싸 대출중이었다. 그의 산문집은 꽤나 인기가 있었는지 이후로 생각이 날때마다 검색해보았지만 계속 대출중이었다가 거의 몇 달 만에 드디어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연예인 쓴 에세이류 중에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유희열의 '익숙한 그집 앞'이라는 책이었는데 장기하의 산문집 또한 그 못지 않게 재미있었다. 동년배라서 그런가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고 나와 생각보다 공통점이 있어 신기했다. 우선은 동갑이고, (생일도 한달밖에 차이안난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점,(그래서 그런지 그의 에세이도 하루키의 에세이와 좀 닮은 구석이 있다.), 달리기를 몇 년째 꾸준히 한다는 점이 비슷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을 읽다가 딴 생각을 하거나, 읽다가 헷갈려서 읽었던 내용을 또 읽고, 다 읽고 나서도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예를 들면 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걸 읽었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동안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느 정도 공감도 하면서 '어렵지만 마음에 드는 책' 이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소리내어 읽으면서 녹음도 했었는데 누군가 책 내용이 뭐였는지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목은 '경단녀의 취업성공기'라 쓰고 이렇게 장기하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오늘 그가 쓴 책을 읽고 몇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 근래 매일같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 하루 몇시간씩 좋든 싫든 글을 다시 쓰게 되니 내 이야기도 슬슬 하고 싶어지나보다.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키보드의 타자음과 정리되어 화면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찍히는 일이 다시금 즐거워졌달까..


또 다시 시험을 앞두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남편의 표현대로 시험을 앞둔 자의 현실도피가 결국 몇 년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 이번 자격증 시험은 정말 여러모로 괴롭다. 내용도 눈에 안들어오고,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잡힌다. 더군다나 회사까지 다니는 상황에서 너무 너무 피곤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번 시험 만큼은 진짜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이미 필기를 합격했고, 실기를 앞둔 이상 닥치면 결국 또 억지로 해야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어거지로라도 하다보면 어찌어찌 또 되는 게 인생이다. 지난해 이맘 때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컴퓨터 언어를 배웠고, 지금은 물론 그때 열심히 배운 컴퓨터 언어는 깡그리 잊었지만 어찌어찌 취직은 했다. 겨우 3개월 인턴이지만, 쥐꼬리 만한 월급이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어떻게든 취직만 하고 싶다고 이대로 녹슬고 싶지는 않다고 일기장에 썼더랬다.


지금은 3개월로 끝날지 계속 다닐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2년 전 만해도 내가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될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은 계기로 마음이 바뀌었고 이렇게 실행에 옮기게 되다니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앞으로는 종종 생각날 때마다 써야겠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라던가...시험이 코앞인데 책도 보기 싫을 때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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